[산업일보]
올해는 반도체 산업의 ‘혹한기’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감소한 반도체 수출실적은 올해 무역수지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반도체 산업은 올해의 부진을 극복하고 2024년 무역수지를 견인할 수 있을까. 내년 반도체 산업의 희망과 위험 요소를 종합했다.
반도체 실적 부진, 원인과 현황
반도체 실적 부진은 세계적으로 모바일 폰, PC, 서버 등 전방 IT제품 수요가 급감해 발생했다. 코로나 19 팬데믹 당시 가수요 발생으로 재고가 쌓였지만, 개인 소비심리와 세계 경기 회복이 더뎌 올해 들어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지난해 대비 50% 하락했음에도 수요가 살아나지 않았다.
불확실한 세계정세도 한몫 했다. 지난 10월 ‘제25회 반도체 대전’에서 만난 탁승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본부장은 “반도체 불황은 수요 감소 외에도 미중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합적 원인이 작용했다”라고 설명했다.
긍정적 요인이 없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반등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탁승수 본부장은 “재고도 어느 정도 소진 됐고, 반도체 경기 저점은 지난 것 같다”면서 “올해 말, 내년 초부터 서서히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3년 1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9% 증가하며 16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됐다.
반등의 희망 : 메모리 반도체 가격 안정화, HBM, DDR5
메모리반도체 공급 과잉으로 재고가 쌓이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반도체 기업은 대규모 감산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수조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지만, 반도체 가격이 점차 상승하며 효과가 가시화됐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발간한 ‘2023년 수출입 평가 및 2024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D램 현물가격은 지난 8월 개당 1.4달러에서 10월 1.45달러까지 상승했으며, 낸드 현물가격 역시 지난 6월 1.39달러 저점 이후 10월 2.13달러까지 올랐다.
보고서는 ‘2~3분기 저점 이후 반도체 가격이 소폭 상승하고, 점진적 재고 하락으로 수급이 개선되는 등 4분기 반도체 업황 반등 움직임이 확대됐다’라고 분석했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 DDR5 등 차세대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기회 요소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0월 올해 3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하며 ‘대표적인 AI용 메모리인 HBM3, 고용량 DDR5와 함께 주력제품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며 전분기 대비 매출은 24% 증가하고 영업손실은 38% 감소했다’라고 밝혔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8월 발간한 ‘국내외 반도체산업 정세와 경기 전망’ 보고서는 ‘AI, IoT, 자율주행차 등 신산업은 더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하기 때문에 반도체 수요가 날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반도체 시장 전망은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반등 위험 요소 : 수요 회복 한계, 중국 경기 침체
내년 경기를 전망하는 보고서들은 반도체 업황이 회복 구간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위험도 많다. ‘반도체 수요 회복’과 ‘중국’이다.
11월 반도체 수출 플러스 전환은 반도체 가격 상승이 주요 요인이었다. 하지만 ‘수요 회복’이 아니라 감산을 통한 ‘공급 감소’에 의존했다는 한계가 있다.
반도체 수요를 회복하려면 IT 제품 수요가 먼저 개선돼야 한다. AI산업 성장으로 차세대반도체 수요가 급상승하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고금리‧고환율‧고물가가 유지되는 세계경기 둔화 국면에서 수요 회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도 위험 요소다. 중국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산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출 뿐 아니라 주요 원자재도 중국에 의존한다. 미국의 수출 통제 등 대중국 경제 제재가 강화되면 한국도 위험에 노출된다.
삼일회계법인이 이달 발표한 ‘2024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는 ‘반도체는 2024년 초과수요 국면으로 전환되며 수출 회복이 가시화될 것’이라면서도 ‘지정학적 리스크 지속, 공급망 이슈, 수요 감소 등의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도 상존한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과거보다 중국 의존도가 감소했지만 공급망 재편 완료까지 상당한 혼란이 지속될 것’이라면서 ‘한국의 공급망 다변화 속도보다 미-중 견제 속도가 빠르다면 공급망 리스크가 재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진단했다.
내년 경제 회복 열쇠, 반도체
반도체 산업은 올해 하반기 반등의 기미를 보였지만 그 강도가 약하단 우려도 있다. 수요 회복 불확실성, 중국 경기 침체 등 위험 요소도 많다.
삼일회계법인의 ‘2024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는 ‘반도체 회복 강도가 실적 증가의 열쇠’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반도체는 올해의 부진을 딛고 새해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