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현대 연구개발(R&D) 시스템이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인공지능(AI) 기술이 이를 타개할 대안으로 떠올랐다. 기존 인간의 직관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거대 AI 모델과 자동화 인프라가 융합된 ‘지식 제조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이른바 과학의 ‘제5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원 박용삼 연구위원은 ‘AI 시대, R&D 대혁명’ 이슈리포트를 통해 현대 R&D의 한계와 AI 기반 패러다임 전환의 흐름을 분석했다. 2024년 전 세계 R&D 투자는 2조 4천억 달러를 넘어섰으나 신약 개발에 평균 10~15년, 26억 달러가 소요되는 등 혁신 속도는 오히려 정체되는 ‘에룸의 법칙’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는 탐색 공간의 한계, 다크 데이터 사장, 정보 폭증에 따른 인지 포화, 재현성 위기 등 4가지 구조적 문제가 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구조적 위기의 돌파구는 AI다. 4대 R&D 혁명을 바탕으로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 220만 개의 신규 결정 구조 가설을 생성해 38만 1천 개를 안정적 소재로 선별한 ‘놈(GNoME)’, 집단 AI 토론을 통해 가설을 발전시키는 ‘코사이언티스트(Co-Scientist)’, AI와 로봇이 결합해 실험 전 과정을 자동화한 ‘자율 실험실(SDL)’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보고서는 AI 전면 도입에 따른 이면의 부작용도 경고했다. 정교한 오답을 내놓는 ‘AI 환각’, 검증 속도가 AI 가설 생성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검증 병목’, 과거 성공 데이터에만 치중하는 ‘데이터 편향’, 2023년 한 해에만 전 세계적으로 1만 건 이상의 철회 논문을 발생시킨 ‘논문 공장’ 등이 R&D 성과 창출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박 연구위원은 “생성형 AI와 거대 과학 모델이 R&D 지평을 확장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재무 성과를 담보하려면 기술 이면에 감춰진 그림자를 냉철하게 직시하고 철저한 거버넌스 하에 통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AI가 고도화될수록 비선형적 통찰을 지닌 인간 지성의 가치가 더욱 부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AI 플랫폼에 대담한 질문을 던지고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산업적 맥락을 찾아내는 역할은 온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박 연구위원은 “올바른 질문을 정의하고 학제 간 경계를 무차별적으로 넘나들며, 윤리적 최종 판단을 내리는 리더가 향후 기술 패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