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정답을 알려주는 AI(인공지능)가 등장하면서 상향평준화 시대가 열릴 것 같았지만, 그 답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차이로 인해 실력자와 비 실력자의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
2016년 알파고(AlphaGo)와의 대국으로 유명한 이세돌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임교수가 2일 열린 ‘2026 소프트웨어 산업전망 컨퍼런스’의 기조강연을 진행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바둑을 마인드스포츠나 보드게임이 아니라, 두 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예술이라고 배웠다”라고 강연의 운을 뗏다.
이어 “언젠가 체스처럼 바둑도 AI로 정복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2016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라며 알파고와 대국을 회상했다.
이 교수는 “2국이 끝난 후 바둑계 전체가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라며 “상대가 사람이든 AI든 대결에서 질 수는 있지만, 동료 기사들과 2국을 장기간 복기해도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3국에서 이세돌 교수는 알파고 맞춤 전략을 짜기로 했다. 알파고의 연산 능력을 감안해 극초반에 승부를 거는 작전을 폈지만, 결과는 데이터의 압승이었다.
그는 “수읽기와 감각이 공존하는 가운데 AI와 승부를 해야 했다”라며 “AI만 생각하다 보니 사람인 저를 제외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또한 3국 패배 후 가족, 동료, 지인과 더불어 인터넷 기사의 댓글에서 응원을 전해 받았다며 “따뜻한 격려를 건넬 수 있고, 또 그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인간만의 능력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4국에서는 접근을 달리했다. 알파고의 알고리즘에 오류를 발생시키겠다는 목표로 68번째 수를 ‘정상적이지 않은 수’로 선택했고, 이는 승리로 이어졌다. 그는 “최선의 수가 아닌 것을 의도적으로 둔 것은, 이 수가 처음이지 마지막”이라고 해설했다.
이세돌 교수는 “바둑계는 AI가 도입되면서 ▲정확한 해설 ▲격차 확대 ▲고정관념 탈피 등의 변화를 겪었다”라며 “이는 바둑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바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사람보다 더 자연스럽고 창의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라고 말한 그는 “어릴 때 두지 말라고 배우는 수, 즉 인간의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AI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는 실력자들은 3~4명 이상의 몫을 해내며 가치를 높이고 있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리마저 잃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AI 활용 역량이 능력이 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AI와 상생하는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은?’이라는 질문에는 “AI는 한정적인 상황에서 강력한 결과물을 만들고, 사람은 프로젝트의 룰·방향성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협업해야 할 것”이라며 “결국 콘텐츠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2026 소프트웨어 산업전망 컨퍼런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주관으로 서울 강남구 코엑스(COEX) 4층 401호에서 개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