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정밀 가공, 배터리·반도체 산업 확장,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오래된 제조기업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2·3세 경영인은 더 이상 ‘물려받는 사람’에 머물 수 없다.
산업일보 연중기획 ‘2세 경영, 산업의 다음 30년’은 제조 현장의 세대교체를 ‘가업 상속’이 아닌 ‘사업 재설계’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창업자의 기술과 영업 철학, 현장 관리 방식은 회사를 버티게 한 뿌리였다.
그러나 그 뿌리만으로는 다음 시장을 통과하기 어렵다. 젊은 리더들은 디지털 전환, 조직 리빌딩, 신시장 개척 과제를 떠안고, 창업 세대가 만든 회사를 다음 산업 구조에 맞게 다시 번역하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정밀 오일 제어 분야에서 40년 가까이 한길을 걸어온 오일탱크코리아에 대해 소개한다. 가공 현장의 오일 도포 기술에 자동화 기술을 더해 다음 30년을 준비하고 있다.
오일탱크코리아는 절삭유 도포 장치와 MQL(Minimum Quantity Lubrication·최소 윤활) 오일 분야에서 40년 가까이 한 우물을 파온 기업이다. 창업주인 이만우 대표가 40여 년 전 미스트 분사 방식 보급에 앞장선 이후, 회사는 가공 현장의 오일 도포 시장을 개척하며 성장해 왔다.
창업주인 이만우 대표의 아들인 이상목 프로는 4년 전 오일탱크코리아에 합류하면서 아버지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아직은 1세대 창업주로부터 배우는 입장임을 강조한 그는 자동화, 자동차·배터리 산업의 정밀 프레스 수요 확대라는 산업 흐름을 분석하며 회사의 미래를 자신의 관점으로 그려가고 있다.
공구상가 직원부터 2세 경영인까지, 돌아온 만큼 단단해진 준비 과정
이상목 프로는 다른 많은 2세 경영인들과는 다른 경로를 거쳐 회사에 합류했다. 국내 대학에서 기계 가공을 배운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귀국 후에는 다시 국내 대학에 편입한 뒤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미국에서 MBA로 진학하는 것도 고민했지만, 경영 이론보다 직접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학업을 마무리했다”고 말한 이 프로는 “설계를 하려면 어떤 부품이 시중에 나와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첫 직장을 회사가 아닌 공구상가에 취업했고 이런 우회 경로가 오히려 부품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를 쌓는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는 “보통 2세 경영인들이 비슷한 전공을 마친 뒤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갑작스럽게 합류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경우 회사 전체 업무의 10~20%만 파악한 채로 대표의 역할을 맡으려다 보니 기존 직원들과의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언급했다.
반면 이 프로는 창업주인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도록 준비시킨 덕분에 그런 충돌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돌아보면서 “15년이 넘은 건물을 먼지 한 톨 없이 유지하는 관리 방식, 공간마다 실내화를 구분해 신게 하는 청결 문화, 일이 끝나면 다음 날 곧바로 작업할 수 있도록 정리해 두는 습관 등 아버지가 쌓은 시간의 무게를 곳곳에서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디테일한 관리 방식은 오일탱크코리아를 방문한 거래처 관계자들이 '오래도록 정직하게 관리해 온 회사'라는 인상을 주는데 직결된다”는 것이 이 프로의 설명이다.
경영을 본격적으로 맡은 이후의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합류한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아직 경영 일선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고 손사래를 친 이 프로는 “회사가 오래 지속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미 구축된 시스템을 존중하고 안정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창업주를 비롯한 여러 경영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프로가 기존의 시스템에 머물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온오프(On-Off) 제어 방식에 머물러 있던 기존의 제품에 통신 기능을 탑재시켜 자동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했다.
“자동화 환경에서는 메인 기계가 서브 기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아날로그 제어로는 이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계기를 설명한 그는 “이 기능을 원하는 고객이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필요할 때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과 갖추지 못해 못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개발된 디지털 제어 기반의 신형 MQL 장비는 올해 초 열린 심토스(SIMTOS) 2026에서 처음 공개된 뒤 현재 상용화를 위한 장기 내구성 검증을 진행 중이다.
"10년 뒤 무엇을 팔아야 할까"…자동화와 정밀 프레스 시장을 보는 시선
그는 최근 업계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트렌드로 ‘자동화에 따른 산업 가공 방식의 변화’를 꼽았다.
“TV나 휴대폰을 만들 때 과거에는 CNC 가공과 드릴 작업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프레스 공정으로 대체되는 흐름이 뚜렷하다”고 짚은 이 프로는 “자동차 산업의 '기가 프레스' 사례처럼 한 번에 찍어내는 방식이 늘어나면서, 회사가 15년 전부터 미리 준비해 온 프레스용 윤활·도포 설비 사업이 새로운 성장축이 되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에서 정밀 프레스 분야의 절삭유 도포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부품을 가공하는 업체를 예로 든 이 프로는 “과거 롤러로 기름을 묻히던 접촉식 방식이 먼지나 이물질 유입 문제로 비접촉식 스프레이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한 뒤 “스마트폰의 배터리도 일정 압력과 열을 받으면 폭발이 아니라 안전하게 파열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프레스 가공 시 분사되는 윤활유 도포량까지 정밀하게 제어해야 한다”고 도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서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업체가 드물다는 점에서 회사가 배터리, 반도체, 전자 단자 등 첨단 산업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것은 물론 이제는 국내 업체뿐 아니라 일본, 독일, 미국의 해외 업체들과 견주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오일탱크코리아의 영업철학에 대해 이 프로는 “저가 경쟁보다 고스펙·고가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으며, 이는 창업주가 강조해 온 원칙”이라며 “자동화가 확산될수록 숙련 기술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일관된 수치를 유지할 수 있는 정밀 제어 기술의 가치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배우는 것들…조직문화와 향후 10년의 비전
조직문화에 대한 질문에 그는 회사에 합류한 지 아직 오래되지 않은 만큼 직접 바꾼 것은 많지 않다고 답하면서도 합류 후 협업 툴을 도입한 것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언급했다.
“대표님은 복잡한 일정과 우선순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능숙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다고 느껴, 전체 프로젝트와 일정을 한눈에 관리할 수 있는 협업 툴을 도입했다”고 설명한 그는 “회사의 기존 근무 문화가 자율적이지만 최근 인사 제도를 갖춘 다른 기업들의 사례를 접하면서, 향후 회사 규모가 커질 경우 제도화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올 수 있다”고 내비쳤다.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이 대표의 능력 중에서는 “고객을 대하는 방식을 가장 익히고 싶다”고 꼽았다.
이 대표가 영업 현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상담을 해주는 영업'으로 표현한 그는 “물건을 팔러 간 입장에서 흔히 비굴해지기 쉬운 협상 구조를 거래처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풀어내며, 그 결과 거래처가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구매를 결정하게 만드는 모습을 본받고 싶다”며 “이런 화법과 태도를 익히면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내비쳤다.
향후 10년의 비전을 묻는 질문에 이 프로는 ‘무리한 확장보다 현재의 성장 속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무리하게 설비나 공장을 확장에 나서면서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말한 그는 “오일탱크코리아가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이어져 온 배경 역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성장해 온 전략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이 프로는 “현재 개발한 신제품을 시장에 안착시키고 추가 개발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매출 규모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단기 목표”라고 밝힌 뒤 “장기적으로는 고객층을 점진적으로 넓혀가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2세 경영인으로서 느끼는 책임의 무게도 솔직하게 전했다. “내가 실패하면 나와 내 가족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일생을 바쳐 쌓아온 사업과 부모의 노후까지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고 토로한 이 프로는 “이런 책임감이 저를 더욱 신중하게 만들고, 매 순간 더 진지하게 일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강조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