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피지컬 AI(물리인공지능)의 등장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의 산업 현장 투입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주도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국의 제조 현장을 ‘휴머노이드 AI 학습용 실전 기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KB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에 들어오면 생기는 일’ 보고서는 AI 기술의 발전으로 로봇의 복잡한 물리적 과업의 자율적 수행이 가능해지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의 산업 현장 투입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산업용 협동 로봇과 휴머노이드의 차이를 동작 습득 방식이라고 지목했다. 기존 로봇은 엔지니어가 좌표를 수동으로 입력하거나 직접 로봇팔을 움직여 가르치는 수동 교시(Direct Teaching) 방식에 의존했다.
반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VLA(Vision Language Action) 모델에 기반해 시각적 관찰을 통한 모방·강화학습으로 동작을 익힌다.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만 업데이트하면 공정 전환과 현장 재배치가 즉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BMW부터 테슬라·현대차까지…산업 현장 투입 경쟁 본격화
실제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로봇기업 피규어AI(Figure AI)의 피규어 02(Figure 02)는 BMW 공장에 투입돼 11개월 간 ‘BMW X3’ 3만 대 이상의 생산 공정을 지원하며 99%의 작업 정밀도를 기록했다. 특히 작업자 부담이 크고 높은 정밀도가 필요한 용접 패널 안착 공정에서 과업을 수행했다.
주요 완성차 기업들도 휴머노이드의 생산 라인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테슬라는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공장의 모델 S와 X 생산 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3세대 옵티머스 전용 생산 라인으로 전환할 예정이며, 하반기 양산을 앞두고 핵심 공정 운용에 옵티머스 로봇 1천 대를 선제 투입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는 조지아주 서배너 공장(HMGMA)에 2028년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를 순차배치하고, 2030년까지 부품조립과 중량물 운반 등으로 작업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힌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우드스톡의 도요타 RAV4 조립 공정에는 에질리티로보틱스의 디지트가 정식으로 배치됐다.
유통·물류 분야에서도 검증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대 주주인 한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동형 양팔로봇 RB-Y1을 쿠팡 물류센터에 시범 투입했으며, 피규어 AI의 차세대 모델 피규어 03은 소포 분류 공정에서 인간 개입 없이 80시간 연속 작동하며 수십만 개의 화물을 처리했다.
일자리 대체 아닌 보완재 역할 전망…‘노동력 절벽’의 대안으로
보고서는 2026~2028년 사이의 도입 초기에는 로봇이 사람이 일자리를 빼앗기보다는 인력난을 메우는 보완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 시기에는 기술적 성숙도 한계로 생산성 기여도는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2030년대에는 물류·단순 조립·현장 서비스처럼 저숙련·반복 공정 분야의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노동 구조의 변화가 전개될 것으로 내다봤다. 독일 컨설팅회사 롤랜드버거(Roland Berger)의 분석을 인용해 2050년까지 세계 주요 지역의 생산 가능 인구가 최대 22% 감소할 것이라고 전하며, 한국에서는 고용 대체에 대한 반발보다는 노동력 부족을 해소할 현실적 대안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임금 양극화 심화는 과제로 남아
다만 로봇 도입으로 인한 임금 체계의 양극화와 노동 원가 구조 변화는 과제로 꼽았다. 단순·반복 업무를 담당하는 저숙련 인력의 임금은 정체·하락하고, 로봇 운용 및 설계를 맡든 고숙련 인력의 임금은 상승하는 이원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노동력 조달 방식이 ‘인적 고용 계약’에서 ‘기계 설비 투자’ 형태로 바뀌면서 인건비 기반 노동 원가 체계가 감가상각비와 유지관리 중심의 자본·설비 비용 체계로 재편된다고 짚었다. 인력 중개·파견업도 단순 노무 공급에서 유지보수 인력과 시스템 엔지니어를 연계하는 기술·소프트웨어 전문 인력 공급으로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
한편, 신흥국 청년층 중심으로는 세탁·설거지·조리를 비롯한 가사 노동을 촬영해 피지컬 AI·로봇 훈련용 데이터로 판매하는 신규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흥국의 일상 노동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AI 가치사슬에 편입되는 ‘디지털 하청 구조’라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는 신흥국의 저임금 노동력 우위가 약화되고 선진국 중심의 소비지 생산 체계로 전환되면서 리쇼어링(Reshoring)이 가속화될 것으로 점쳤다. 공장 입지 조건은 AI·로봇 운용 인프라 위주로 재편되며 축적된 현장 데이터는 후발 주자의 진입을 막는 핵심 자산으로 부상할 것으로 진단했다.
한국의 대응 전략은
보고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의 가파른 발전에도, 작업 속도 면에서는 숙련된 작업자나 산업용 로봇에 미치지 못해 전면적인 현장 대체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봤다. 현재는 시스템 통합(SI) 및 현장 최적화 비용과 같은 비정형 통합 비용이 투자수익률(ROI)을 좌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이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완성차·반도체·조선 등 첨단 제조 현장과 공정 노하우를 바탕으로 단순히 로봇의 최종 소비처에 머물기보다 핵심 도메인 데이터 공급망이자 글로벌 테스트베드 역할을 선점해 생태계의 실질적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