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하드웨어 성능 경쟁을 넘어 실제 제조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과 데이터 확보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로봇이 사람의 작업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각종 센서 데이터를 동일한 시간축에서 정밀하게 동기화하고,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수까지 정량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4일부터 7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2026 로보월드’의 참가기업인 아이엘로보틱스의 정문식 피지컬AI 연구소장은 휴머노이드 산업의 핵심 과제로 ‘실증’을 꼽았다.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도 중요하지만, 공정에서 로봇이 사람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엘로보틱스는 자회사 등의 제조현장을 실증 공간으로 활용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자체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한 뒤 모델 재학습과 강화학습, 배포까지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 연구소장은 이 과정에서 데이터 거버넌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로봇 투입 전 ‘어떤 작업을 맡길 것인가’부터 찾아야
정 연구소장은 휴머노이드의 활용 방식을 기존 산업용 로봇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자동화가 이뤄진 곳에서는 산업용 로봇이 정밀도와 반복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하는 반면, 휴머노이드는 사람이 담당하고 있는 단순 반복 작업 가운데 기존 방식으로 자동화하기 어려운 영역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휴머노이드 자체는 사람이 해야 할 작업 가운데 단순 반복 작업을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접근은 아이엘로보틱스의 사업 방향과도 연결된다. 그는 “고객사의 공정을 직접 살펴본 뒤 로봇을 투입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내고, 이에 적합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공급하는 기술 컨설팅형 사업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며 “국내는 물론 해외 제조현장으로 확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2026 로보월드 참가 역시 이러한 사업 방향을 알리는 계기로 활용할 계획이다. 아이엘로보틱스는 전시에서 엔터테인먼트, 제조공정, 보안 등 세 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로봇 솔루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회에 출품되는 로봇 중 휴머노이드인 아이엘봇 Y1은 30개의 관절 자유도와 시각·청각·촉각 센서를 바탕으로 사람과의 상호작용과 자율주행에 초점을 맞췄고, 아이엘봇 H2는 173cm·55kg의 전신 설계를 기반으로 공연과 대규모 퍼포먼스에 대응하도록 개발됐다. 아울러, 코워커 로봇인 아이엘봇 C2와 C1도 전시장에서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정 연구소장은 “전시회를 통해 고객의 요구를 확인하고, 현장에서 나온 요구사항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전시회 참가 의의를 밝혔다.
영상 축적만으로는 안된다…제조현장 암묵지 데이터화가 관건
정 연구소장이 특히 강조한 부분은 제조현장의 ‘암묵지’를 데이터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그는 제조현장에서 데이터를 수집할 때 단순히 카메라로 작업 영상을 축적하는 방식만으로는 로봇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취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카메라 영상과 함께 센서 신호, 장비의 움직임, 작업 결과 등을 동일한 시간축에서 맞춰야 과정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타임 싱크’를 핵심 요소로 들었다. 여러 센서에서 발생하는 신호가 서로 다른 시간 기준으로 저장될 경우 각 데이터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 연구소장은 “무조건 찍어내기만 하는 데이터는 쓸모가 없다”며 “센서 시그널과 장비의 움직임 등을 타임 스텝에 맞춰 동기화하고, 잘못된 결과가 발생한 원인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소의 용접공정을 암묵지의 사례로 든 그는 “암묵지를 로봇에 학습시키려면 손의 움직임뿐 아니라 비전과 사운드, 용접 과정에서 나타나는 빛과 파장까지 종합적으로 정량화해야 한다”며 “영상을 축적하는 것과 작업 노하우를 데이터화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러한 데이터 수집 방식은 아이엘로보틱스가 구축하려는 데이터 파이프라인과도 맞닿아 있다. 회사는 희소한 데이터의 확보와 현실 변수에 대한 대응을 핵심 경쟁요소로 제시하고 있으며, 정 연구소장은 여기에 공정별로 필요한 데이터를 선별하고 업무에 맞는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이 더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 하드웨어 활용하되 핵심 부품·센서는 자체 경쟁력 고도화
정 연구소장은 로봇 산업에서 중국의 하드웨어 생태계를 현실적으로 배제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액추에이터와 감속기 등 로봇을 구성하는 주요 부품에서 중국 업체들이 폭넓은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하면서 국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연구소장은 “모든 부품을 국산화하는 방식보다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부품과 센서부터 자체 기술력을 갖춰 제품에 적용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며 “중요한 부품과 플러스알파가 되는 부분을 국산화해 자체적인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소프트웨어 역시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에만 의존하기보다 특정 공정과 작업에 적합한 태스크 특화 모델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기존 모델을 활용하면서 작업 과정별 데이터를 추가하고 강화학습을 적용해 현장에 맞는 솔루션을 만드는 방식이다.
정 연구소장은 “사람이 수행하는 반복업무를 로봇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최적화해야 한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단순 반복작업을 수행하는 영역을 찾아내고 이를 제안하는 것이 아이엘로보틱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