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기계가 똑똑한 다이어트를 한다?", "공작기계는 팔방미인?"
기계산업의 마더머신(Mother-machine)인 공작기계가 몸집은 줄여가면서도, 여러 가지 기능을 한 대로 모으는 복합화를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작기계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각 기능의 공작기계들이 한 대의 기계로 '헤처모여'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현재의 공작기계는 전통적인 분류로는 답할 수 없는 복합화를 이룬 '복합가공기'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공작기계는 '기계를 만드는 기계' 혹은, '기계의 어머니'라 불리면서 기계산업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분야다. 금속소재를 가공해 각종 기계부품이나 기계를 만들어내는 공작기계의 기능은 근대산업 발달과정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이렇듯 기계산업에서 근본이 되는 공작기계가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한 진화를 거듭하면서 근 20∼30년 동안에 고속화, 복합화라는 기술 및 시장의 주요 화두를 성실히 쫓아가고 있다. 여기서 공작기계의 고속화 및 복합화는 단순히 보면 일맥상통하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다분히 다른 개념으로 최근엔 고속화보다 점차 복합화를 염두한 기술 및 제품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미래 공작기계 기술이 '빨리'보다는 '정밀'을 더 요구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어쨌든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이 기계를 업계에서는 편의상 '복합가공기'라 부르고 있으며, 이 복합가공기는 이제 별도의 제품군으로 구분해야 할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복합 가공기 통합적인 기준 없어
현재 공작기계 업계가 '복합가공기'라 명명하는 공작기계를 생산하고 있지만, 복합가공기에 대한 업계의 통합적인 기준이 없고, 기업마다 복합가공기가 수행하는 '복합'의 의미도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복합가공기는 이것이다"라고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국내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터닝센터나 머시닝센터도 각각 기본적인 선반과 밀링 기능에 필요에 따라 복합한 것으로, 어느 정도 시각적 차이는 있을 뿐 복합가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합가공기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 일본의 주요업체들의 사례와 함께 국내 복합가공기 생산업체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복합가공기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기존에 터닝 및 머시닝센터는 선반 혹은 밀링 기능을 기본으로 필요한 기능을 추가한 정도라면, 업계에서 말하는 복합가공기는 선반과 밀링기능 등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이 독립적, 개별적으로 수행하도록 완전히 복합된 '멀티태스킹(Multi-Tasking)' 기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필요에 따라 일부기능이 추가된 기존 공작기계는 온전한 의미에서 복합가공기라 불릴 수 없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공작기계는 일반적으로 가공방법에 따라 선삭용인 선반과 밀링용인 밀링기로 나뉘는데, 국내에 공작기계 도입 초기인 1940∼50년대에만 해도 이와 같이 선반 혹은 밀링으로 공작기계를 구분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기계기술과 가공기술이 발전하면서 '70∼80년대부터는 선반을 베이스(Base)로 밀링기능이 추가된 터닝센터, 반대로 밀링을 베이스로 선삭기능이 추가된 머시닝센터가 각각 등장해 기능의 복합화가 점차 이뤄졌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와 공작기계에 대한 복합화, 고속화, 고생산성 등이 요구되면서 앞서 언급했듯이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완전한 복합가공기가 등장,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더 이상 공작기계를 전통적인 개념으로 선반, 밀링 등으로 나누는 것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지는 발상이 돼 버렸다.
獨 日기술선도…국산은 가격으로 승부
복합가공기는 여타 기계산업처럼 기계선진국인 독일·일본이 기술을 선도하고 있으며, 주요 공급업체들은 최근 들어 주요 기계전시회를 통해 기술력을 자랑이나 하듯이 경쟁적으로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복합가공기를 해외시장에 내놓고 있으며, 독일·일본 제품과 비교해 기술력과 제품군의 다양함은 떨어지지만, 가격경쟁력만큼은 충분히 앞서있어 해외수출을 점차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세계시장에서 손꼽히는 주요업체로는 DMG(독일), 야마자키마작, 오쿠마, 모리세이끼(이상 일본) 등이 세계 4대 메이커로 유명하며, 국내 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 위아 등도 10대 메이커에 들어간다.
복합가공기의 시장규모는 세계시장을 다 포함해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복합가공기를 규정할 경우 터닝센터, 머시닝센터도 포함될 수도 있지만, 앞서 정의한대로 복합가공기를 엄격히 구분한다면 시장규모는 훨씬 줄어든다. 이유는 복합가공기의 용도 때문인데, 대게 정밀도가 높고 복잡한 가공물 등 고부가가치 가공물을 제작할 때 쓰이는 특성상 특수기계 및 부품제작 업체나 높은 가공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들만 적용할 수 있는 한계성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복합가공기는 전체 공작기계를 리드하는 선도기술력의 결정체로서 가공기술력이 앞서 있고, 주로 가공단가가 비싼 유럽이나 일본, 미국 등이 주요 수요처일 뿐 전세계적으로 범용화 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복합가공기의 수요는 전무하다시피 하며, 국내 생산량의 거의 대부분이 해외수출용으로 공급되고 있다.
복합가공기, 수출량의 10% 차지
국내에서 최초의 복합가공기 출시는 두산인프라코어(이하 두산)가 '03년 개발·출시한 'PUMA MX시리즈'라 할 수 있다. 두산은 공작기계 생산량 중 70% 가량을 해외로 수출하는 수출전문 기업이기 때문에 해외 공작기계 업체들의 기술트렌드를 눈여겨보면서, 이미 지난 '90년대 말부터 터닝센터와 머시닝센터 가공을 구현할 수 있는 복합가공이 가능한 PUMA TL/TT시리즈를 개발한 바 있다. 두산 공기자동화BG장 김웅범 부사장은 "현재 두산의 복합가공기 수출은 전체 수출의 약 10%가량을 차지하며, 매년 20% 이상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업체로는 두 번째 복합가공기 메이커 반열에 들어선 위아는 지난 '05년 'SKT시리즈'를 선보이며, 지난해에도 꾸준히 후속모델을 출시하면서 세계시장에 이름을 알려나가고 있다. 위아 공작기계사업부의 신풍수 이사는 "우리가 복합가공기 분야에서는 후발주자지만 꾸준히 해외마케팅에 주력해 내년에는 전체 수출 대비 10%까지 수출량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내 공작기계 3대 메이커인 화천기공은 두산인프라코어, 위아와는 다른 컨셉을 지향하고 있다. 우선 화천은 앞서 두 회사와 같이 고기능 복합가공기보다 현재 시장에서 선호되고 있는 터닝, 머시닝센터 등 실용적인 공작기계를 우선 생산해 실수요자들의 제공한다는 방침 때문이다. 화천기공 기술개발연구소 염규용 테크놀로지센터장은 "국내 최초로 5축 머시닝센터를 개발한 화천기공은 기계 개발에 실용성을 가장 중요시한다"면서, "향후 복합가공기 개발은 관련시장이 성숙한 이후에 뛰어들어도 된다"고 말한다.
기대비용 높지만 아직 범용화 멀어
산업이 점차 고도화되면서 기계 및 부품에 대한 고정밀 요구와 함께, 다품종 소량생산과 여러 가지 설비가 필요한 복잡한 형태의 부품인 의료기기, 우주항공, 정밀기기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각광 받으면서 복합가공기의 수요발생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복합가공기가 '가공물에 대한 단 한번의 체크로 여러 공정을 소화'한다는 매력이 가장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공물을 여러 대의 기계에 옮기지 않고 한 대의 기계에서 선삭, 밀링, 드릴링, 탭핑 등 다양한 가공을 동시에 처리한다는 것은 가공물에 대한 정밀도를 혁신적으로 높이는 계기를 마련한다.
또한 복합가공기는 여러 대의 설비가 소화해야 할 기능을 단 한 대로 해결하기 때문에 협소한 공간에서도 최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을 준다. 이는 대형 설비라인을 갖춘 대기업보다 설비면적이 좁은 영세기업일수록 복합가공기에 대한 수요발생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국내 제조업계는 물가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 및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여러 가지 리스크로 인해 공작기계 구매 시 가격 및 성능에 대한 관심과 효율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 이로 인해 가공업자들은 가능하면 장비 1대에서 선삭 및 밀링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공정 집약형 복합가공기'의 요구가 빈번해 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복합가공기는 가격적으로는 기존 공작기계에 비해 평균 1.5배 가량 높은 정도로 면적대비 효용가치,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따져보면 충분히 구매를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고, 여러 대로 가능했던 공정이 한 대로 가능해지면서 오퍼레이터(Operator)가 한 사람으로도 충분해지면서 복합가공기로 인한 인건비 절감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복합가공기의 수요는 전세계적으로도 일부에 지나지 않듯이 범용화되기 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존 공작기계를 대신할 '차세대 공작기계'로써 복합가공기를 지지하기에는 아직 힘든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국내에서만큼은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복합가공기가 갖는 기능적 탁월함을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현재로서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자동차부품 등 일반 기계산업에서도 적용되고 있다지만, 보다 고정밀을 요구하는 의료기기, 우주항공 분야 등에서 그 수요가 빈번히 발생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들 분야에 대한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은 현실과 국내에 복합가공기에 대한 수요가 전무하다는 것은 아직까지 국내산업이 '복합가공기 시대'로 가기에는 멀었다는 반증이다.
정밀산업 미성숙, 전문인력도 부족
또한 복합가공기는 높은 가공기술력과 전문적인 오퍼레이터를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복합가공기에 대한 수요는 가공기술력이 높은 기계선진국인 유럽, 미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생산 및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복합가공기가 절실할 정도로 관련 산업이 성숙되지 못했고, 숙달된 전문인력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두산인프라코어 해외마케팅팀 정두영 대리는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그 기계를 활용할 만한 가공기술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복합가공기에 대한 수요가 현재는 해외 선진국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향후 5년 내외로 국내에서도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고 복합가공기의 본격적인 국내 상륙은 향후로 미뤘다.
공작기계가 점점 복합가공기로 옮겨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기술 추세다. 또한 제조업체들이 급변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해야 할 가치인 고정밀, 고부가가치, 다품종 소량생산, 생산효율성 등을 복합가공기는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복합가공기가 모든 가공분야에서 필요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국내에서는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복합가공기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