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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대통령을 만나다 -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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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대통령을 만나다 - 1편

정치와 함께 흥망성쇠를 거듭한 역사의 산 증인

기사입력 2010-03-18 16: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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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일보]
실제로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골프는 정·재계 인사들만이 즐길 수 있는 특정 계층을 위한 스포츠였다. 그렇다면 최고 권력자인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과 골프의 상관 관계는 어떠했을까?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골프를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으로 인해 국민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골프에 정치·군사적 목적을 담은 대통령들

민족적 상실감을 골프장 건설로 승화한...영친왕

골프, 대통령을 만나다 - 1편
우리나라 골프의 기원에 대한 여러 설들이 있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에 볼모로 보내져 불운한 인생을 살았던 영친왕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영친왕이 골프의 기원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정규 규모의 골프장으로 한국 골프의 본격적인 출범의 계기가 된 군자리 코스 건설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린이 대공원이 들어서 있는 군자리 코스의 터는 당시 왕가인 전주 이씨의 유능 자리로 왕실의 말과 양을 사육하던 곳이다. 일본에서 골프를 접했던 영친왕은 30만평의 부지를 무상으로 불하했을 뿐 아니라 건설 하사금과 보상금까지 내놓으며 군자리 코스의 건설을 적극 지원했다. 국제적 규모의 골프장을 건설해 민족적 상실감을 대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던 것. 영친왕은 결국 군자리 코스 완공의 희열을 경험했고 몇 차례 라운딩을 했었지만, 끝내 창덕궁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이 되고 말았다.

군사적 목적으로 골프 권장한 ...이승만 전 대통령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한 이력으로 인해 골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지만 직접 필드에 나서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골프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49년 8월 15일 정부 수립 1주년 기념 축하연. 여기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주한 외교 사절들이 휴일 골프를 즐기기 위해 미공군기 편으로 일본 본토나 오키나와 미군기지 골프장으로 날아간다는 말을 듣게 된다. 대표적인 반일 인사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굴욕감을 느꼈음은 물론 북한의 침략 시 미군의 공백에 대한 불안감까지 더해 그 자리에서 골프장 건설을 지시하지만 한 달이 채 못 되어 6·25 전쟁이 발발했고 골프장은 완전히 초토화되고 만다.

전후 이승만 전 대통령의 관심과 배려로 당시 외자청장이던 고위 공무원 이순용 씨가 앞장서 정부 차원에서 골프장을 복구하는데 그 골프장이 바로 군자리 코스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군자리 코스를 비롯한 골프장을 대외적인 정치 협상의 로비 메카로 적극 활용하며 골프를 정치적·군사적인 목적으로 적극 활용했다. 골프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내 골프의 기틀을 마련한 통치자로, 한국 골프 100년사의 1면을 장식하고 있다.

대통령 골프의 창시자 ...전두환 전 대통령

역대 대통령 중 골프를 가장 잘 쳤던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 정치적으로 골프를 적극 활용하는 것은 물론 골프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권력의 힘을 발휘하기도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라운딩을 할 때마다 앞뒤 홀을 하나씩 비우게 해 ‘대통령 골프’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80타대 중반 정도의 실력을 보유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3년 대통령을 위한 별장인 청남대에 간이 골프장을 지으며 골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가장 리더십이 강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 초기 골프장에서도 대규모의 추종세력들을 이끌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정·재계 인사들이 골프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골프장은 돈과 권력의 상징으로 확고한 이미지를 굳혀 갔다. 이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스스로 재임 기간 동안 골프를 치지 않을 것을 선언했고 사회정화 정책을 내세워 골프를 사치성 유희로 낙인찍고 공직자의 금기종목으로 분류한다. 이로 인해 각종 방송매체에서도 골프를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가 됐다. 또한 각종 친선경기 등이 사라지면서 일반 대중과 골프가 완전히 격리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군사 정권의 분위기를 떠올려 볼 때 대통령이 금기시한 골프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빠르게 금기조항으로 매장되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여파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해외 순방 중 골프를 통해 ‘제3세계 외교 확장’ 등 값진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철저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골프를 이용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폐쇄적인 정책으로 인해 국내 골프는 암흑기를 거칠 수밖에 없었고,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필드 정치로 대통령이 되다 ...김영삼 전 대통령

국내 정치 사상 최대의 정치 협상으로 손꼽히는 ‘3당 합당’을 통해 대통령이 된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골프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3당 합당’이 필드 회동이라는 정치 용어를 만들어 내며 골프장에서 이뤄진 것. 회동이 있었던 1989년 당시 정치적인 상황은 야 3당의 3김 총재들이 각자의 이익을 앞세운 미묘한 감정 싸움에 예민했던 때였다. 이 때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가 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에게 안양 컨트리 클럽에서 골프 회동을 제안한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골프 회동을 이어갔고 결국 이듬해 범 보수세력 연합이라는 결론을 도출, 1990년 1월 22일 3대 여야합당을 통한 거대 여당인 민자당을 출범시키며 우리나라 정당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거대 여당의 출범과 대통령의 탄생까지 이어진 정치적 상황을 통해 골프 역시 크게 주목을 받게 됐고 골프장이 총 66개소까지 늘어나며 연간 5백만 명의 골프 인구를 창출하기에 이른다.

집권하는 과정에서 골프 덕을 크게 봤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공직자 골프 금지령을 내리는 등 골프를 정치적인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골프는 돈 많은 사람들이나 즐기는 것이라며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물론 재임 기간 중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청와대 경내에 설치된 골프연습장을 철거하고 청남대 골프장에 대한 관리도 전혀 하지 않았다. 실제로 110타 대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골프를 못 쳤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런 정책으로 인해 국내 골프산업은 쇠락 일로를 걷게 되었고 결국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골프업계의 큰 위기를 초래한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골프를 통해 정치세력 규합을 시도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골프, 대통령을 만나다 - 1편
대통령이 되기 전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재임 기간 중에는 그 누구보다 골프에 우호적인 시각을 내보였다. 우리나라 첫 야당 출신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골프는 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었던 것. 1997년 대선 당시부터 골프의 대중화를 강조해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러나 IMF라는 악재를 만나 골프의 대중화를 위한 정책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골프간 아이러니한 인연은 IMF 시절에도 이어지는데, 박세리라는 걸출한 골프여제의 등장으로 국민들에게 큰 위안을 선사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정치·경제적으로 전혀 불가능했던 부분이 골프를 통해 해소된 것은 물론 골프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한결 너그러워진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골프업계의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그렇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골프 실력은 어땠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도 7대 국회의원 시절에 잠시 골프를 즐겼다는 설도 있으나 이후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 골프를 즐길 수 없게 됐다. 공식적인 라운딩을 한 기록이 없고, 이후 골프를 칠 수 없었으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골프 실력은 영원한 비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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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산업일보 제휴사 골프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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