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배일호의 ‘신토불이’란 노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문득 최근 몇 년간의 국내코스설계시장을 떠올려 보자니 이 노래가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 하긴, 어느 쪽이든 ‘신토불이’란 말을 필요로 하는 요즘이다.뿌리를 잘 알아야 내 것이 귀한 줄도 아는 법! 국내 코스설계의 뿌리부터 현재까지를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1921년 6월 1일, 대한민국의 첫 골프장 효창원 골프코스(9홀·2,322야드)가 개장한 날이다. 당시 일본 철도국 직원이 중국 만철 본사 출장길에 성포골프장을 보고 매료돼 대한민국에 골프장 건설을 추진했다. 용산 효창원 부근 국유지를 코스부지로 선정하고, 영국인 던트(H.E.Daunt)에게 코스설계를 의뢰했다. 말하자면 한국 최초 골프장의 설계자는 자국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 청량리 골프코스(16홀·3,942야드)를 거쳐 1930년 국내 최초의 18홀 정규 코스인 군자리 코스가 문을 연다. 군자리 코스는 영친왕이 골프장 부지를 제공할 정도로 한국 골프의 메카이자 총본산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 역시 설계에 있어서는 자국인이 아닌, 이노우에(제1회 일본아마추어 선수권 챔피언)가 기본 설계를 맡고 영·미 코스 설계에 조예가 깊었던 아카보시(제1회 일본오픈 우승자)가 실시설계를 담당했다.
지적도와 평면도 하나로…
1950년대까지도 두 곳에 불과하던 골프장이 1964년 한양 컨트리클럽이 개장하면서 예탁금 회원제 골프장 건설이 활성화를 맞는다. 특히, 한양 컨트리클럽은 故 연덕춘 프로의 설계로 만들어진 클럽으로 지금까지 굳건히 이어오고 있는 역사 깊은 클럽이다. 이어 뉴코리아(1966), 안양(1968, 現 안양베네스트 골프클럽) 등이 개장되면서 한국골프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여기서 국내 코스에 제대로 된 설계의 개념이 세워진 시점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최초의 국내 코스설계가인 연덕춘 프로는 이 시점을 부평 시사이드 컨트리클럽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한국에는 제대로 된 국내 코스설계가가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설계도에 의해 코스를 시공한다는 것 역시도 전무할 수밖에 없었다. 지적도와 평면도 하나 가지고 대충 눈짐작으로 코스를 만들어 왔었고, 연덕춘 프로 역시도 프로였던 본인의 플레이 감각을 가미해 눈으로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부평 시사이드 컨트리클럽(現 인천국제 컨트리클럽)을 설계한 연덕춘 프로는 이때부터 설계의 체계를 잡아갔다. 말하자면 부평 시사이드 컨트리클럽은 목측설계시대를 벗어난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코스설계시장에 부는 외지(外地) 바람
우리나라 골프사의 육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국내 골프장 시장이 매우 성장하게 되는데,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정부규제의 빗장이 풀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골프장 사업에 뛰어들었고 90년대 초반, 국내 골프장 수는 급격히 늘어나기에 이르렀다. 이때에 국내 몇 안 되는 골프설계가들의 희소가치는 실로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외국 코스설계가들이 한국에 본격 진출하기 시작하며 조금씩 변화양상이 일었다. 당시만 해도 미미했던 그들의 위치는, 최근 몇 년 사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국내 코스설계시장의 선두를 호시탐탐 넘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00년 이후 개장한 골프장 중 3분의 1 이상이 외국 설계가의 작품이었다. 니클라우스디자인, 로버트트렌트존스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회사뿐만 아니라 제이콥슨, 골프플랜, JMP, 허잔프라이인바이런멘탈, 넬슨앤드하워스, 캐시모어 등의 업체까지 한국코스설계시장에 노골적으로 발을 들여 놓은 지 이미 오래다.
넘치는 수요와 맹목적 사대주의
왜 외국 코스설계가들은 한국으로 눈을 돌릴까. 바닥을 치는 경제 상황 속에서도 부지를 찾아 골프장 유치를 도모하는 골프장업계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각종 개발 제한과 조세특례제한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수도권은 아닐지라도 지방은 상황이 다르다. 외국 코스설계가들은 향후 계속해서 한국의 골프장이 늘어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지난 2007년 미국의 경우 사상 처음으로 골프장 증가가 제로에 그치는 결과를 낳을 만큼 외국 골프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는 추측이 기정사실화됐다. 그에 반해 한국은 예전과 비교해 골프업계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평가되지만 골프장의 수가 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요즘 한국 골퍼들의 눈이 높아지면서 리노베이션을 하는 골프장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리노베이션시장까지 외국 코스설계사들의 진출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외국 것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맹목적 사대주의’가 이 같은 흐름을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점차 노골적으로 한국코스설계시장을 노리고 있는 그들과의 전쟁에서 국내 코스설계가들은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꾸준한 연구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
농산물은 물론이요, 육류도 국내산이 더 비싸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맛있고 좋으니까. 이 호쾌하고도 당연한 이치가 어떤 분야에서는 왜 자꾸만 어긋나는 것일까. 재밌는 사실은 설계비에 있어서 국내 코스설계가들이 외국 코스설계가들에 비해 절반 이상 적은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 코스설계가들의 선호도가 예전과 비교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내 코스설계가들의 입지는 굳건하다.
사실, 그린이나 페어웨이 언듀레이션 그리고 벙커 등의 모양을 잡는 셰이핑 작업에 있어서 외국 코스설계가들의 상상력은 차원이 다르다. 한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던가. 더 많이 보고 느낀 자의 구상력이 한 수 위인 것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코스설계가들이 더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 지형을 누구보다도 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산악지형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뚜렷한 사계절을 가졌다. 반면에 외국은 주로 평지에 코스를 앉힐 뿐만 아니라 사계절이 뚜렷하지도 않다. 그들의 지형, 기후 이해력이 국내 코스설계가들 보다 뛰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그동안 외국의 유명설계가들이 만든 골프장 중 일부는 홀과 홀 사이의 이동거리가 길거나 그 반대로 홀과 홀이 너무 인접해 있어 사고위험이 있거나, 코스에 급경사가 많은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국내 코스설계가들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가장 큰 증거다. 하지만 외국 코스설계가들은 ‘맹목적 사대주의’와 풍부한 경험으로 한국코스설계시장을 조여 올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국내 설계가들의 꾸준한 연구와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기발한 상상력은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요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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