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의 공정을 통해 소재를 부품으로 생산하거나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기초공정산업인 뿌리산업이 미래산업의 열쇠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사양산업 또는 3D산업 등 첨단산업과 대별되는 산업으로 인식돼, 생산기반기술로서의 핵심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이 부각되지 못해왔다. 그러나 제조업 전반에 걸쳐 기반 역할, 타 산업과의 연계성, 최종 제품의 품질과 성능을 결정하는 중요한 생산기반기술로 부각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도가 높은 뿌리산업 분야에 선진국에서도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부활의 핵심이라고 판단,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미래산업의 열쇠, 뿌리산업'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독일과 일본 등은 기존 뿌리산업군을 과거의 3D에서 ACE(Automatic + Clean +Easy)로 산업화하고자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미국 및 영국 등도 제조업 비중 확대를 위해 생산기반 산업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래 첨단기술을 뒷받침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면서 제조업 경쟁력 강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요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방 및 후방연쇄효과가 모두 클 뿐 아니라 취업유발효과 역시 양호한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첨단산업 혁신 원천
뿌리산업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활성화 방안이 미흡한 실정으로, 체계적이고 상세한 산업전략 구축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이상 사양산업이 아닌 제조업 역량 강화를 위한 핵심 기초산업인데다 제품의 형상제조 또는 특수기능을 부여하기 위해 소재를 부품으로 생산하거나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공정기술’ 산업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뿌리기술은 세계적 명품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스위스 손목시계(롤렉스 : 주조·소성가공·표면처리), 독일 쌍둥이 칼(헹켈 : 주조·소성가공·열처리), 이탈리아 자전거(콜나고 : 금형·용접·소성가공), 영국 만년필(파커 : 소성가공·열처리·표면처리) 등 명품 제작에 높은 수준의 뿌리기술 이 활용됐다.
자동차, 선박, 항공기 등 많은 부품으로 구성되는 완제품의 경우, 뿌리기술 관여도가 높기 때문에 이들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뿌리기술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뿌리기술은 제품생산의 시작(재료)과 끝(마감)을 담당하며, 최근 융·복합 경향 증대와 함께 제품 및 기술혁신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내재기술이지만 소재를 부품으로,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제품경쟁력의 근간을 좌우하는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한다.
다양한 기술뿐 아니라 서비스와도 결합해 제품 차별화에 기여하는 다른 의미의 '첨단기술'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애플은 독자적 금형기술인 Unibody 공법을 통해 자사 제품의 디자인 혁신을 달성하고 있지만 국내 뿌리산업의 경쟁력은 기술력, 부가가치에서 타 산업과 선진국보다 열세를 면치못하고 있다.
납기 및 가격 등에서는 경쟁력이 있으나, 기술수준은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의 임가공형태를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독자적 기술개발 여건이 취약하다.
뿌리산업은 중소기업의 비중이 대부분이며, 2~4차 협력사에 집중돼 있고 평균종사자 수도 10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뿌리기업이 원청 또는 1차 협력사인 경우는 10% 수준에 불과하다는 통계지표만으로 그 수준을 가늠케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유승목 박사는 국내 뿌리산업의 당면 문제와 관련, 기술력을 갖춘 인력의 부족에 있다고 설명했다.
뿌리산업이 3D업종으로 인식돼 업계에 젊은 석·박사급 연구자가 거의 없고, 인력의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됐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뿌리기업은 대부분 영세 중소기업으로 내수 및 대기업의존 일변도로 인한 가격 절감 압력이 심각한 점, 이로 인해 기술개발에 한계가 발생하고, 뿌리산업의 경쟁력을 약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박사는 "일반인의 인식도 문제"라며 "우리나라는 육체노동 및 중소기업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비교적 좋지 않은데 비해 뿌리산업이 발달한 독일, 일본의 경우 이에 대한 인식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덧붙였다.
뿌리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라
정부는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최근 뿌리산업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 지원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는 2010년 5월 '뿌리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을 마련하고, 뿌리산업의 신3D
(Digital, Decent, Dynamic) 산업화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어 2012년 1월 '뿌리산업의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 제정 및 시행, 2012년 12월에 구체적 실행 방안인 '제1차 뿌리산업진흥기본계획'을 확정했다.
뿌리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도 2013년 472억원에서 2014년 563억원으로 전년 대비 19.2% 증액 반영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뿌리산업을 포함해 산업파급효과가 큰 4대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이들 분야의 인력양성·공급 등 산업여건 지원 방침을 발표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인력양성의 시급성 및 타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를 고려해 해양플랜트, 임베디드SW, 뿌리산업, 섬유·패션 산업을 4개 전략산업으로 지정했다.
뿌리산업의 타 산업 파급효과는 산업 전반의 공통기반인력과 공정혁신을 포괄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국내 뿌리산업은 전·후방 모두에 대한 산업파급효과가 높은 수준이다.
전방연쇄효과가 높은 산업은 기계, 전기전자, 금속, 수송장비, 건설, 화학산업 등이고 후방연쇄효과 측면에서는 광산품, 석유 및 석탄, 전력, 가스 및 수도업종 등이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국내 뿌리산업의 높은 자원 및 에너지 의존도를 짐작케 하는 것으로 뿌리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에너지 효율화 유도와 이를 위한 정책 검토 등이 필요하다는 말로 풀이된다.
뿌리산업 생산이 10억원 증가할 때 뿌리산업을 포함한 총생산 증가효과는 20억 4,000만원 수준이다.
전방 및 후방연쇄효과 정도를 전 산업 평균에 대한 상대적 크기로 각각 나타낸 감응도계수와 영향력계수를 보면, 뿌리산업의 경우 모든 계수가 전 산업 대비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데 전방연쇄효과의 상대적 크기인 감응도계수가 특히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취업유발효과는 평이한 수준이며, 시장규모는 향후 2020년까지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선진국은 제조업의 근간을 다지기 위해 뿌리산업 발전정책을 마련하고, 기반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총체적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독일의 뿌리산업은 '지능형 지속가능 제조시스템'으로 진화를 도모하는 양상이다.
2006년 미래형 제조기술개발 및 시장지향형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17대 첨단기술 분야를 지원하는 '독일 하이테크 전략'을 수립, 10개의 뿌리산업 첨단 클러스터를 운영하는 한편, 2006~2009년 기간 동안 총 60억 유로 중 2억 5,000만 유로(약 5,000억 원)를 뿌리기술 분야에 지원했다.
이러한 지원에 따라 뿌리산업은 3D업종에서 ACE(Automatic+Clean+Easy)로 변모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Industry 4.0' 비전을 제시해 제조업 생산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다양한 분야에서 강소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전 세계 2,734개 히든 챔피언 중 절 반에 가까운 1,307개가 독일에 몰려 있는데, 독일 인구 100만 명당 히든 챔피언 수는 16개다. 반면, 미국은 1.2개, 일본은 1.7개, 중국은 0.1개이며, 한국은 0.5개에 불과하다.
유승목 박사는 "창업의 경우에도, 경영진의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 기술적으로는 끈기 있는 기술개발 및 도입의지가 필요하며, 시장 측면에서는 초기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매우 적극적인데, 이것이 사업 지속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이 산업현장의 잘 교육된 엔지니어에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각 협회 등 단체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홍보 및 지원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조업 기반기술 고도화 추진
뿌리기술을 포함한 모노즈쿠리 기반기술의 고도화, 인재육성, 글로벌 브랜드화 등 3대 전략을 제시하고, 설비지원부터 설계·구매·생산·판매까지 전방위적 지원 및 해외진출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모노즈쿠리산업은 제조업의 근간이 되고 숙련기술이 필요한 20개 업종으로, 주조·단조·금형·용접·열처리·도금·임베디드SW·플라스틱성형·절삭가공 등이 해당된다.
중국은 뿌리산업 육성을 통해 주력산업의 기반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클러스터 발전전략'(2005)을 통해 30여개의 금형집적화 단지를 조성하고 '10대 산업 진흥조치'(2009)를 통해 자동차·철강 등 주력산업의 기반이 되는 혁신형 뿌리산업 중소기업의 육성 추진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 박사는 "국내의 경우, 뿌리산업은 전통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해 연구자의 개발의지뿐 아니라, 정책적 지원 역시 미흡한 상황이다. 관련 분야 선진국의 경우, 생산기반기술 분야별로 특화된 연구소를 두고 있으며, 대학에서도 관련 분야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이와는 대조적인 경향이 강한 편이이라고 역설했다.
뿌리산업 선진국, 높은 기술력과 점유율 확보
선진국에서는 뿌리산업 개별 기술 분야에서 특화된 독립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캐나다, 호주의 경우 발표된 뿌리기술 분야 특허 및 논문이 최근까지도 핵심기술로 인용되고 있는 등 해당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용접기술의 경우 독일은 아헨공과대학 ISF-Welding and Joining Institute, 일본은 오사카 대학 Joining and Welding Research Institute(JWI)를 두어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으며, 영국과 미국, 프랑스에서도 비영리 법인체로 발족된 The Welding Institute(영), Edison Welding Institute(미), Institute de Soudure(프) 등 용접기술을 전담하는 연구기관을 두고 있다.
차별화된 시장전략 확보 시급
뿌리산업은 제조업의 기초체질 및 경쟁력 강화뿐만 아니라 디자인 등 타 기술 및 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 첨단 미래산업 및 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신시장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오래된 산업이 아닌,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중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원천인 뿌리산업의 장기적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3D업종’, 저부가가치 ‘전통·사양산업’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첨단산업과의 융·복합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산업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위해 체계적인 홍보수단이 필요하다.
뿌리기술의 체계적 발전을 위한 기술수준, 활용실태, 관련 인력 등에 대한 DB 구축은 물론 뿌리기술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대기업)의 동반성장을 위해 기업 수준별로 차별화된 정책 마련 역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6대 뿌리산업별 및 공정별로 기업규모에 따른 연구 및 기술개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중견기업은 기술력을 제고하고 중소기업은 차별성을 확보하는 장기적 협업 인프라 구축이 요구된다.
산업연구원은 기존 뿌리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차별화된 시장전략의 확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국내 뿌리산업은 표준화된 생산설비로 범용 부품 및 소재 생산에만 집중해 왔던만큼 주문형 특수제품 생산 또는 디자인·모듈형 제품화를 통한 고부가가치화와 운용 효율성이 높은 자본기술 집약적 산업화를 위한 6개 업종 간 연계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뿌리산업은 기술적 암묵성으로 인해 단기간 기술모방이 어렵고 개방형 혁신보다는 자체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진보 및 첨단화가 효율적인 분야로, 교육 및 인력 양성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 산업은 신규 취업자 감소 및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술, 기능, 단순노무, 관리 분야 인력 중 특히 기술분야 인력의 감소 현상이 심각한 실정으로,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도입과 동시에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고 에너지 의존도 및 환경 문제 유발 가능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특성상 산업단지 입주 시 환경규제 등으로 인한 갈등요소가 산재해 있어 시범단지 운영 또는 뿌리산업 특화단지를 확대하는 등 정책적 지원도 필요함을 강조했다.
국내 뿌리산업은 금형과 용접에서 일부 기술수준을 확보하고 있으나, 주조 등 4개 분야는 선진국에 비해 열세로, 분야별로 특화된 공통 애로기술 R&D 허브 등을 구축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상훈 미래산업연구실 연구위원은 "대기업 하청 중심의 국내시장을 탈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과 수출지원은 물론 현행 뿌리산업 이외에도 타 산업 및 기술 분야에서도 파급효과가 큰 기초기반산업을 지속적으로 발굴 및 육성해 산업 전반에 걸친 기초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