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온수산업단지관리공단(이하 온수 공단)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처음 회사를 창업한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세라믹 분야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라며 “그때는 세라믹 용어가 일반화되지 않고, 무기 재료, 도자기 등으로 불렸다”고 설명했다.
기계와 함께 한 삶
박 대표는 정미소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계와 친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자라왔다. 그는 군대에서도 미사일 부대 소대장을 역임했고, <한국공업신문> 창간에 참여해 공업진흥청 출입 기자로 활동해왔다.
그의 삶에서 기계는 삶의 이정표와도 같았다. 박 대표는 기술영업부터 시작해 지금의 공장을 마련했다. 그는 창업 이후로 가격을 올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년 전부터 중국 산업 동향을 면밀히 살펴 저가의 기계제품이 들어올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좋은 장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고, 훌륭한 자식을 교육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제품 하나하나를 납품할 때는 시집 보내는 마음이 든다”면서 “이 장비가 아파서 돌아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술의 실패’는 ‘경영의 실패’
IMF 시기에 부도를 겪는 등 힘겨운 때도 있었다. 박 대표는 당시 실패 원인을 ‘기술의 실패’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경영의 실패는’ 곧 ‘기술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겪는 어떠한 어려움도 ‘확고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5~16년 동안 거의 일에만 매진하고 살았다. 덕분에 아이템 확장과 기술 개발이 이뤄지면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한국세라믹공업이 다시 정상궤도에 오른 현재 환경적 필터 성형기, 고분자 확성 반죽기, 효율적인 혼합기 등을 제작하면서 1천여 개의 회사가 한국세라믹공업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경영 철학, 견리사의(見利思義)
박 대표는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한자 사자성어를 항상 마음에 새긴다고 한다. 그는 ‘이득을 보면 그 이익이 의로운가를 생각하라’는 뜻의 견리사의를 삶의 철학으로 삼아 공정한 이익이 아니면 바라지 않는다. 박 대표는 “제작한 기계를 고객에게 인도한 후, 이득을 취했을 때, ‘그것이 합당한가?’를 먼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장비를 고객에게 유통함으로써 이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생각은 “업체가 요구하는 장비를 제작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환 대표는 “한국세라믹공업의 기술력이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세라믹 설비 분야 미다스 손이 되고자 하는 꿈도 이뤄질 것”이라며,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이 꿈을 반드시 달성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