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에 로컬 수출을 해오던 중소기업들 가운데 일부 기업들은 FTA 발효 이후 해외고객사들에 대한 직수출 물량이 증가하고 있다. FTA 활용 방안도 변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대기업 완성품의 ‘역내산’ 판정을 지원하기 위한 원산지 관리 및 원산지(포괄)확인서 발급에 그쳤지만, 직수출을 하면서 대기업처럼 자사 생산제품이 국내산 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협력사가 공급하는 원재료와 부분품의 원산지도 관리해야 한다. FTA 시대에는 독립적인 원산지관리 체계를 구축하면 중소기업도 자체적으로 수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넓어진다.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에 소재한 J사는 자동차배선 전문 업체로 자동차의 신경망에 해당하는 와이어링 하네스(Wiring Harness)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뭉치라고도 불리는 와이어링 하네스는 차량 내 여러 전기장치에 연결되는 수십 가닥의 배선을 다발로 묶어 만든 하나의 모듈이다. 또한 배선이 장치와 연결되는 커넥터 및 전자박스도 생산하고 있다.
1974년 설립돼 국내 첫 고유모델인 현대자동차 포니에 와이어링 하네스를 공급한 J사는 현재 아반테, i30, 산타페, 그랜저, 제네시스, K5, K9 등의 차종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이브리드카 및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고전압시스템용 와이어링 하네스도 생산하고 있다.
1997년 인도 MSSL사와 합작으로 글로벌 시장에 첫 진출한 J사는 2002년 중국 칭다오에도 진출했다. 2003년에는 리어(Lear)사와 북미 합작사를 설립한 데 이어 중국 장쑤(江蘇)와 지모(卽墨) 지역에 생산법인을 세우고 생산의 세계화를 이뤄냈다. 2012년에는 중국 사업장의 경영환경 악화에 따라 캄보디아 법인을 설립했으며, 2013년에는 국내에 송도 신공장을 가동했다. 2013년 전체 생산량 대비 80% 이상을 국외 사업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완성차 수출 및 해외 판매 증가와 해외 고객사에 대한 직수출 물량의 증가로 J사의 수출액은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2013년 무역의 날 7억불 수출탑을 수상한 뒤 2014년 8억불탑에 이어 2015년에는 9억불탑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J사가 처음 FTA 대응 체계를 구축한 것은 완성차 업체의 요구 때문이었다. 주 거래업체인 완성차 업체가 국내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할 때 FTA 특혜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자사가 공급하는 와이어링 하네스 등의 부분품이 ‘역내산’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정확한 원산지(포괄)확인서를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완성차의 수출가격 경쟁력이 강화돼 수출 물량이 증가하면, 부분품 공급물량도 늘어 회사의 매출이 증가하는 간접적인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 완성차 업계의 수출물량 증가에 기댄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협력사 원산지관리체계 구축 지원하라
J사의 국내매출과 해외매출 비율은 6대 4다. 와이어링 하네스는 전선이 가늘고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 차체 조립처럼 기계화가 어렵다. 근로자들이 실뜨기를 하듯 알록달록한 색상의 전선들을 엮어서 생산하는 노동집약적 성격을 띤다. 가격경쟁력을 갖추려면 인건비가 낮은 개발도상국으로 공장을 이전해야 한다. J사가 해외에 사업장을 둔 이유다. 하지만 국내생산을 포기할 순 없다. 해외생산은 정치상황 급변이나 천재지변 등의 리스크가 있고, 신차개발 등의 수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기 어렵다.
그런데 상승하는 인건비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직원 수를 줄일 수 없으니 다른 부문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미 마른수건을 다시 짜낼 정도로 비용통제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때 FTA를 떠올렸다. J사가 직접 수출을 하는 부분품을 대상으로 FTA 특혜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J사는 국내 협력사들로부터 공급받은 부품을 조립해 국내 고객사 또는 해외 사업장에 수출하고 있다. FTA 특혜관세를 받으려면 J사가 완성차업체에 그랬던 것처럼 협력사들로부터 정확한 원산지(포괄)확인서를 받으면 된다. 협력사들의 원산지 관리 능력을 고취시키는 게 당면과제였다.
J사는 중국과 인도, 터키, 동남아시아 등 주요 수출국의 FTA 특혜관세 적용을 목표로 협력사를 육성키로 하고 ‘기본교육 → 심화교육 → 활용’으로 이어지는 총 3단계의 교육 계획을 수립해, 협력사 수준에 맞춰 컨설팅을 실시했다. 또한 연 2회 J사 송도 본사에서 집체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집중육성이 필요한 협력사를 대상으로 회사 담당자가 직접 방문해 1대1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했으며, 원산지관리시스템 구축 등을 지원해 업무에 관한 협력사들의 이해도를 높였다.
중소기업이 FTA를 활용해 수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해주는 관세청의 YES FTA 사업도 신청해 J사와 협력사들이 한-중 FTA를 활용해 어떻게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50개 협력사 평가 결과는 2012년 평균 52점에서 2014년에는 84점으로 크게 향상됐다. 또한 원산지(포괄)확인서 정확도도 2013년 33%에서 2014년 84%로 상승했다. J사의 집중적인 노력과 협력사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가능했다.
J사는 2014년 1월 시행된 ‘FTA 원산지확인서 세관장 확인제도’를 활용해 협력사의 원산지 관리 능력을 검증키로 했다. FTA 원산지확인서 세관장 확인제도는 관세청이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원산지확인서 작성을 위한 원산지 결정기준, 품목분류, 사후관리 방법 등에 대해 업체에서 컨설팅을 해주고, 컨설팅을 통해 작성된 원산지확인서에 대해 세관장이 그 적정성을 확인해 주는 제도다. 그해 3월 인천세관장이 J사를 방문해 협력사를 대상으로 제도에 대한 설명을 실시했고, 9개월여의 준비 끝에 12월 J사와 거래하는 13개 협력사가 세관장 확인제도의 인증을 획득하는 성과를 올렸다.
관세절감 가격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져
자체적인 원산지 관리 능력을 갖춘 J사는 큰 이익을 거두고 있다. 먼저, 두 개 품목(HS코드 8538.90 및 8536.49)이 한-유럽연합(EU), 한-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FTA 협정관세가 적용되어 수입관세가 8%에서 0%로 떨어졌다. 이를 통해 2013년에는 24만 달러, 2014년에는 27만 달러의 관세 절감효과를 누렸다.
관세 혜택은 가격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미국, 인도, 터키, 캄보디아와 기타 동남아 국가 등 FTA 체결국으로 수출은 2013년 8천300만 달러에서 2014년 1억1천만 달러로 약 33%나 증가했다.
협력사들이 FTA 공급망 관리의 전문성을 확보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전산화 및 근거서류 관리 등 원산지관리 체계와 사후검증 대응체계를 구축해 만일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됐으며 협력사가 발급하는 원산지(포괄)확인서의 정확도도 향상돼 발주업체로부터의 신뢰도가 높아졌다.
이는 ‘협력사와 함께 하겠다’는 J사의 동반성장 의지에서 비롯됐다. J사는 FTA 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작 단계부터 담당자를 육성, 완성차·모듈 수출에 대한 원산지 검증을 전담하도록 해 업무 공백의 우려를 제거했다. 또한 이들은 협력사들을 직접 찾아가 담당자를 교육하고 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함으로써 FTA 전문성 강화를 함께 추진했다. J사가 FTA의 수혜를 입은 것만큼 협력사들도 FTA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J사와 협력사는 2015년 말 발효된 한-중 FTA에서 더 큰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J사의 전체 수출액 중 43%가 중국 물량이고, 협력사들 다수가 중국에 현지공장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어 한-중 FTA가 발효되면 당장 얻을 수 있는 혜택이 크다. J사의 경우 중국 공장에서 조립을 위해 보내는 부품 수출 납부관세액이 현재 연간 90억 원 수준인데, 한-중 FTA가 발효되면 수출품목이 FTA특혜관세 품목으로 지정돼 얻을 수 있는 관세절감액만 연간 8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고무업종 협력사들도 중국 현지공장으로 수출하는 원재료의 관세가 철폐되어 두드러진 비용절감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발주사와 협력사가 손을 잡고 함께 노력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