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산업은 20여 년 동안 상호간 가치 사슬의 연계성이 강화돼 왔다. 최근 중국 중심의 소부장 GVC(Global Value Chain)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비용과 효율성 기반의 GVC에서 공급망 안정화 기반의 GVC 관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한중일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GVC 연계성과 우리 기업의 대응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중국-일본의 소부장 산업은 지리적 인접성과 산업 구조의 유사성으로 다방면에서 협력과 경쟁이 이뤄져 왔으며, 각국의 경제 성장으로 GVC 연계성도 점점 단단해졌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과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관련 행정명령 등 일련의 사건들은 수출과 수입에 모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기존 GVC의 구조적 한계를 그러냈다. 이에 보고서는 소부장 사업 공급망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한중일의 GVC 연계성을 분석해 대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소부장 GVC에 대한 분석을 위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 1월 3천260개의 소부장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502개의 유효 표본을 얻었다. 분석 결과, 소부장 수출입 대상국으로서 일본과 중국의 중요성은 매우 높았다. 특히, 중국 수입의 이유는 ‘저렴한 가격’(77.2%)이, 일본 수입의 이유는 ‘국내 미생산’(42.4%)과 ‘좋은 품질’(35.6%) 때문이라는 응답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코로나19의 큰 영향에도 소부장 기업들은 수입선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공급처를 다른 나라로 변경할 필요성에 대한 설문(GVC 변화 필요성)에서 GVC 변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7%에 그친 것.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현상인 만큼, 수입처 다변화를 통해 GVC가 바뀔 개연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보고서는 ‘한중일은 자연재해와 미중 분쟁 등 경제외적 충격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지역이므로, 기존의 비용과 효율성에 기반을 둔 GVC에서 공급망 안정화에 기반한 GVC 관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소부장 산업은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아, GVC 참여 정도가 낮은 기업들조차 수입 불안정성을 크게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공급망 안정을 위한 상시적 관리 및 잠재적 위험 국가로부터 합리적인 디커플링 추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한중일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 격차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중국 중심의 소부장 GVC가 보다 강화될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일부 소부장 산업의 국내 자립도를 강화하고, 범용기술을 벗어나 더 특화되고 고급화된 기술에 기반한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