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한국 중장년층 임금근로자의 고용 불안정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에 기업이 중장년층을 더 쉽게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제도와 관행을 정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은 20일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이하 보고서)’을 발표했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과도한 고용보호를 축소하고 연공서열 중심 임금구조를 점진적으로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한국과 미국의 노동시장 고용 안정성을 비교했다. 미국 노동시장은 해고가 자유롭다. 당연히 고용 불안정성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데이터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남녀 모두 임금근로자의 ‘중위 근속연수’가 연령과 함께 안정적으로 증가했다.
‘중위 근속연수’는 해당 나이의 근로자가 현재 직장에서 몇 년 동안 일했는지 조사해 중간 값을 구한 것이다. 한국 남성 임금근로자는 50대 전후로 중위 근속연수의 증가가 멈추고, 50대부터는 급락한다. 여성은 30대 중반 이후 중위 근속연수가 증가하지 않는다.
1년 이하 근속자 비중도 40대 이후 크게 증가한다. 미국은 연령이 늘어날수록 1년 이하 근속자 비중이 안정적으로 줄어들지만, 한국은 40대 이후 다시 증가한다.
한요셉 연구위원은 “중년 이후 같은 직장에서 일하기가 미국보다 훨씬 어렵고, 일을 계속 하고 싶어도 기존 직장을 유지하기 어려워 비자발적으로 직장을 옮기는 것”이라면서 “고용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장년층 고용불안의 근본적 원인은 중장년층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노동수요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면서 “정규직 임금의 경직성, 특히 과도한 연공서열형 임금구조가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정규직 근속연수가 10년에서 20년으로 증가할 때 평균 임금상승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다.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 상승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기업은 중장년 근로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한다.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다면 높은 임금과 정년까지의 안정적 고용을 누릴 수 있지만, 기존 직장에서 이탈하면 재취업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미국은 근로자의 생산성이 하락하면 업무 강도가 약한 직무로 이동하거나 그에 맞게 임금을 적당히 조절한다. 사용자 측에선 오래 일한 사람의 네트워크나 해당 직장의 숙련을 활용할 수 있어 가급적 고용을 유지한다.
한 연구위원은 “제도적으로 고용 안정성을 유지하기보다 시장의 힘을 이용해 정년까지의 장기 재직과 정년 연장을 유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기업, 공공부문 중심 정규직 임금 연공성 완화 ▲해고 과정의 예측 가능성 강화 ▲비정규직 보호 강화 ▲고용보호 제도의 점진적 개혁과 고용 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요셉 연구위원은 “적절한 수준의 고용보호는 있어야 하지만, 이미 유럽 국가들은 사회적 부작용을 인식하고 고용보호를 축소하고 있다”면서 “연공서열에 의한 임금 설정을 보다 직무와 성과에 부합하게 점진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