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일보]
ChatGPT의 개발사 OpenAI가 14일 공개한 ‘GPT-4o’는 사용자들의 후기가 이어지며 AI(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키워가고 있다.
OpenAI의 샘 올트먼(Sam Altman) CEO는 GPT-4o 발표 후 자신의 SNS에 ‘her’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이를 두고 2013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처럼, AI가 감정을 가지고 인간과 소통하는 미래를 연상시킨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OpenAI를 비롯한 AI 개발사와 솔루션 제공자들은 AI가 가져다줄 유쾌한 일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AI의 가파른 성장세로 발생할 사회적 문제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21년 방영된 tvN의 단막극 시리즈 ‘드라마 스테이지’ 중 ‘박성실씨의 사차 산업혁명’은 AI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한 가정을 조명한다.
차량 긴급출동 서비스의 상담원으로 10년간 지각·결근 없이 근무해 온 주인공 ‘박성실’은 여느 때처럼 성실하게 회사에 출근해 상담업무를 수행한다. 퇴근시간을 1시간 앞둔 5시, 박성실과 상담원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AI 상담원 도입으로 콜센터 인원의 90%를 감축합니다’라는 회사의 통보였다. 수십 명이 일하던 사무실은 박성실과 동료 2명만이 남게 된다.

한편, 화물차 운전기사인 박성실의 남편도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복잡한 골목길을 누비던 택배차들은 아직 무리가 있었지만, 고속도로를 주로 운행하는 화물차들은 자율주행으로 대체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박성실은 남편의 해고 이후 돌파구를 찾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한다. 그러다, ‘AI가 못하는 상담을 하는 상담사, 감정적인 고객을 감성적으로 응대할 수 있는 상담사’가 되면 회사에서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박성실과 동료들은 각자 유머, 노래, 인생상담이라는 무기를 들고 고객 응대에 나선다. 긴급출동이 도착할 때까지 노래를 불러주거나, 연애 문제로 힘들어하는 고객에게 조언을 해준다. 또, 진상 고객을 만나 실의에 빠진 택배기사에게 유머를 던져 웃음과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이들의 노력으로 드라마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것 같지만, 회사의 AI 개발 부서에서는 이러한 감성적인 상담도 AI에 학습시키는 데 성공한다. 심지어, 학습을 거듭한 끝에 ‘기존 상담사들이 생각도 못 했던 멘트’를 하기에 이르른다.
결국, 박성실을 비롯한 최후의 인간 상담사들까지 해고당하고 회사에는 AI 개발 부서만 남게 된다.
‘박성실씨의 사차 산업혁명’ 속 모습은 2년여 만에 현실이 됐다. KB국민은행이 ‘AI 도입으로 전화상담 업무가 줄었다’라며 작년 12월 상담사 240여 명을 감축한 것이다.
KB국민은행은 2년 주기로 콜센터 상담 업무를 용역업체에 수탁해왔고, 콜센터 근무자들은 그때마다 새로운 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어왔다. 그러나, KB국민은행이 용역업체를 6곳에서 4곳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입찰에 탈락한 업체 2곳의 상담사 240명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집단해고를 막기 위한 근로자들의 요구에, 신규 용역업체 2곳에서 계약 의사를 밝힌 230여 명을 고용하며 실직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은 여전해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참여와 혁신이 2월 14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근로자들은 전화상담 수가 줄었다는 KB국민은행의 입장에 의문을 표했다. 여전히 하루에 100~200여 개의 상담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AI의 인식능력이 부족해 전화를 끊어버리고, 이로 인한 고객의 불만은 근로자들에게 향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AI의 학습도 근로자들에게 주어졌다고 전했다. 하루에 수백 건의 콜을 소화하고 있는데, AI 상담에 대한 피드백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다.

AI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ChatGPT의 GPT-4o버전에게 “기업이 AI 상담사 도입을 이유로 기존 인간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봤다.
GPT-4o는 “효율성 및 비용 절감”이라는 긍정적인 관점과 “고용불안과 사회적책임, 불평듬 심화, 경제적 충격”이라는 부정적인 관점을 내놨다. 그러면서 “사회 안전망 강화와 점진적 전환을 통한 책임있는 AI 도입”을 제시했고, “노동자·기업·정부의 협력적 접근과, 인간과 AI의 협력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직무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이어, “결론적으로, AI 도입으로 인한 노동자 해고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책임과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기술 발전과 인간 노동의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답변했다.
GPT-4o는 기존 상담 인력이 AI 도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 ▲직무 재설계 및 역량 강화 ▲고객 경험 및 관계 관리 역할 확대 ▲신규 서비스 및 상품 개발 참여 ▲하이브리드 고객지원 모델 구축 ▲데이터 분석가, 디지털 마케팅 등 새로운 직무 창출 ▲윤리적 AI 도입 및 사회적 책임 등 AI로 불가피하게 대체되는 상담 인력의 지속적인 고용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박성실씨의 사차 산업혁명’ 속 회사의 회장은 AI를 인력비 감축을 위한 효용적인 도구로 사용한다. ‘감정노동자니, 뭐니, 헛돈이 얼마나 들었나. 감정 없는 AI라니 좋잖아’라며 ‘이제 월급 줄일 없는 거지?’라고 좋아한다.
AI 개발이사는 인건비를 줄였다며 만족하는 회장과 함께 웃는다. 이때, 회장은 ‘근데, 자네 연봉이 너무 많지 않나? 개발도 완료됐는데, 이제 좀 한가하잖아?’라는 말을 던진다.
2021년 삼성 SDS에서는 ‘AI가 콜센터 상담원을 도와줄 수 있을까?’라는 보고서를 통해 AI 기술로 상담원의 가중된 업무를 줄여줌으로써, 이들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업무를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현실에서 AI는 인력비 감축을 위한 ‘좋은 핑곗거리’로 작용했다. 유사하게, 드라마에서 회장은 상담원 100% 해고 이후 다음 타깃으로 AI 개발팀을 조준한다. ‘책임없는’ AI 도입이란 어떤 모습인지 엿볼 수 있다.

‘박성실씨의 사차 산업혁명’의 마지막 장면은 불 꺼진 거실에서 일자리를 잃은 박성실과 남편, 어린 아들이 소파에 앉아 망연자실하고 있는 씬이다. 아들이 부모들에게 ‘나 커서 뭐 될까’라고 묻지만, 부모들은 다음세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다행히도, OECD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는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고 관련 규제와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 믿고 안주해선 안 된다. AI·자율주행 등 우리 삶을 변화시킬 기술에 대한 개개인의 주의 깊은 관심, 대응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