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까?
2018년, 일본으로 딸을 유학보낸 지인이 “카카오톡으로 보이스톡이 되니까 통신비 부담없이 데이터만으로 마음껏 통화가 가능해 너무 편리하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영상통화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딸이 외국에 있는 게 아니라 국내 지방에 있는 것 같아서 그리움이 덜한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소중한 이를 멀리 떠나보내게 될 때의 그리움은 사무친다. 배우자의 출장·자녀의 군입대·절친한 친구의 해외여행만 해도 공허한데, 누군가의 죽음은 말로 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종종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라고 한다. “우리 아빠는 내가 미운지, 엄마 꿈에도 나타나고 오빠 꿈에도 나타나는데, 내 꿈에만 안 와”라는 드라마 속 대사도 있다.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5일 개봉한 영화 ‘원더랜드’는 이러한 지점에 주목해 ‘고인이 된 소중한 사람과 매일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다’라는 가상의 서비스를 소재로 삼았다. 일명, ‘고인 AI 서비스’다.
죽기 전의 기억을 추출한 뒤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원더랜드’라는 가상공간에 고인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인 AI는 자신이 죽었다는 걸 모르는 상태로 학습되기 때문에 영상통화를 하는 동안 상실을 겪기 전의 일상을 누릴 수 있다.
탕웨이가 연기한 펀드매니저 ‘바이리’는 병으로 죽기 전 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다. 어린 딸에게 엄마를 잃는 아픔을 주기 싫어서다. 자신의 어릴 적 꿈인 고고학자가 돼 전 세계를 누빈다는 설정을 선택했다.
바이리는 딸과 영상통화 중, 유물이 발견됐다는 말에 딸과 전화를 끊고 급히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때, 죽기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항상 딸의 전화를 바쁘다는 이유로 끊었던 것이다. 바이리는 걸음을 돌려 다시 딸과 영상통화를 이어간다.
정인(수지)은 혼수상태인 연인 태주(박보검)를 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인으로 구현했다. AI 태주는 아침잠 많은 정인을 깨워주고 출근 준비를 세심하게 도와준다. 정인은 원더랜드 서비스 덕분에 연인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지만, 현실의 태주를 찾아가면 잠시 잊었던 공허함이 배로 밀려온다.
영화는 원더랜드 서비스의 직원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가 어떻게 원더랜드를 운영하는지도 조명한다. 원더랜드 서비스의 전제 조건은 ‘신청자가 사망했거나, 사망에 준하는 상황’에만 쓰일 수 있다.
부부가 함께하는 ‘부부 패키지’도 있고 신청자의 AI가 신청자와 마주하면 시스템 오류가 일어날 수도 있다.
특히, 손자를 원더랜드 서비스에 구현한 할머니를 통해 AI 고인에게 옷이나 차 등을 구매해 줄 수 있는 ‘현질’ 유도 시스템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바이리의 엄마는 죽은 딸을 보며 더 크게 상실을 느낀다. 손녀의 “엄마가 있는 데로 가고 싶어”라는 칭얼거림에 AI 바이리가 “나중에 같이 오자”라고 답하는 것을 듣고 경악한다. “어떻게 네가 있는 데로 오라고 하느냐”라고 화를 쏟아내는 것이다.
바이리의 엄마는 손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겠다고 짐을 싸고, 바이리는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한다. 바이리의 엄마는 “네가 어떻게 돌아와!”라며 전화를 끊어버리고, AI 바이리는 혼란을 느낀다. 결국, 바이리의 엄마는 원더랜드 서비스를 해지해 버린다.
정인도 일상의 변주를 겪는다. 연인 태주가 기적처럼 깨어난 것이다. 의사는 “뇌 손상으로 일상에 버벅대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조언과 달리, 태주는 정인이 그리워하던 모습과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감기에 걸린 정인이 태주를 찾지만, 그는 집을 비웠다. 해열제를 찾던 정인은 태주가 깨어난 뒤로 정지해 놓았던 AI 태주를 깨워 약의 위치를 겨우 찾게 된다.
늦은 밤, 정인은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에서 깬다. 거실에 나와보니 집 안은 모르는 사람 십수명이 파티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태주가 공원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을 데려온 것이다. 정인이 “너 원래 안 그래”라고 따지자 태주는 “나 원래 안 그래?”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다.
밖으로 나온 정인은 다시 AI 태주에게 영상통화를 건다. 그는 과거 정인이 알던 대로 다정하게 걱정해 준다. 정인은 “너 왜 아직도 안 와?”라고 속내를 드러낸다.
원더랜드 직원 해리와 현수는 한 AI의 돌발행동으로 운영서비스가 불안정해지는 상황과 마주한다. 현수는 AI를 삭제해 버리자고 하지만 해리는 가족들이 다시 찾으면 어쩌냐고 반대한다.
현수는 다시 만들면 되지 않냐고 반문하지만, 해리는 “다시 만들면 달라지더라고”라며 “진짜라고 믿었던 게 가짜가 되는 건 한순간이더라고”라고 말한다.
이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이후의 이야기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멀지 않을 미래, ‘AI 추모 서비스’
영화를 보고 더 단단해진 생각이 있다. AI 서비스는 ‘책임있는’ 제공과 사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원더랜드 서비스 사용료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각 사람의 데이터 추출 및 저장·AI 학습·디지털 휴먼 구현·현실감 넘치는 가상현실 제작·소통을 통한 AI 성장·영상통화 데이터 비용 등을 고려해 보면 사용료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원더랜드 서비스는 추가 요금까지 유도한다.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돈을 내면 더 좋은 옷, 더 좋은 차, 더 좋은 장소를 고인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꼬드기는 것이다.
또, 영화 속 추모 서비스는 원더랜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완동물 특화 서비스도 있다. 특별한 사업을 넘어, 산업으로까지 확장됐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사용료에 따라 AI·그래픽의 차이 또는 일일 대화 제한 등 빈부격차의 새로운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실제 이런 서비스가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을 AI로라도 만들어 헛헛한 마음을 채우게 될까? 반대로, AI를 내 아바타로 만들어 가족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싶을까?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가면 영화는 또 한 번의 슬픔을 선사한다. ‘원더랜드에 있을 동료들을 기억합니다’라는 문구와 몇 개의 이름들이 나열됐다. 함께 영화를 만들었지만, 개봉하는 순간은 누리지 못한 동료들을 기린 것이다.
이 문구 때문일까,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화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더 깊어진다.
영상통화는 과거 SF에나 등장하던 미래 기술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기능을 아무 감흥도 없이 사용하고 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AI도 우리 곁에 갑자기 등장한 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고인을 AI로 만들어 소통한다’라는 소재는 SF에서 흔히 쓰이던 소재다. 그런데, AI시대를 맞이한 지금은 ‘멀지 않은 것 같다’라는 인상을 준다. 영화 원더랜드가 던지는 질문들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