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일보]
AI(인공지능) 신기술이 기존의 로봇·소프트웨어와 달리 고소득·고학력 일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 직업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은행 조사국 오삼일 고용분석팀장은 '인구구조 변화, 다가오는 AI시대의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 모색'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서,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AI현상을 살폈다.
오삼일 팀장은 “거시경제학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항상 신기술이 나오면 누가 혜택을 입고, 누가 손해를 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라며 “AI를 통해 이전에 등장한 산업용 로봇·소프트웨어 기술이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이 지속될지, 아니면 기존과 다른 양태를 가져올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어떤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것인가를 알려면 ‘AI Exposure Score(AI 노출지수)’를 산출할 필요가 있다”라며 “직업은 결국 업무의 합이므로, 업무별로 AI 응용 점수를 부여하고 종합하면 지수를 확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식별 방법으로는 인간이 수행하는 업무 중 AI와 관련된 특허가 출원된 업무가 있는지, 그 수는 어느 정도인지 조사한다. 예를 들어, 의사의 업무 중 병을 진단하는 것과 관련된 AI 특허 출원 수의 응집도를 통해 대체 가능성을 계산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한국표준직업분류’를 기준으로 직업들을 분류한 결과, 화학공학 기술자·발전장치 조작원·금속재료공학 기술자 등 대용량의 데이터를 활용해 프로세스 최적화 솔루션을 찾는 직업들이 AI에 많이 노출돼 있었다. 반면, 대면 서비스가 많은 직업들은 노출 정도가 낮았다.
그는 “종합해 보면 의사, 회계사, 법률가 등 흔히 고학력 고소득 직업에 AI 개발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라며 “이렇게 AI가 고소득 지위를 누렸던 노동자들의 업무에 특히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AI를 기존 기술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라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같은 방법으로 산업용 로봇과 소프트웨어를 살펴봤다”라며 “소프트웨어는 어느 정도 접점이 있었지만, 로봇과 AI는 전혀 관계성이 없는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오 팀장은 이 데이터를 한국 노동시장에 대입하며 “AI가 상용화됐을 때 전체 임금 근로자의 12%, 약 340만 명 정도가 대체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산업별로는 ▲정보통신업 ▲광업 ▲전문과학기술업 ▲제조업 ▲건설업 등 생산성과 소득 수준이 많은 산업에서 AI 지수가 높다”라며 “숙박음식업이나 예술·스포츠·여가업과 같은 소득 수준과 생산성이 적은 대면서비스 일자리는 지수가 낮게 나왔다”라고 분류했다.
그러나, 오삼일 팀장은 “이러한 분석이 30년 뒤 사후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대로 실현됐을까? 저는 아니라고 본다”라며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AI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업무에 적용하는 것인데, 고소득 지위의 노동자들은 AI 적용이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사회가 판사 AI와 같이 인간의 감독을 받지 않는 AI의 결정을 따를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판사나 의사처럼 어떤 일자리들은 사회적 합의하에 보호받으며, AI의 보조 하에 생산성이 증대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그는 “AI로 인한 생산성 증가는 전반적인 노동수요와 임금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으나, 일자리 대체효과가 특정 그룹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교육 및 직업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원활한 고용 재조정으로, AI라는 거대 물결 속에서 생산성이 높은 그룹으로 직업 배분을 옮겨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또한, “AI 시대에는 인지적 능력과 사회적 기술이 결합된 능력이 요구된다”라며 “노동시장의 직업 훈련 정책이나 대학의 교육 정책 측면에서도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15일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국노동연구원(KLI)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으로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