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용 교수 현대 강력 범죄 씨앗은 개인정보…편리함의 역습
‘2024 AI Security Day’서 특별강연…“법은 변화 따라잡지 못해…빠른 대응 필요”
[산업일보]
현대의 강력 범죄가 개인정보로부터 시작된다는 범죄 전문가의 진단이 나왔다. 편리함을 위해 다양한 곳에 제공한 개인정보가 범죄의 씨앗이 된다는 지적이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범죄행동분석관)인 권일용 동국대학교 교수는 5일 용산구 로얄파크컨벤션에서 열린 ‘2024 AI Security Day’ 특별강연 자리에서 ‘편리함의 역습’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시대별 강력범죄 변화 양상부터 짚었다. 1990년대 이전에는 범죄 동기가 단순하고 뚜렸했지만 1990년대 들어 ‘지존파’, ‘막가파’가 등장하며 한국 사회를 놀라게 했다. 부정적 감정을 불특정 다수를 향해 표출한 강력 범죄였다.
2000년대부터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이 사회를 휩쓸었다. 유영철,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은 저마다 뚜렷한 대상을 포착해 범행를 저질렀다. 예컨대 강호순은 버스를 기다리는 여성을 자신의 차로 유인했다.
2009년 강호순 체포 이후 한국 사회에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권일용 교수는 “치안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기 전에 차단될 뿐 연쇄살인범이 사라진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2010년부터는 자신의 감정을 빠른 시간 안에 표출하고, 체포되는 것과 상관없이 감정의 해소만을 위한 ‘무차별 범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권 교수는 현대의 살인범죄는 개인정보의 불법 수집이나 해킹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피해자가 어떻게 선정되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은 자기가 추구하는 특정 대상을 향해 범행을 저질렀으나, 정유정은 온라인으로 피해자의 정보를 수집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N번방’ 사건은 변화하는 범죄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해 취약 정보를 가진 사람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영상으로 촬영해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
권일용 교수는 “피해자들은 영상으로 인해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모든 삶이 파괴됐다”면서 “디지털 성착취는 이미 디지털상의 문제를 넘어 경제·성·살인 범죄가 종합됐다고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불거진 딥페이크 성착취물 문제도 개인정보와 연결돼 있다. 중고생들이 흔히 당하는 딥페이크 범죄 중 도움을 줄 것처럼 가장해 접근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가해자는 ‘성 착취물이 온라인에 돌아다니고 있으니 도움을 주겠다’며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놀라움과 충격에 빠진 피해자는 경찰 신고 등 정상적인 방식보다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딥페이크와 딥보이스를 이용한 보이스피싱·스미싱도 진화하고 있다. 경찰서인 것처럼 꾸민 세트장에서 실제 일하는 사람의 사진을 이용해 피해자를 유인하는 등 ‘믿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권일용 교수는 “AI를 악용한 범죄가 이미 발생했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건이 예상된다”면서 “내가 편리하고자 제공한 개인정보를 범죄자는 너무나 쉽게 활용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정보만 개인정보로 취급하는 문화에도 경고를 보냈다. 그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량번호, 차종, 차량 색, 휴대전화번호만 수집해도 ‘맞춤형 스미싱 문자’를 보낼 개인정보가 완성된다”라고 강조했다.
권일용 교수는 ▲기술 악용 감지시스템 개발 ▲전문 수사관 양성 및 고도화 ▲국가 기능 통합형 시스템 구축 ▲국제협력 체계 구축 등 정책적 제안을 제시하며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정책적 제안을 이제는 실행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그는 “일어나지 않은 범죄로 법이 만들어지지 않고 법이 범죄를 앞서갈 수도 없지만, 사회 변화가 빨라지는 만큼 검토·논의·고민을 제쳐 두고 범죄를 따라갈 속도라도 맞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