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AI(인공지능)의 발전이 매섭다. ChatGPT의 등장 이후 AI는 ICT 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제조, 바이오, 푸드테크, 스마트팜 등 활용 분야를 넓혀가며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꾸준히 제기되던 AI의 윤리·개인정보 침해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딥보이스 기술을 활용한 보이스피싱부터, 최근 붉어진 딥페이크 성범죄 동영상 사태까지 눈부신 AI 기술 혁신의 뒷면이 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AI 산업의 진흥과 규율 체계를 제시할 수 있는 ‘AI 기본법’의 신속한 제정이 촉구된다. AI와 공존하는 사회의 신뢰 기반을 조성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중요도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한 제22대 국회에는 5월 31일 안철수 의원 등이 발의한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안철수 의원안)’을 필두로 기본법의 성격을 띠는 총 9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중, 안철수 의원안을 포함해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정점식 의원안) ▲인공지능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조인철 의원안) ▲인공지능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김성원 의원안) ▲인공지능기술 기본법안(민형배 의원안) ▲인공지능 개발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안(권칠승 의원안)까지 총 6개 법안이 8월 2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를 거쳐 소위원회에 회부됐다.
9월 3일 열린 제1차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이하 소위)에서는 8월 22일 발의된 ‘인공지능 기본법안(한민수 의원안)’을 소위자료에 포함했고, 총 7개 법안을 심사하고 있다.
본보에서는 소위 회의록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건오 수석전문위원의 안철수·정점식·조인철·김성원·민형배·권칠승 의원안 검토 보고서를 토대로 국회에 계류 중인 AI 법률안을 톺아봤다.
우선, 소위에서 김건오 수석전문위원은 정점식 의원안을 중심으로 개별 조문의 수정과 추가를 논의할 것을 조언했다. 정부의견에 가장 근접하다고 평가할 수 있고, 법률안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타당하다는 의견이었다.
본보에서도 그의 의견을 따라, 정점식 의원안을 큰 줄기로 삼고 다른 법안들을 비교해 봤다.
단, 정점식 의원안을 비롯한 7개 법안은 모두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인공지능 책임 및 규제법안(안철수 의원 등 10인 발의)’와 체계 및 내용이 대체로 유사하다. 대신, 기술 동향의 반영, 신설 조직의 소속, 용어 정의 등 조문에서 세부적인 차이가 있다.
AI 법안, 왜 필요한가
정점식 의원안의 제안 이유를 살펴봤다. 법안에서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AI가 가져올 잠재적 혜택과 함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국에서는 AI 산업 발전을 위해 대규모 투자와 인프라 구축 등 지원체계를 구축하면서도, AI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각국의 경제·사회적 환경을 고려한 규율 체계를 마련하는 등 글로벌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 AI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국내 산업과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 AI 산업의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부작용과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담았다.
이에, 대한민국 AI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려는 것이 법안을 제안의 이유라는 것이다.
다른 법안들도 위 내용과 크게 다르진 않으나, 민형배 의원안에서는 산업의 발전 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입법 지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AI 관련 기술 개발 및 산업 진흥 정책이 여러 정부 부처에서 분산 추진되고 있어, 종합적 정책 추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담았다. 이 때문에, 조속한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칠승 의원안은 고위험 AI에 대한 검증·인증 등의 규제 체계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의견을 더했다.
국회는 AI를 어떻게 바라보나
법안의 용어에 대해서도 들여다봤다. 정점식 의원안은 제2조에서 법안의 사용 용어로 인공지능·인공지능기술·고위험영역 인공지능·생성형인공지능·인공지능윤리·인공지능산업·인공지능사업자·이용자·인공지능사회를 정의했다.
다른 법안들도 이와 대동소이했다.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정점식·민형배·안철수·한민수 의원안은 새로운 기술동향을 반영해 ‘생성형 인공지능’을 포함했다. 권칠승 의원안은 대통령령으로 개발과 이용을 금지하는 ‘금지된 인공지능’을 명시했고, 안철수 의원안은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정의했다.
모든 법안에 명시된 ‘고위험영역 인공지능’은 에너지, 식수, 보건의료, 범죄수사 등 적용 범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으나, 권칠승 의원안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 및 유형’이라고 단순하게 규정했다.
김건오 수석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에서 ‘금지된 인공지능’, ‘고위험영역 인공지능’, ‘생성형 인공지능’은 규제의 대상 및 범위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 가능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AI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 대중에게 위험한 기업으로 인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지된’, ‘고위험’이라는 단어를 ‘1종’, ‘2종’과 같은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변경하자는 의견을 냈다.
한편, 정섬식 의원안은 제4조에서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라도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법안을 적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검토 보고서는 국내사업자와 해외사업자의 형평 도모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으나, 해외사업자의 국내대리인을 법안에서 별도로 규정하지 않아 실질적인 법 집행이 가능한지 논의돼야 한다고 살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법 집행 과정에서 상대국의 주권 침해 반발이 제기되거나 국가 간 규율 범위가 중복될 수 있다고 우려를 전했다. 아울러, 해당 규제가 타국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적 타당성을 갖춰야 하지만,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아울러, 모든 법안은 ‘다른 법률과의 관계’ 조문에서 공통으로 인공지능·인공지능기술·인공지능산업·인공지능사회에 관해서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안에서 정한 바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했다. AI 기본법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김건오 수석전문위원은 소위에서 “개별적 규정은 개별법에 특별한 규정을 두어 그 법을 따르도록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AI기본법②] AI 기본법, 신속성 강조하다 완성도 놓쳐선 안 돼’ 기사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