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과 유사한 움직임과 형태를 구현할 수 있어도 '지능'은 한계로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지능'이라는 마지막 퍼즐이 완성됐고, 휴머노이드 로봇의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2024 로보월드(ROBOT WORLD 2024)'에서 만난 한재권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 부교수(에이로봇 최고기술책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AI의 결합을 이같이 평가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특이점은 생성형 AI 열풍과 함께 찾아왔다. 거대 언어 모델(LLM)을 휴머노이드 로봇에 탑재해 대화하고, 명령에 실시간으로 반응해 작업을 수행하는 등 새로운 활용처와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마지막 퍼즐, '지능'
제조 현장에서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던 로봇은 센서와 제어 기술, 구동 부품의 발전으로 보다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작업 특성에 맞게 최적화돼 정해진 작업만 수행할 뿐 달리거나 걷는 등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2015년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동물과 사람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구현한 로봇을 선보이며 세상을 놀라게 했으나 한계는 여전했다. 엔지니어가 프로그래밍으로 일일이 조작해야 했고, 활용처도 제한적이었다.
혁신의 물꼬가 터진 건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였다. AI가 시각, 음성 인식, 자연어 처리 등에 접목되면서 로봇이 스스로 환경을 인식하고 최적의 동작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한재권 부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다양한 일을 수행하려면 어떤 종류의 작업인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프로그래밍으로는 구현이 어려워 휴머노이드 로봇도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생성형 AI가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다시 각광받게 됐다"라고 말했다.
언어 데이터를 처리·생성하는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을 넘어 음성·이미지·영상 등 다양한 데이터를 인식·생성하는 '거대 멀티모달 모델(Large Multimodal Mode, LMM)', 행동 패턴을 학습해 웹과 앱을 직접 작동할 수 있는 '거대 행동 모델(Large Action Model, LAM) 등 AI 알고리즘이 더욱 고도화되는 점도 휴머노이드 로봇에 호재다. 로봇이 인간의 언어와 현실 사물을 보고 듣고 인식하고 행동하면서 상호작용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 부교수는 "로봇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AI 모델, LBM(Large Behavier Model)을 만들기 위한 행동 데이터 수집 경쟁이 시작됐다"면서 "에이로봇은 인간의 움직임을 로봇이 따라하는 식으로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산업 현장의 휴머노이드 로봇, 어떤 모습?
산업 현장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어떤 모습일까. 한재권 부교수(에이로봇 최고기술책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걷고 뛰고 퍼포먼스만 보여주는 시대는 이미 지났고, 인간의 일을 돕고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은 손으로 수많은 일을 하고, 도구를 이용하면 일의 종류가 수천 가지로 늘어난다"면서 "에이로봇은 물건을 잡고 움직이는 일, 도구를 조작하는 일 등 로봇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을 한 단계씩 늘려 나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우려에는 "텅 빈 제조 현장을 보라"고 응수했다. 청년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인구 구조 변화로 뺏길 일자리보다 비어 있는 일자리가 더 많다는 것이다.
한 부교수는 "제조업 현장은 일할 사람이 없어 문을 닫게 생긴 상황"이라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빈 일자리를 채울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휴머노이드 '스마트폰'급 파괴력…'휴머노이드 주권' 지켜야"
휴머노이드 로봇의 전망은 어떨까.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휴머노이드가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기술적 파괴력을 지녔다고 강조한다.
그는 "스마트폰이 없는 시절로 돌아갈 수 없듯, 휴머노이드 상용화 이후에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면서 "세계 각국이 '인공지능 주권'을 위해 경쟁하듯 '휴머노이드 주권'도 챙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상용화의 필수 요로소는 '가격 경쟁력'을 꼽았다. 우선 가격이 저렴해야 소비자나 기업 고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휴머노이드가 기술적으로 훌륭해도 중국산 저가 공세를 막아낼 순 없을 것"이라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한국 휴머노이드도 중국산 로봇에 점령 당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재권 부교수는 국내 휴머노이드 로봇 생태계가 확장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기반 기술과 저력은 충분하지만 생태계 참여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휴머노이드는 '돈이 안 된다'는 인식으로 투자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AI와 함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만큼 같이 뛰는 플레이어가 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