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견인하던 반도체 시장의 재편이 관측됐고, 디스플레이 산업은 중국의 추격에 흔들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불확실성을 더할 전망이며,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중소기업으로 확대돼 새로운 과제를 부각했다.
반면, 인공지능 산업은 ‘AI 폰’을 필두로 ‘AI 일상화’ 시대의 막을 올렸고, 로봇 산업은 궁극 목표인 휴머노이드 로봇에 한 걸음 다가갔다. 본보는 갑진년을 마무리하며 10가지 현안을 선정해 살펴봤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지난 11월 5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다시 한번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기존 바이든 정부와 다른 정책 기조를 내세울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한국 산업·경제에도 상당한 변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미국 보호무역’을 펼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미국의 경제 전망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붙일 것이라는 예고와 함께, 동맹국을 불문하고 모든 국가에 평균 3% 정도로 부과되던 ‘보편관세’를 10~20%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트럼프의 통상정책은 미국의 무역 수지 적자 해소를 위한 것으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보호무역’ 기조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의 ‘2024 미국 선거와 통상환경 전망’ 보고서는 트럼프가 무역 수지 적자를 문제 삼고 있는 만큼, 미국의 주요 무요적자 대상국 중 하나인 한국에 보편관세를 요구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단, 보편관세는 한미 FTA 협정 위반 가능성이 있어 불확실하다고 단서를 달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기존 협정 개선 요구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도 해설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의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국내 산업 영향’ 보고서도 한미 FTA가 재협성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2021년 종료 예정이었던 한국산 화물자동차의 관세를 2040년까지 유지하기로 개정한 이력을 근거로 들었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가 경제·산업 전문가 15명의 의견을 종합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보고서는 보편관세와 상호무역법 시행을 예상했다. 서강대학교 허윤 교수의 의견을 인용해,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올해 상반기에만 287억 달러 흑자를 기록한 만큼 FTA 재협상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미국산 에너지·농산물 수입을 늘려 2025년 이후 흑자 폭의 증가세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트럼프는 기후위기의 대응 트렌드로 자리 잡은 ‘ESG’ 정책에도 반대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따라서, 친환경·에너지 규제를 완화해 제조업을 위한 저가 에너지 생산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석유·석탄·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공급을 확대해 에너지 비용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낮출 것으로 전망했다.
대한상의의 보고서도 ‘화석연료 공급이 확대됨에 따라 에너지 가격은 낮아지겠으나,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업계의 불확실성은 고조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화여대 김윤경 교수는 대한상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에너지 수입 비용 또한 절감될 것으로 기대된다’라면서도 ‘미국 내 수요 증가로 수출이 감소하거나, 중동 국가들과 관계 악화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면 에너지가격이 상승할 우려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으로 회귀는 한국 조선 산업에 수혜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LNG·LPG의 수요 및 수출 증가 전망에 따라, LNG·LPG 운반선 발주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브릿지 에너지’ 운반선 건조에 강점을 가진 우리 조선 산업의 수주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첨단산업은 불확실성이 심화될 것으로 점쳐졌다.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 강화와 첨단산업 지원책 축소의 영향 때문이다.
대한상의 보고서에서 성균관대 권석준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 반도체 기업들에 투자 인센티브 대신, 투자하지 않은 페널티를 부과할 정책이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정은미 본부장은 ‘한국은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이 약 50%로, 중국에 주요 생산라인과 시장을 두고 있는 기업들의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응논리 개발이 필요하다’라고 진단했다.
대덕대 이호근 교수는 ‘트럼프는 전기차 전환 정책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커, 국산 전기차 산업의 타격이 우려돼 하이브리드를 비롯한 다양한 차종 개발과 더불어 미국 정책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라며 ‘IRA 폐기 혹은 혜택 축소로 이차전지 배터리기업의 타격도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고성능 반도체 분야에 있어서 미국의 핵심파트너 위치 선점을 위한 움직임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삼정KPG 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조선업을 비롯한 일부 산업에는 긍정적 영향이 예상되나, 자동차·이차전지·에너지 등의 산업에는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라면서 ‘미국 정책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구축, 수출국 다변화 등의 대응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대한상의 박일준 상근 부회장은 보고서에서 트럼프의 당선이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경험해 본 정부의 실리적 외교 노력과 더불어 민간 차원의 아웃리치 활동의 병행으로 한미 모두 Win-Win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