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메모리반도체 전통 강자인 삼성전자가 올해 쓴 물을 들이켰다. 메모리 시장에서 왕좌를 유지하던 삼성전자를 ‘만년 2등’이었던 SK하이닉스가 따라잡은 것이다.
지난 10월 31일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를 보면 올해 3분기 회사 반도체(DS) 부문은 매출 29조2천700억 원, 영업이익은 3조8천600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 분기보다 2.5%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40.2%나 줄었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있음에도 ‘반도체 전통 강자’ 삼성전자의 이익은 뒷걸음질한 것이다.
반면 SK하이닉스의 실적은 고공행진했다. 10월 24일 SK하이닉스 발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매출 17조5천731억 원, 영업이익 7조3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으로,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반도체 ‘슈퍼 호황기’였던 2018년 3분기 영업이익 6조4천724억 원의 기록을 크게 뛰어넘었다.
3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요동쳤다. 5만 원대로 추락한 삼성전자는 ‘5만전자’의 별명을 얻었고, 20만 원대로 상승한 SK하이닉스는 ‘20만닉스’가 됐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성적표를 가른 배경으론 고부가가치 D램 제품인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메모리)’이 꼽힌다. HBM은 D램 집적 회로(die)를 쌓아 실리콘 관통 전극으로 연결한 것이다. 기존 메모리보다 데이터 이동이 빠르고 이동하는 폭도 넓어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통한다.
AI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데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수다. 세계 G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유치하지 못하면 AI 시장 성장에 따른 반도체 산업 수혜를 온전히 받지 못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월부터 엔비디아에 5세대 HBM(HBM3E 8단)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9월 말에는 신제품인 HBM3E 12단 제품 양산에 돌입하며 ‘AI 메모리 강자’ 지위를 공고히 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송재혁 삼성전자 DS부문 최고기술자(CTO) 겸 반도체연구소장(사장)은 지난 7월 ‘나노코리아 2024’ 기조연설에서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와 관련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결국 실적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삼성전자는 이례적으로 ‘반성문’을 냈다. 10월 8일 잠정실적 발표 직후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이 본인 명의로 사과의 메시지를 낸 것이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는 한편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쇄신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전자는 올해 HBM 기술 경쟁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빼앗기며 AI 호황 속 ‘나홀로 겨울’을 맞았다. 하지만 10월 말 3분기 확정 실적 발표에서 ‘주요 고객사의 품질 테스트 과정에서 중요 단계를 완료했다’며 HBM3E 제품의 엔비디아 납품을 시사했고, 차세대 제품인 HBM4 개발도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위기론을 돌파하고 HBM 시장 주도권을 다시 거머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