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경기도 5070 일자리박람회’ 현장을 시작으로, 중장년 구직자와 채용기업의 현장 목소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은퇴 이후 다시 일하기를 원하는 이들의 현실과 과제를 조명한다.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을까요?”
중장년을 위한 ‘5070 일자리박람회’ 현장에서조차 이렇게 되묻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불안이 묻어 있었다. 구직자들의 자신감 부족을 탓하기엔 나이 앞에서 닫히는 ‘중장년 일자리’가 적지 않다.
중장년 특화 구인·구직 플랫폼 ‘커넥티드456’ 매칭팀의 임수인 과장도 중장년 구직 현장에 대해 “제일 큰 허들이 나이”라고 말했다. 그가 체감하는 중장년 취업 시장은 여전히 ‘좁은 문’이다.
임수인 과장에 따르면, 일자리박람회 현장에서 ‘커넥티드456’ 부스를 찾은 구직자들은 대부분 정년퇴직 직후의 나잇대였다. 평생 해 온 일을 이어가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경비·보안·시설관리 등의 분야로 자격증을 준비해와도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구직자들은 50대까지는 최대한 경력을 살리려 노력하지만, 구직이 되지 않으면 60세 이상부터는 선택지를 넓히기 시작한다고 했다. 직무 분야를 더 확장해 '뭐라도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는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여전히 50대 중반까지를 선호한다. 다수의 구인 공고가 60세 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정년퇴직 이후인 60세 이상 구직자들은 지원 자체가 어렵다. 임수인 과장은 “면접장에 오시는 분들을 보면 체력도 좋고 외모도 젊어 보이는 분들이 많지만 기업은 나이 숫자만 보고 탈락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지원자가 몰려도 더 젊은 사람을 택한다”고 말했다.
임 과장은 “구직 상담보다 구인처 발굴이 더 어렵다”며 “중장년을 채용했던 기업들도 조직 적응 문제를 이유로 이제는 뽑지 않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1년 대·중소기업 300곳을 조사한 결과,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응답한 기업 비율은 89.3%였다. 주요 원인은 높은 인건비(47.8%), 신규 채용 부담(26.1%), 저성과자 증가(24.3%) 등이었다.
중장년 인력이 젊은 직원과 업무 생산성에서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 조사 기업의 56.3%였으며, 젊은 직원보다 업무 능력이 ‘낮다’는 응답도 25.3%에 달했다.
지난해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발간한 ‘민간기업의 중장년 채용인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높은 업무 이해도 및 숙련도와 낮은 인적자원관리 부담, 높은 조직·업무 적응력과 낮은 이직률을 각각 중장년 채용의 장점으로 꼽았다.
중장년의 경험과 경력이 기업 내에서 구체적인 장점으로 드러나면서 중장년을 ‘높은 임금과 낮은 생산성’의 이미지로 분류하던 고용시장의 인식은 개선되고 있지만, 높은 연령에서 오는 업무 지시 및 관리 부담 등은 여전히 단점으로 꼽힌다.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중장년 직원을 채용했지만 업무 방식과 세대 간 소통 문제로 6개월 만에 퇴사했다는 사례가 올라왔다. 글쓴이는 “경력은 풍부했지만 AI 활용에 서툴고, 사담과 간섭이 많아 조직 불만이 커졌다”고 전했다. 댓글에는 “성실하지만 참견이 부담스럽다”, “세대 간 정서 차이가 크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 같은 여론에도 고령화 시대에는 중장년이 핵심 생산인구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2024년 보고서에서 1964~1974년생 2차 베이비부머 954만 명(전체 인구의 18.6%)의 노동시장 이탈이 성장잠재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지속근로 의지에 정책적 지원이 결합되면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커넥티드456 임 과장은 “인식이 개선돼야 시장이 바뀐다”며 “중장년 채용에 대한 긍정적인 사례를 꾸준히 늘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커넥티드456은 단순 일자리 매칭 역할 뿐만 아니라 ‘연령 다양성 인증 서약’ 캠페인을 운영 중이다. 기업이 ‘나이 차별 없이 채용하겠다’는 서약에 동참하면 채용 수수료를 낮춰주는 제도다. 그는 “처음엔 몇몇 기업만 호응했는데, 참여기업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또 새로운 직무 발굴과 부트캠프형 직업훈련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 500여 개 골프장에서 필요한 전동카트 정비 업무를 민간자격으로 등록해 수강생을 모집하고, 교육 후 취업까지 연계하는 ‘골프장 카트 정비관리사’ 과정을 개발했다.
임 과장은 “이 밖에도 약국 사무원, 제약 영업 관리직 등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일자리를 상시 모집 중”이라며 “단순 매칭을 넘어 ‘라이프케어’ 영역으로 확대해, 중장년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직무 생태계를 만드는 게 자사 목표”라고 말했다.
‘경기도 5070 일자리박람회’에서 만난 M사는 연륜 있는 시니어 직원이 행정 업무를 체계화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직업상담사를 채용하러 온 Y사는 ‘나이는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라며 구직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았다.
이날 하루 현장에는 3천300여 명이 다녀갔고, 현장 접수된 이력서만 2천 건을 넘었다. 하지만 숫자 속에는 여전히 ‘나이의 벽’에 막힌 이들의 한숨이 숨어 있다.
중장년 노동은 더이상 생계 차원이 아니다.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세대 경험을 자산으로 전환할 구조적 해법 없이는, 은퇴 이후의 노동은 여전히 벽 앞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정책·제도·기업의 대응 방향과 ‘계속고용 시대’의 새로운 모델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