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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뿌리를 묻다] 잘 팔리던 제품도 접었다…웅비티에스가 35년 지킨 제조업의 원칙
임지원 기자|jnews@kid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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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뿌리를 묻다] 잘 팔리던 제품도 접었다…웅비티에스가 35년 지킨 제조업의 원칙

40만원 광고로 얻은 64만원 첫 주문…비닐커튼에서 세미클린룸까지 현장 따라 확장

기사입력 2026-09-17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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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뿌리를 묻다] 잘 팔리던 제품도 접었다…웅비티에스가 35년 지킨 제조업의 원칙
오창영 웅비티에스 대표가 일체형 클린부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산업일보]
월 40만원이 넘는 산업잡지 광고를 냈다. 수입이 거의 없던 1인 기업에는 부담스러운 비용이었지만, 혼자 회사를 운영해 여러 공장을 찾아다니기 어려웠던 오창영 대표가 택한 시장 개척 방식이었다. 몇 달 뒤 문의가 들어왔고, 세 차례 상담 끝에 비닐 3롤을 64만원에 수주했다. 1991년 서울 서초동 지하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 전화기 한 대로 다시 출발한 웅비통상의 첫 주문이었다.

오 대표가 웅비티에스를 이끌어온 35년은 제품보다 판단의 역사에 가깝다. 전문인력이 없었던 첫 창업에서는 대표가 자리를 비우면 공장 운영이 어려웠다. 다시 문을 연 뒤에는 광고로 고객을 찾았고, 무산된 거래를 스윙도어 자체 개발로 돌렸다. 외환위기에도 인력을 줄이지 않았으며, 주문이 이어지던 제품도 사후관리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웅비티에스는 클린부스와 세미클린룸을 비롯해 산업현장의 출입구·칸막이·청정환경 설비를 직접 설계·제작·시공하는 제조기업이다. 산업용 비닐커튼 유통으로 출발해 스윙도어와 공장 칸막이, 클린부스·클린벤치·에어샤워, 세미클린룸으로 사업 범위를 넓혔다. 고객이 겪는 문제를 다음 제품으로 연결하되 공급 이후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를 사업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포항제철 11년 뒤 두 번의 창업
[산업의 뿌리를 묻다] 잘 팔리던 제품도 접었다…웅비티에스가 35년 지킨 제조업의 원칙
오창영 웅비티에스 대표

오 대표는 포항제철에서 11년간 근무했다. 노란색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강한 규율 아래 움직이던 당시 조직을 그는 ‘노란 군대’로 기억했다. 조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건강까지 나빠지자 1987년 회사를 떠났다.

퇴사 뒤 곧바로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통신 관련 업체와 출장 음식 사업, 일본 현지 일용직, 스카프 수출업체 등을 거쳤다. 무역업체에서는 장비 상담 업무도 경험했다. 일본에서 익힌 언어와 무역 실무가 훗날 사업의 밑천이 됐다.

1990년 10월 친구와 후배 등 3명이 경기 시흥유통상가의 13평 공장에 웅비산업을 열었다. 용접기와 공구를 승용차에 싣고 건설현장을 다니며 시공 경험을 쌓은 뒤 마련한 첫 사업장이었다.

문제는 역할을 나눠 맡을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오 대표가 거래처를 찾거나 영업을 위해 자리를 비우면 공장을 운영하기 어려웠다. 전문인력과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하지 못한 웅비산업은 약 6개월 만에 운영을 중단했다.

첫 실패 뒤에는 생산시설부터 갖추는 대신 고객을 찾는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1991년 4월 서울 서초동의 지하 사무실 한 켠을 빌려 웅비통상을 열었다. 간이 칸막이 너머로 다른 사무실의 말소리가 들리는 공간에 책상과 팩스 겸용 전화기, 컴퓨터 한 대를 들여놓았다.

별도의 생산인력 없이 상담과 발주, 납품을 혼자 맡는 1인 기업이었다. 현재의 웅비티에스로 이어지는 공식 출발점이다.

40만원 광고가 불러온 64만원 주문

초기 주력 제품은 공장 출입구에 설치하는 산업용 비닐커튼인 스트립도어였다. 냉기와 먼지, 벌레의 유입을 줄이면서 사람과 지게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설비다.

당시 국내 산업현장에는 비닐커튼의 용도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오 대표는 을지로 방산시장에서 수요를 조사하고 플라스틱 관련 협회를 찾아 자료를 구했다. 식품·음료업체 명단을 확보해 안내문도 보냈지만 전화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생산과 영업, 납품을 혼자 맡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제조업체처럼 여러 공장을 직접 돌며 제품을 알리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돌파구로 선택한 것이 산업매체 광고였다.

오 대표는 당시 타블로이드판 산업잡지 ‘IEN’에 월 40만원이 넘는 광고를 실었다. 제품과 회사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고객의 연락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광고하지 않고 고객을 기다리는 것은 어둠 속에서 윙크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몇 달 뒤 문의 전화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해 6월 중순 첫 주문을 받았다. 고객은 포장기계 업체 대현코포레이션이었다. 오 대표가 회사 홈페이지에 남긴 기록에 따르면 세 차례 찾아가 상담한 끝에 두께 2㎜, 폭 300㎜ 비닐 3롤을 수주했다. 견적가는 72만원이었지만 할인해 최종 64만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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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립도어 첫 자재 발주 당시. 대현코포레이션 공장에 설치된 모습. (웅비티에스 제공)

첫 주문은 이후 영업 방식의 출발점이 됐다. 산업매체를 통해 제품을 알리고 문의가 들어오면 현장을 확인해 규격과 설치 방법을 제안했다. 거래가 늘어난 뒤에는 전시회와 현장 영업을 결합해 고객 접점을 넓혔다.

비닐커튼을 넘어 현장의 다음 문제로

자재 유통을 넘어 현장 설계와 제작·시공까지 시작한 건 반월공단의 외국계 공장이 처음이었다. 같은 비닐커튼이라도 출입구 크기와 풍압, 차량 동선, 작업환경에 따라 자재의 두께와 구조가 달라졌다. 제품 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실적은 곧 대기업 거래로 이어졌다. 공단 내 대형업체들의 문의가 꾸준히 이어졌고, 현대자동차에서도 울산 물류창고, 현대중공업 중장비 세척장에도 비닐커튼을 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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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에 설치된 중장비 세척장 사진. (웅비티에스 제공)

오 대표는 전국 공장을 돌며 한 해 5만㎞ 안팎을 운전하기도 했다. 현장을 많이 접할수록 고객이 원하는 것이 비닐커튼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출입문과 칸막이부터 온도·청정도까지 공장 내부 환경을 함께 해결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비닐커튼에는 계절성과 수입 의존이라는 한계도 있었다. 겨울철 수요 비중이 높았고 바람에 취약했다. 원재료를 해외에서 들여와 환율과 납기의 영향도 받았다.

기존 고객이 겪는 다음 문제를 따라 제품군을 넓혔다. 수동식 비닐커튼은 슬라이딩·접이식·자동식으로 확장됐고, 출입구 수요는 스윙도어로 이어졌다. 칸막이와 청정환경에 대한 요구는 클린부스와 클린벤치, 에어샤워 개발로 연결됐다.

무산된 거래를 스윙도어 개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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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영 웅비티에스 대표가 사무실에 설치된 스윙도어를 열고 있다.

1999년 대형 유통시설에 설치할 스윙도어 납품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 국내 시장은 수입품 비중이 높아 가격 부담이 컸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제품을 준비했지만 현장과 구매부서 사이에서 예산 문제가 불거졌고 가격 조정 요구가 이어졌다.

이미 비용과 시간을 들였지만 불리해진 조건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해당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으나 이를 계기로 수입 제품의 구조를 분석하고 자체 모델 개발에 나섰다. 스프링 범퍼와 창문 몰딩 등 주요 부품도 별도로 제작했다.

이후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스윙도어와 경량 알루미늄 제품으로 범위를 넓혔다. 기대했던 거래는 놓쳤지만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은 대형 유통시설과 식품공장에 진입하는 기반이 됐다.

오 대표는 이를 아이템을 ‘찾은’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키운’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본업과 무관한 시장을 좇은 것이 아니라 기존 고객이 겪는 인접 문제를 풀면서 사업 영역을 넓혔다는 의미다.

11만원짜리 책에서 시작한 클린장비

클린장비 사업은 학습에서 출발했다. 1993년 한 연구시설에서 약 30평 규모, 청정도 10만 클래스 수준의 클린룸을 설치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들어왔지만 관련 경험이 부족했다.

오 대표는 국내 서점을 뒤진 끝에 일본공기청정협회가 만든 650쪽 분량의 ‘클린룸 핸드북’을 찾았다. 가격은 11만여 원이었다. 당시 전동드릴 3개를 사고도 남는 금액이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이 책을 ‘생애 가장 비싼 책’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서적과 일본 측 자료를 통해 청정도와 공조 원리를 익혔다. 이후 여러 산업현장의 청정설비를 접하며 관련 지식을 쌓았다. 클린장비 개발은 기존에 제작하던 공장용 부스에 공조장치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반도체 생산현장에 들어갈 클린부스를 개발할 때는 풍속계와 진동계도 갖췄다. 첫 제품에는 판매가격의 두 배가 넘는 비용이 들었지만 까다로운 사양을 맞춘 경험은 자체 장비 개발의 밑바탕이 됐다.

기술자료 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한 일도 있었다. 납품 후 제출한 상세 설계자료가 다른 제작업체에 전달돼 유사 제품 제작에 활용됐다고 판단한 사례다. 당시 거래 상대방의 입장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설계자료의 외부 제공을 제한하고 최종 사용처에 직접 납품하는 원칙을 강화했다.

철제 용접에서 알루미늄 모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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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영 웅비티에스 대표가 자체 제작한 알루미늄 견본 부품을 소개하고 있다.

초기 클린부스는 철제 프레임을 용접한 뒤 외부에서 도장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외주 공정이 늘면서 납기와 품질을 통제하기 어려웠고, 설치한 장비를 해체해 다른 장소로 옮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웅비티에스는 클린장비에 맞춘 알루미늄 압출 금형을 개발했다. 시중의 범용 프로파일을 조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골조와 연결 브래킷, 부품을 장비 규격에 맞게 설계했다. 먼지가 쌓일 수 있는 홈은 줄이고 외부 면은 평평하게 구성했다.

용접과 도장 공정을 줄이면서 설계부터 가공·조립·설치까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다. 규격화한 부품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 방식이어서 생산라인 변경에 따른 해체와 이전 설치에도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오 대표는 현장 조건에 따라 기존 제작 방식보다 시공 기간을 30∼50%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 설치는 신규 판매를 줄일 수 있지만 장비의 사용기간과 고객 신뢰를 늘리는 서비스로 봤다. 제품을 판매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공장 이전과 생산라인 변경까지 대응해야 모듈화의 의미가 있다는 판단이다.

클린룸과 간이 부스 사이의 세미클린룸

세미클린룸은 일반 냉난방 설비와 필터·공조 구조를 조합해 온도·습도와 청정도를 관리하는 절충형 청정공간 설비다.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한 중소 제조기업의 여건에서 출발했다.

정밀가공과 연구개발을 위해 청정공간은 필요하지만 대형 항온항습기와 실외기, 별도 공조실을 설치할 공간과 비용이 부족한 사업장이 적지 않았다. 클린부스만으로는 온도와 습도를 관리하기 어려웠고, 정식 클린룸은 초기 투자와 유지비 부담이 컸다.

웅비티에스는 정식 클린룸과 간이 부스 사이의 수요를 겨냥해 세미클린룸 제품군을 개발했다. 일반 냉난방 설비를 활용하면서 필터와 공조 구조를 공정별 요구 조건에 맞추는 방식이다.

정식 클린룸이 엄격한 청정도와 항온·항습 조건을 전제로 한다면 세미클린룸은 공정별 요구 수준과 예산, 설치 공간에 맞춰 필요한 환경을 구성한다. 모든 생산시설을 대체하는 설비는 아니며, 높은 수준의 청정 조건이 필요한 공정에는 기존 클린룸을 적용해야 한다.

오 대표에 따르면 세미클린룸은 현재 클린룸 관련 매출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적용 여부를 결정하려면 공정에서 요구하는 청정도와 온·습도 범위, 오염원, 장비 배치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에어샤워도 반복되는 고장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사용자가 문을 무리하게 조작할 때 문제가 생기던 기계식 잠금장치 대신 전자석 방식의 인터록을 적용했다. 좁은 공간에 설치할 수 있도록 모터와 팬을 상부에 배치하고 앞뒤와 양옆에서 바람이 나오도록 노즐 구조도 바꿨다. 작업자의 사용 방식과 고장 사례를 관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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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영 웅비티에스 대표가 자사 에어샤워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잘 팔리던 제품도 접었다

현장에서 수요를 찾았다고 모든 제품을 계속 가져간 것은 아니었다. 오 대표가 회사 홈페이지에 남긴 기록에 따르면 웅비티에스는 2000년대 초 소형 고속 시트셔터를 개발했다. 수입 구동부를 국산 부품으로 바꾸고 작은 출입구에 맞춰 제작비를 낮춘 제품이었다.

식품·바이오 공장의 위생관리 강화와 맞물려 주문이 늘었다. 출시 후 약 5년이 지나자 별도의 영업 없이도 설치 요청이 들어오는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공급 이후였다. 고속으로 개폐되는 출입문은 지게차 충돌과 센서 오작동, 작업자의 부주의 등에 따른 수리 요청이 잦았다. 생산과 위생관리에 연결된 설비여서 고객은 고장 원인과 관계없이 신속한 복구를 요구했다.

설치 제품이 100대에 가까워지면서 사후관리 요청도 함께 늘었다. 전담인력을 배치하기에는 해당 품목의 매출 비중이 5%에도 미치지 못했다. 긴급 출동이 반복되면서 다른 제품의 제작과 설치 일정까지 흔들렸다.

오 대표는 고심 끝에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판매를 멈춘 뒤에도 이미 공급한 제품의 사후관리는 이어갔다. 그는 회사 비하인드스토리에서 이를 “잘 나가는 아이템을 포기한 첫 경험”이라고 기록했다.

이 일은 제품의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바꿨다. 시장 반응과 판매액뿐 아니라 고장 빈도와 부품 수급, 긴급 대응 인력, 유지보수 비용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함께 따지게 됐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못지않게 어떤 제품을 중단할지를 결정하는 일도 제조기업의 책임이라는 판단이었다.

외환위기에도 사람은 남겼다

1997년 웅비티에스는 안양의 아파트형 공장을 분양받았다. 매달 나가던 임차료를 줄이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분양대금의 상당 부분을 외화대출로 조달했다.

입주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가 닥쳤다. 환율 급등으로 외화대출 부담이 커졌고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과 미수금 일부도 회수하지 못했다.

오 대표에 따르면 약 6개월간 일감이 끊기다시피 했지만 인력 감축은 하지 않았다. 서울 사무실을 폐쇄해 공장으로 합치고 고정비를 줄였다. 당장의 인건비보다 주문이 돌아왔을 때 생산과 설치를 재개할 조직을 남기는 쪽을 택했다.

웅비티에스에는 15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이 있으며 30년 넘게 함께한 구성원도 있다. 오 대표는 화려한 경력의 ‘완성형 인재’보다 성실성과 책임감을 중시한다. 기술은 현장에서 가르칠 수 있지만 신뢰는 단기간에 만들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는 “리더가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보이면 직원들도 눈앞의 이익만 좇게 된다”며 “성실한 사람을 채용해 기술을 가르치고 함께 성장하는 편이 회사에도 맞는다”고 말했다.

접대보다 제품, 인증보다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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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시 소재 개인사무실에서 고객사 요청 기록 등을 살펴보고 있는 오창영 웅비티에스 대표

오 대표가 내세우는 경영철학은 ‘원칙 고수’다. 거래 과정에서 금품이나 접대 요구를 경험한 뒤 명절에는 거래처 방문을 자제하고 회사로 들어온 선물도 돌려보내는 기준을 세웠다.

특정 담당자와의 관계에 기대기보다 제품으로 다시 선택받아야 한다고 봤다. 접대나 가격 부풀리기가 개입할 가능성이 큰 거래는 피했고, 최종 사용처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 납품을 중시했다. 일부 제품 가격을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웅비티에스는 2004년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지만 오 대표는 인증서 자체를 기술력으로 여기지 않았다. 별도의 연구소나 화려한 학력보다 실제 납품 실적과 현장에서 해결한 문제를 근거로 기술을 설명했다.

외부 인증은 자금과 지원사업에 접근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제품 성능과 사후관리를 대신하지 못한다. 고객이 맡긴 일을 약속대로 끝내고 문제가 발생하면 회피하지 않는 것이 장기 거래의 조건이라는 생각이다.

창업자의 판단을 조직의 방식으로

35년간 웅비티에스를 움직인 동력은 오 대표의 현장 경험과 판단이었다. 어떤 주문을 받아야 하는지, 고객 요구를 어디까지 반영할지, 매출이 발생하는 제품을 언제 중단해야 하는지가 대표 한 사람의 결정에 크게 의존했다.

오 대표가 제시한 다음 목표는 개인의 판단과 희생에 기대지 않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오너가 없어도 스스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견적과 설계 기준, 부품 관리, 작업 절차, 서비스 이력을 표준화하고 장기근속자의 숙련을 후배 직원에게 전해야 한다. 창업자의 경험을 조직의 지식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후배 기술인에게 남긴 말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쉽게 얻은 성과는 오래가기 어렵고, 현장에서 흘린 땀과 실패를 통해 축적한 기술만이 다음 선택의 기반이 된다는 의미다.

35년 전 64만원의 첫 주문은 작은 매출이었지만 웅비티에스가 시장을 개척하는 방식을 만들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창업자의 판단과 원칙을 한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조직의 방식으로 남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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