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라이벌] 에디슨 VS 테슬라
토머스 에디슨 [Thomas Alva Edison, 1847.2.11~1931.10.18]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니콜라 테슬라 [Nikola Tesla, 1856.7.10~1943.1.7]
“모든 마찰 저항 중에서 인간의 운동을 가장 늦추는 저항은 바로 무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맞이했을 경쟁, 그 경쟁을 통해 인간은 진화한다. 그리고 경쟁에는 늘 라이벌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라이벌이 된 두 사람이 있다. 인류 역사에 빛의 혁명을 가져다 준 발명가이자 과학자 에디슨과 테슬라, 에디슨의 그늘에 가려 있던 테슬라의 천재성과 언론에 의해 미화되고 왜곡된 에디슨의 삶을 재조명한다.
‘발명의 왕’이라 불리며 세계 최초 전구를 발명, ‘밤을 밝히는 혁명’을 몰고 온 에디슨은 사실 천재라기보다는 노력파였다. 발명할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론과 계산을 제쳐두고 우선 발명을 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야만 했다.
반면 테슬라는 어렸을 때부터 언어, 음악, 수학, 물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이며 발명을 할 때도 먼저 정확한 이론을 바탕으로 계획서를 작성한 뒤 발명을 진행했으며 반복시행착오를 거의 겪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천재성은 에디슨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1884년 6월, 테슬라가 에디슨 전등회사(1882년 창립)에서 그의 제자로 일하게 되면서부터 두 사람의 대립은 시작된다.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위기감을 느끼며 자신의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린다. 당시 축음기, 전화송신기, 직류전기를 발명하고, 전자공업 발달의 원동력이 된 ‘에디슨효과’를 발견해 부를 축척하고 있었던 에디슨에게 테슬라가 교류전기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고비용으로 당시 일반들이 사용할 수 없었던 직류전기에 비해 교류전기는 훨씬 작은 비용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었으며, 전기의 대중화를 불러 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직류전기 시스템에 많은 투자를 해놓은 에디슨은 교류로 전환하자는 테슬라의 제안을 거절한다.
에디슨 밑에서 배움을 얻기 위해 그의 제자로 일했던 테슬라는 그에게 크게 실망을 하고 1887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 세계 최초로 효율적이고 튼튼한 교류유도전동기인 ‘테슬라코일(테슬라코일)’ 발명에 성공한다. 이는 1800년대의 무수히 많은 과학자, 발명가들이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것으로, 훗날 제2산업혁명을 몰고 올 만큼 획기적이고 놀라운 것이었다.
이에 에디슨은 “교류전기는 사람이 접촉 만해도 사망하기 때문에 사형수를 위한 전기의자에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1888년부터 1993년 이른바 ‘전류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급기야 에디슨은 2,000볼트의 교류가 흐르는 전기의자를 발명해 교도소에 납품하기 시작하는데, 교류전기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경각심을 사람들에게 심어 줄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전기의자로 사형을 집행했을 당시, 사형수가 즉사하지 않자 에디슨의 주장은 의심받게 된다.
그 후 사람들의 신임을 잃어가던 에디슨은 “모두가 무언가를 훔치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훔쳤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훔쳤는지 모른다”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으며, 결국 자신이 등록한 발명품의 특허권 분쟁 소송에 휘말리게 됐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회사에서 물러난다.
에디슨은 일생동안 1,000여 종의 발명 특허를 등록했으며, 전구 발명을 통해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혁신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인생 그래프를 살펴보면 그의 전성기는 1876년~1881년이었다. 이는 테슬라를 만난 시기와 맞물려 있어 이때 에디슨은 운명의 라이벌을 만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실제로 에디슨은 임종하기 직전 자신의 아들에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는 직류를 교류로 전환하지 않은 것이야”라고 고백했다. 그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서야 테슬라가 발명한 교류전기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던 것이다.
에디슨의 전성기가 식어가자, 테슬라의 전성기가 왔다. 그는 일생동안 1만 여 종의 발명품을 만들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러 자신의 발명품에 특허를 내지 않았다.
1895년 나이아가라 발전소를 만들고 강력한 교류발전기와 교류모터를 사용, 교류전기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3년 전 세계의 모든 발전소가 교류전기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테슬라는 전기의 대중화와 함께 에너지산업의 또 다른 혁명을 일으켰다.
테슬라는 지구가 거대한 전자부품이라 주장했는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 1899년 대전력의 전기를 무선으로 전달시키는 ‘무선송전 실험’을 했으며, 지구가 전도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대기 중의 전류 연구에 관심을 쏟으며 인공번개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전 세계의 무선전화, 무선TV, 무선인터넷에 대한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기득권층의 반대로 무산되고 만다.
테슬라는 시대를 훨씬 앞서는 기이한 발상과 이론을 주장해 미치광이, 몽상가라는 오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남들보다 한 세기 앞서 있었던 그의 상상들은 오늘날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