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性상사 시대… 이 남자가 사는 법
#저 여자 또 꼬나보네. 기획서만 내면 저 표정이다.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지. 곧 “이 따위로 할 거예요”라며 짱알거리겠지. 나이도 어린 게 잘난 척은. 지가 잘난 게 있으면 군대 안 가고 회사 3년 빨리 들어온 거밖에 더 있어. 진하게 술판 벌이고 노래도 한 곡조 뽑았으면 좋겠지만, 허구한 날 와인타령이니.
#저 여자 그래도 괜찮아. 기획력 좋지. 판단이 빨라 잡일이 없지. 하여간 똑부러지네. 와인 한잔 기울이면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재미도 쏠쏠하네. 새벽까지 술판 안 벌이니 몸도 덜 피곤하고 마누라도 좋아하고. 남자인 김 부장 모실 때와 오히려 업무 효율성은 더 높아지는 것 같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남ㆍ39) 차장. 그는 얼마전 부임한 2살 연하의 심모(여ㆍ37) 부장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깐깐하고 깔끔떠는 여성 부장의 스타일에 심드렁하지만, 오히려 일은 잘풀린다.
여성 상사시대가 열리면서 기업 사무실이 보이지 않는 문화충돌 현상을 겪고 있다.
‘부하 직원’에만 머물렀던 여성들이 상사 지위로 올라가면서 업무부터 회식까지 사무실의 문화코드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과연 직장 내 문화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또 어떻게 이에 대처할까?
▶까다로운 그녀?=“업무지시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보고를 받을 때도 상당히 까다롭죠” 여성 직장상사 밑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원 임모(32) 씨는 여성 상사의 성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여성 상사는 업무 지시부터 요구사항까지 일하는 스타일이 한마디로 까다롭다는 평을 듣는다. 이 일이 왜 중요한지, 방향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보고를 받을 땐 세부 데이터는 물론 조사 하나까지 점검한다. 좋게 말하면 일 처리가 꼼꼼하고 나쁘게 말하면 잔소리가 심한 셈.
외국계 F기업에 근무하는 강모(여ㆍ42) 차장은 “남자 사원의 경우 여자 상사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성향이 있다”면서 “여성들이 이런 약점을 극복하면서 나름대로의 대처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하는 스타일의 차이는 있지만, 업무 성과를 중시하는 차원이라면 그녀의 ‘까다로움’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공사 구분이 확실한 그녀?=“같은 대학 출신이라고 봐주는 게 없습니다. 과정보다 성과를 중시하기도 하고요. 상사들에게 직접 얘기하거나 상벌이 확실한 점은 좋죠.” 대기업에서 여성과 남성 상사 밑에서 모두 일한 경험이 있는 A기업 정모(32) 대리가 여성 상사에 대해 내린 평가다.
여성 직장상사는 상대적으로 공사 구분이 확실하다는 게 중평. 남성들이 거미줄처럼 엮인 네트워크를 중시하고 적절히 활용하는데 반해, 여성들은 네트워크 기반이 취약한 경우가 많아 성과물로 승부를 걸기 때문이다. 실력으로 유리천장을 뚫어온 경험 때문에 상사가 돼서도 공사구분이 철저해진 것.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경미(28) 씨는 “여자의 경우 (사내에서) 정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인맥도 없는 경우가 수두룩해 조직에서 인정받으려면 능력밖에는 없지 않느냐”며 여성들의 행동 뒤에 깔린 사회적 배경을 설명했다.
▶뒤풀이 코드도 다른 그녀?=“‘담배 한대?’,‘술 한잔할까?’란 얘기를 들은 지 오랩니다. 이보단 가끔 떡볶이를 사와서 먹거나 와인을 마시는 경우가 있죠.”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김모(34) 과장은 여성 부장이 부서에 온 뒤 바뀐 문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성 상사는 뒤풀이 등 향유하는 문화도 다르다. 스트레스를 담배 한 가치를 베어 물고 내뿜는 연기와 함께 태워버리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생크림이 가득 담긴 스타벅스 커피 한잔을 마시고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푼다.
회식문화도 마찬가지. 망가지더라도 확 풀어버리고 싶은 게 남성들의 심리라면, 뒤풀이는 우아한 게 좋다는 것이 여자들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김모(35) 과장은 이에 대해 “술을 진탕 마시고 회포를 풀려는 남자 직원들과는 코드가 엇갈려 아쉽긴 하지만, 술을 덜 먹게 돼 좋다거나 맞추다 보면 향유하는 문화도 다양해진다”고 말했다.
▶보이시(Boyish)한 그녀?=여성리더의 성향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과거에는 보이시한 여성 상사가 대세였다면 지금은 여성성이 묻어나는 리더가 부쩍 눈에 띈다.
남성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서로를 밟고 올라야만 살아남았던 시대에는 마초(Macho) 성향으로 중무장해야만 성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실력으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여성성을 그대로 살린 리더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광고회사 웰콤의 문애란 기획위원은 이에 대해 “최근 성공하는 여성 리더 가운데 여성성을 억누르고 남성화된 케이스는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여성 리더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고 부하직원들은 이를 상호보완을 통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여성 리더가 가진 성향 중 강점은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는 반면, 취약한 네트워크나 남자 직원들과의 원만한 관계 설정 등은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 간식, 수다 등 여성들의 문화를 프로 근성이 배어 있어야 할 사무실에 들여오는 것은 좋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이와 관련, 삼성경제연구소는 ‘여성 리더계층의 위상과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여성 리더가 늘어나면 소수일 때에 비해 ‘더 높은 직위에 적합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가’에 대한 엄정한 검증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여성 리더에게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는 멘토링을 통한 후배 여성 인력 양성과 네트워크 보완도 필요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