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유혹하는 여자의 9가지 유형
1. 냉담한 나르시시스트, 코케트형
1795년 가을, 파리에는 이상한 열기가 감돌았다. 혁명 이후 공포정치가 막을 내리고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소리가 사라지자 여기저기서 광란의 파티와 축제가 이어졌다.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흥청거리는 파티와 축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해 10월, 조제핀 드 보아르네라는 서른세 살의 미망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조제핀은 나폴레옹을 파티에 초대했다. 조제핀은 파티 도중 여러 번 다른 남자들 틈에서 빠져나와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나폴레옹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색하게 서 있던 나폴레옹은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그녀에게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후 나폴레옹은 조제핀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로 그녀는 나폴레옹을 무시했고, 그때마다 그는 화가 나서 나와버리곤 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조제핀으로부터 열정이 담긴 편지가 날아왔고, 그는 다시 그녀에게 달려갔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목이 잘릴 뻔한 조제핀은 그 경험으로 인해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녀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쾌락을 즐기며 사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삶을 최대한 보장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일찍부터 나폴레옹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젊고 전도양양한 남자였다. 나폴레옹의 공격적인 성격을 간파한 그녀는 그것을 약점으로 삼아 그를 길들였다.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상냥함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후, 일단 욕망을 일깨운 뒤에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애간장을 태웠다. 나폴레옹이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 그것은 바로 ‘조제핀’이었다.
유혹을 하려면 서두르지 않고 욕망을 천천히 조절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상대가 완전히 유혹에 빠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코케트는 이런 유혹의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존재이다. 늦췄다가 당겼다가, 기쁨을 주는 듯하다가도 다시 냉정해지는 코케트의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코케트는 육체적인 쾌락과 행복, 명예와 권력을 주겠다는 약속으로 상대에게 미끼를 던지지만 그 미끼를 쉽게 낚아채도록 허락하지는 않는다. 결국 상대는 더욱더 애가 달아 달려들게 된다. 뜨거웠다 차가웠다 하는 코케트의 매력을 지닌다면 충분히 상대의 애간장을 태울 수 있다.
2. 열정적인 신념가, 카리스마형
1917년 3월, 러시아 의회는 니콜라이 황제를 폐위시키고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당시 러시아는 거의 패망하기 직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것이 재난의 원인이었다. 곳곳에서 기근이 일어났으며 약탈과 폭력이 난무했다. 군인들은 집단으로 탈영했고, 정치는 당파싸움으로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47세의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귀국했다. 21년 동안 유럽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기회를 기다리던 그는 러시아가 혼란에 빠지자 서둘러 고국으로 돌아와 전쟁을 중지하고 즉각적인 사회혁명을 달성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귀국 후 일주일 동안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오로지 비웃음뿐이었다.
작은 키에 평범한 외모의 그는 전혀 매력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레닌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전쟁을 종식시키고,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하는 세상을 건설하고,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설파했다. 정쟁과 복잡한 문제들에 넌더리가 난 사람들은 차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단호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냉정함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레닌은 한치도 흔들림이 없는 확고한 태도로 자신의 명분을 제시했다. 제1차 전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행한 그의 연설은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혁명이냐, 부르주아 정부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부르짖었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느라 중도적인 입장이었던 다른 정치인과 달리 레닌은 바위처럼 굳건했다. 그의 위상은 하늘 높이 치솟았으며, 그와 더불어 볼셰비키 당의 인기도 높아졌다. 결국 레닌은 맨주먹으로 1917년 10월 혁명을 완수했다.
카리스마의 매력은 내면에서 우러나온다. 그들의 특징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부족한 자신감, 강렬한 성 에너지, 뚜렷한 목적의식, 충만한 만족감이다. 이와 같은 내면의 자질을 바탕으로 한 카리스마의 모습은 단연코 그를 군계일학과도 같은 탁월한 존재로 비치게 한다. 카리스마는 대개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강렬한 눈빛, 뛰어난 웅변술, 신비감 넘치는 기풍을 가지고 있다. 초연한 듯 정열이 넘치는 카리스마의 모습은 그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3. 신비로운 우상, 스타형
민주당 전당대회가 있기 몇 주 전인 1960년 7월 2일, 전임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직을 맡기에는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7월 4일,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가 휴가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견은 더욱 화제가 되었고, 아직까지 아무도 못 본 그의 모습이 방송을 통해 드러났다. “이 나라는 젊은 사람들이 건설한 젊은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여전히 젊은이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옛 방식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 시대는 우리에게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젊은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그의 연설은 그의 정적들조차도 수긍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또한 그는 말뿐만 아니라 스타일에서도 강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마침내 케네디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텔레비전 공개 토론에서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과 한판 승부를 벌였다. 닉슨은 예리했다. 그는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했고, 자신이 부통령으로 참여한 행정부가 이룩한 업적을 정확한 통계로 인용하며 토론에 임했다. 하지만 당시 흑백 텔레비전에 비친 그의 모습은 케네디와 달리 마치 송장과 같았다. 또한 케네디는 자질구레한 논점이 아닌 자유와 새로운 사회 건설을 언급하면서 미국인의 개척 정신에 호소했다. TV 토론 이후 그의 지지율은 놀라울 정도로 급등했고 결국 케네디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임 대통령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케네디는 취임 뒤에도 텔레비전 생방송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계속 드러냈고,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있는 모습, 백악관 잔디에서 축구하는 모습, 헌신적인 가장의 모습, 위대한 스타들과 어울리는 모습 등을 사진에 담아 게재하도록 했다.
인생살이는 거칠고 힘들다. 따라서 사람들은 누구나 환상과 꿈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다. 스타는 사람들의 이런 약점을 지나치지 않는다. 스타는 빼어난 용모와 스타일로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우상이 된다. 아울러 스타는 대중과 거리를 둔 채 자신을 베일에 싸인 듯 위장하기 때문에 더욱더 사람들의 호기심과 환상을 자극한다. 마치 꿈 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스타의 모습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끌리게 된다. 아름답지만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무지개와 같은 스타의 모습을 연출한다면 놀라운 유혹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4. 요부, 세이렌형
마릴린 몬로의 본명은 노마 진 모텐슨이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의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음대로 놀지도 못하고 날마다 힘든 허드렛일을 해야 했던 노마 진의 삶은 매우 고달팠다. 그러나 찢어진 블라우스 대신 그녀보다 어린 여자아이의 스웨터를 빌려 입어 몸에 옷이 꼭 끼인 채로 학교에 간 열세 살 되던 해의 어느 날, 그녀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날 갑자기 사내아이들이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었던 것. 노마 진은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그녀는 전보다 더 많이 웃고, 화장도 진하게 하고, 옷차림도 바꾸었다. 그러자 상황이 바뀌었다. 특별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사내아이들은 그녀에게 빠지기 시작했다. 몇 년 뒤, 마릴린은 자신의 매력을 영화계에서 발산시킬 기회를 찾았다. 엑스트라였지만 잠깐 동안 화면에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남자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마릴린 먼로는 자신의 육체가 남성의 성욕을 일깨워 준다는 사실을 알고 좋아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마치 악기처럼 조율했으며, 성적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실제보다 더 매혹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가꾸었다. 마릴린은 무의식적으로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에서 보통 여성들과 달랐다. 한편 그녀는 구원을 요청하는 소녀처럼 가련해 보였다. 그녀는 이와 같은 사랑의 욕구를 카메라 앞에서 한껏 발산했다.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그녀의 눈길과 몸짓은 더욱 큰 매력을 발휘했다.
남성은 자신에게 부과된 사회적 역할을 이행하느라 늘 욕망을 억누르며 산다.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를 통제하며 이성적으로 살아야 하는 남성에게 세이렌은 해방과 자유를 느끼게 하는 여성 유혹자이다. 남성은 세이렌이 발산하는 성적 매력 앞에서 순수한 쾌락의 세계로 인도되는 듯한 환상에 젖는다. 대부분의 여성은 세이렌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낼 정도로 과감하지 못하다. 하지만 세이렌은 남성이 원하는 환상 속의 여인으로 나타난다. 세이렌은 남성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그를 지배한다.
5. 바람둥이, 레이크형
1710년 프랑스, 열다섯살 난 소년이 궁정에 오게 되었다. 그 소년은 잘생긴 외모에 깜찍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특히 여성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프롱사크, 나중에 리슐리외 공작이 된다. 소년은 넉살도 좋고 재치도 있었다. 여자들은 그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다. 그는 때로 여자들에게 입을 맞추기도 하고, 몸을 더듬기도 하는 등 소년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다녔다. 그의 손은 점잖은 공작부인의 치마 속도 가리지 않았다. 그의 못된 짓에 분노한 루이 14세는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고 그를 바스티유 감옥에 보냈다. 하지만 그와 노닥거리기를 좋아했던 여자들은 그가 없는 왕궁을 견딜 수가 없었다. 잔뜩 경직되어 있는 왕궁의 귀족들에 비하면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담했으며 황홀한 전율을 느낄 만한 눈빛과 온몸을 짜릿하게 만드는 자극적인 손길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여성들의 청원으로 그는 바스티유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몇 년이 흘렀다. 드 발루아라는 여자의 아버지 오를레앙 공작은 방탕한 귀족들의 유혹에서 딸을 지키고자 품행이 단정하고 침착한 심성을 가진 샤프롱(사교계에 출입하는 젊은 여성을 따라 다니며 돌봐주는 여인)에게 딸을 지키도록 했다. 하지만 드 발루아는 공원에서 자기를 쳐다보는 한 남자의 눈길에 그만 마음에 불이 붙고 만다. 그는 바로 유혹자, 난봉꾼으로 악명 높은 리슐리외 공작이었다. 리슐리외는 이후 그녀에게 연서를 보내기 시작했고, 결국 철통같은 그녀의 집에 몰래 잠입해 들어가 그녀를 품에 안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안 오를레앙 공작은 방어벽을 두 배로 더 강화했지만 이는 오히려 리슐리외의 모험심을 자극했을 뿐이었다. 리슐리외는 가명으로 공작의 옆집을 사들여 공작의 집 부엌 찬장과 연결되는 비밀통로를 만들도록 했으며, 그 찬장 안에서 몇 달 동안 무수한 애정행각을 벌였다.
그는 자신의 애정행각을 가능한 한 크게 떠벌리고 다녔기 때문에 파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가 달성한 위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매주 새로운 소식이 한 가지씩 왕궁에 떠돌았다. 여인들은 그의 대담한 용기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의 관심을 끌려고 서로 경쟁했다. 리슐리외를 가장 미워했던 오를레앙 공작부인은 “리슐리외 공작 앞에서는 그 어떤 여자도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미신을 믿었다면 그가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여성은 남성에게 좀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남성은 여기저기 신경 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여성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레이크는 바로 여성이 원하는 환상의 연인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레이크는 여성을 원하고, 그녀를 위해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갈 수 있다는 정열을 보여준다. 레이크는 부정직하고 비도덕적이고 한 여인에게 충실하지도 않지만 그런 모습이 오히려 그의 매력을 한층 더 강력하게 만든다. 위험스러운 쾌락을 추구하는 레이크의 분위기를 풍긴다면 여성의 억눌린 욕망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다.
6. 헌신적인 연인, 아이디얼 러버형
런던에서 파울린이라는 한 여성이 우연히 지역 신문에 난 광고를 보게 되었다. 어떤 남성이 집을 함께 쓸 여성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파울린은 포르투갈 출신의 귀족이었다. 그녀는 애인과 함께 런던으로 도망쳐온 상태였으나 애인은 피치못할 사정으로 고국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파울린은 돈도 없고 외로웠으며, 더러운 주변환경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으므로 그 광고에 마음이 끌렸다. 광고를 낸 사람은 다름 아닌 카사노바였다. 그는 파울린에게 깨끗한 방을 제공했으며, 방세 대신 가끔 말동무가 되어달라고 했다. 그들은 체스도 두고, 승마도 하고, 문학도 논했다. 그는 예의 바르고 관대했다. 게다가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어도 질리지 않는 남자였다. 진지하고 고결한 성격의 파울린은 점차 그의 우정에 기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사노바의 태도가 일변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파울린은 곧 포르투갈로 돌아가 연인을 만날 계획이었으므로 그의 말에 무척 당황했다. 그녀는 그에게 승마라도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날 저녁 늦게 파울린은 그가 말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그가 사고를 당한 것이 자기 탓인 것 같아 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를 보자 그녀는 통제력을 잃고 그의 팔에 안겼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그들은 파울린이 런던에 머무르는 동안 그렇게 지냈다. 하지만 마침내 파울린이 포르투갈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그는 파울린을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위로하며 서로 못다 이룬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서 평생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했다.
카사노바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혹자일 것이다. 그를 거부한 여성은 거의 없었다. 그의 방법은 매우 단순했다. 그는 여성을 만나는 순간 그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상대 여성의 기분을 잘 맞추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삶에 없는 것을 파악해 그 부분을 채워 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을 아이디얼 러버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의 꿈과 이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좌절을 맛본다. 즉 사회적인 역할과 인간관계, 이런저런 일들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면서 젊었을 때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이디얼 러버는 마치 깨진 꿈을 실현시켜줄 듯한 구원자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이디얼 러버는 낭만, 모험, 진정한 정신적 교감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한마디로 아이디얼 러버는 사람들이 원하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와 같은 존재이다. 저속하고 무미건조한 세상에서 아이디얼 러버는 무한한 유혹의 힘을 발휘한다.
7. 창조적 스타일리스트, 댄디형
로돌포 구글리엘미는 1913년 18세의 나이로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는 잘생긴 외모와 능숙한 춤솜씨 외에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구글리엘미는 직업 댄서로 일하면서 여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는 이를 통해 여성들을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여성들에게 말쑥하게 보이기 위한 외모 관리에 들어갔다. 셔츠 속에 코르셋을 입어 몸매가 날렵해 보이게끔 했고, 손목시계를 착용했으며(당시 손목시계는 여성들이 차는 것으로 여겨졌다), 자신이 후작의 작위를 가진 귀족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루돌프 발렌티노로 알려진 그는 처음에는 3류 영화의 엑스트라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젊음의 눈〉이라는 영화에서 큰 배역을 맡게 되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유혹자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했다. 친절하고 섬세한 몸 동작, 부드러운 피부와 잘생긴 얼굴로 상대 여성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저항을 키스로 가볍게 일축하는 그의 모습은 여성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1920년대에 들어서자 여성들은 새로운 성적 해방을 누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먼저 남성을 유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남성들이 자신을 강하게 유혹해주기를 바라는 여성들의 마음은 여전했다. 발렌티노는 이런 여성들의 심리를 정확히 이해했으므로 실제 생활에서도 영화 속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했다. 1926년 8월 31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갑자기 사망했을 때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관을 붙잡고 애도의 뜻을 표했으며, 히스테리 상태에 빠진 여성 조문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대부분 세상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즉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삶보다는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답답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댄디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유혹적인 존재이다. 댄디는 틀에 매인 삶을 거부하기 때문에 한 가지 유형으로 범주화될 수 없다. 그와 같은 댄디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유를 느낀다. 댄디는 여성과 남성의 특성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외모를 만들어 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댄디의 역할을 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의 억눌린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신비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이다.
8. 천진난만, 내추럴형
찰리 채플린은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뒤 몇 년 동안을 혹독한 가난 속에서 지내야 했으며, 열 살이 넘어서부터는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 했다. 그는 후에 코미디언으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매우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10년 19세의 나이로 영화 쪽에 진출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이주해 왔다. 할리우드로 진출하기 위해 그는 작은 단역을 맡아 배우로 일하기 시작했다.
1914년 채플린은 가까스로 〈인생살이〉라는 단편영화의 주연을 맡을 수 있었다. 그의 역할은 예술가로 위장한 사기꾼이었다. 이 역할을 위해 그는 헐렁한 바지와 중절모, 터무니없이 큰 장화 차림에 지팡이를 들고 수염을 그렸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에 한 손으로 지팡이를 빙빙 돌리며 온갖 종류의 개그를 선보였다. 당시 감독은 그 영화가 희극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하면서 나아가 채플린의 자질을 의심했지만 몇몇 영화비평가의 견해는 그와 반대였다. 결국 그 영화는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켜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에서 찰리 채플린이 보여준 연기는 그를 다른 코미디언과 뚜렷이 구별되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았다. 연기의 핵심은 바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천진난만한 모습에 있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연기를 했다. 채플린은 영화 제작을 위해 배역을 선정할 때 항상 자기보다 몸집이 큰 배우를 구했다. 그는 그들을 위협적인 성인의 모습으로 분장시켰고, 자신은 연약한 어린아이처럼 분장했다. 그는 어른들의 세계를 불신했으며, 어린아이들과 어울리며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고자 했다. 그의 네 명의 아내 가운데 세 명은 결혼할 당시 10대 소녀였다.
청중이나 국가 또는 세계를 유혹하는 위대한 유혹자들은 사람들의 무의식을 자극함으로써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호응을 불러일으킨다. 채플린 역시 그랬다. 그는 성인의 몸을 입고 있는 어린아이로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대중을 사로잡았다. 어린 시절은 인생의 황금기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는 가식이 없고 솔직할 뿐 아니라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다. 내추럴은 이런 어린아이의 특성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내추럴 앞에서 편안함과 장난기 어린 마음을 느끼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환상에 젖어든다. 내추럴의 매력 앞에서는 누구나 마음의 빗장을 열고 저항할 수 없는 기쁨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9. 능란한 외교가, 차머형
1870년대 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매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 앨버트 공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는 깊은 슬픔에 사로잡혔다. 더욱이 그녀는 앨버트 공의 조언에 의지해 모든 결정을 해왔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컸다. 그녀는 복잡한 정치적 논의와 정책 결정에 염증을 느끼게 되어 갈수록 공개석상에 나서기를 꺼렸다. 그 결과 영국의 군주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 보수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당수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수상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성격이나 태도가 전혀 달랐다. 유대인이었던 디즈레일리는 영국 사람이 보기에 검은 피부에 이국적인 용모를 지니고 있었고 젊었을 때부터 댄디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화려한 옷을 즐겨 입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반면 여왕은 고집이 세고 완고했으며, 태도도 딱딱하고 취향도 소박했다.
그는 주변의 조언을 무시한 채 무릎을 꿇고 여왕의 한 쪽 손에 입을 맞추며, "여왕 폐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라고 서약했다. 그는 여왕이 무안해질 정도로 온갖 아첨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여왕은 이상하게도 그런 그를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미소로 대해 주었다. 그가 여왕에게 보고하는 것도 역대 수상과 달랐다. 그는 “천사와 같은 여왕이시여.”라는 표현을 하는가 하면, 온갖 상스러운 말로 영국 왕실의 적들을 비난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디즈레일리의 경박하고 형식을 벗어난 보고서는 어떻게 보면 거의 불경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오히려 여왕은 그에게 매료되었다.
여왕을 처음 접견했을 때 디즈레일리는 자기가 쓴 소설을 그녀에게 선물했고, 여왕도 답례로 자신이 쓴 책 한 권을 그에게 주었다. 그때부터 디즈레일리는 여왕과 서신을 주고받거나 대화를 나눌 때면 으레 “여왕 폐하와 저 같은 작가들은 말이죠.”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여왕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부심을 느꼈다. 빅토리아 여왕은 결국 디즈레일리의 마술에 걸려들었다. 여왕은 디즈레일리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찬성했다. 그녀는 자기 앞에서 그가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을 허락했다. 전에 없던 특권이었다. 두 사람은 매년 2월 발렌타인 데이 때마다 선물을 주고받았다. 한번은 그가 독일의 아우구스타 왕비에게 약간의 관심을 보이자 여왕은 질투심에 불타올랐다. 왕궁의 대신들은 그토록 완고하고 딱딱하던 여왕이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행동하자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디즈레일리는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았다. 그는 여왕의 완고하고 절제된 외모 뒤에는 남성을 열망하는 여성적인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의 억눌린 여성적 본능을 발산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 주었다. 그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강력한 유혹의 방법이다. 자신의 견해와 취향에 동조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사람은 없다. 차머는 겉으로 보기에 상대보다 더 약해 보이지만 상대의 저항 능력을 빼앗음으로써 결국에는 더 강한 힘을 갖게 된다. 차머는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능숙하다. 그들의 방법은 단순하다. 즉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차머는 상대방의 마음과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기분에 맞추어 준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개 차머와 마주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한껏 고양되게 마련이다. 차머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약점, 곧 허영심과 자긍심을 겨냥하기 때문에 놀라운 유혹의 힘을 발휘한다.
반(反)유혹자
유혹자는 관심의 초점을 상대방에게 둔다. 하지만 반유혹자는 그와는 정반대이다. 조급한 성격의 소유자, 아첨꾼, 도덕주의자, 구두쇠, 소심한 사람, 수다쟁이, 과민한 사람, 속물 등으로 대변되는 반유혹자는 자기에게 매몰되어 있으며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따라서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한마디로 반유혹자는 사람들을 멀리 쫓아버리는 존재이다. 반유혹자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반유혹자는 상대를 귀찮게 만들고, 자기 주장이 강하며, 말이 많으면서도 그 점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러한 반유혹자의 특성을 자신에게서 제거하는 한편,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유혹의 대상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유혹의 대상(희생자)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유혹을 하려면 먼저 상대가 어떤 유형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에서 무엇인가를 놓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놓쳤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모험이 될 수도 있고, 관심이 될 수도 있고, 로맨스가 될 수도 있고, 외설스러운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그 부분이 무엇이냐에 따라 희생자들은 여러 유형으로 나뉜다. 희생자의 유형을 파악하고 나면 유혹에 필요한 요소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 유혹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외모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모습을 파악하라. 소심한 사람이 알고 보면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을 숨기고 있기도 하고, 얌전해 보이는 사람이 탈선의 스릴을 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가 됐든 자기와 비슷한 유형은 유혹하지 않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