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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고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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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고승덕

바람과 비 그리고 봄의 참을성

기사입력 2010-03-25 17: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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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고승덕
[산업일보]
“물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 가장 내밀하게 진실한 증거, 그것은 목마름이다.”목마름, 그 원초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람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다린다. 그러나 그 노력과 기다림이란 쉬이 이겨낼 수 없는 고달픔이 따라오기 마련. 기다림의 가치와 소소함의 미학을 아는 사람, 국회의원 고승덕을 만나봤다.

국회의원 고승덕이 변호사로서 1990년대 중·후반 브라운관에 등장했을 때, 그것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법조인이 텔레비전에 등장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의 모습이 일반적으로 생각한 변호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리석은 편견이란 상투적이다 못해 낯부끄럽기까지 한데, 변호사는 무릇 공격적인 눈빛과 빠르고 딱딱한 말씨, 칼날 같은 행동의 종족들이라는 것이었다. 반듯한 이미지는 들어맞았지만 푸근한 웃음과 나긋한 말씨는 변호사에 대한 그 얄팍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쉰하나,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고 15년, 그는 조금은 다른 문을 두드리고 익숙한 풍경 대신 다른 그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극과 치유 사이…

“어릴 때부터 주관이 강했어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아이는 아니었죠. 처음 법대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강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시에 합격하는 일이란 하늘의 별따기 보다도 어려웠던 때였어요. 한 해에 몇 십 명밖에는 합격시키지 않았으니까. 사실 제가 생각해도 제가 고시에 합격할 것 같진 않았어요.(웃음)”

고 의원의 아버지는 10년을 군의관으로 일했던 가난한 의사였다. 남들은 의사 집안이라 그가 부유하게 컸을 거라 으레 생각하지만 그다지 여유 있는 가정형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고. 평생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내지도 못한 채 늘 일만 하는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아버지, 그는 의대를 권하는 부모님의 말씀에 못된 청개구리처럼 의대만은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스무 살이잖아요.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지고 몸과 마음이 느슨한 끈처럼 풀어지는, 여물지 않은 사랑에 지독하게 아파보기도 하는 그런 때가 스무 살이잖아요.”

암울한 정치 상황, 그러나 흙빛세상이라고 해서 스무 살의 낭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독한 외모 콤플렉스를 가졌던 청춘(靑春), 매몰찬 퇴짜로 먹먹한 가슴을 움켜줘야 했던 청춘(靑春). 그 청춘은 콤플렉스와 퇴짜를 자극제 삼아 그 모든 에너지를 책에 쏟아 붓는다. 그에게 공부란 유일한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고 의원은 최연소 사법고시 패스, 외무고등고시 차석, 행정고등고시 수석의 3관왕이란 진기록을 세운다. 이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유명세의 원천이기도 하며 30년이 지난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전설이기도 하다.

그라고 해서 공부가 즐겁고 재밌었겠나. 적막한 밤, 언제 무엇이 될지 알길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홀로 책장을 넘기는 일상은 더없이 고독했고 힘겨웠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기만 한다면 현재의 많은 것들을 놓치고 현재 그 자체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현재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미래도 꿈꿀 수 없는 법. 그것을 누구 보다 잘 알았던 청춘 고승덕은 아이 같은 열망으로, 치유란 이름으로, 힘겨운 그 때를 이겨냈다.

국회의원 고승덕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 로마서 8장 28절

“한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기로 결심하고 미국 생활을 정리했어요. 그 때가 1992년도였는데, 미국에서 들어 온지도 얼마 안 됐고, 그러다 보니 인지도가 없어서 사건의뢰가 들어오질 않았어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막막할 정도로 사무실 사정이 힘들었고 그 후로 2년간 그야말로 강마른 보릿고개처럼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서울대 법대, 예일대, 하버드대, 콜롬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한 삼십대 중반의 ‘대한민국 변호사’ 통장에 오백만 원이 채 없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전혀 움츠려들지 않았다. 삶이란 맞서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고 의원은 내색 않고 차분히 사회활동에 전념했다. 사회활동으로 얻은 인간관계는 2년 후, 그의 자산이 됐고 새로운 기회로 돌아왔다.

고시 공부 시절부터 고 의원에게 굳건한 버팀목으로 자리한 신앙,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수많은 역경과 시련은 모두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을 얻도록 돕기 위한 것이란 의미다. 불행이 곧 불행은 아닌 것이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만 더 버텨내며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연한 기회란 누구에게나 찾아오거든요. 대신에 그 기회를 하릴 없이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나 자신이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승소율 높은 변호사, 네 권의 경제 저서, 에세이, 방송활동 그리고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서의 지금에까지 고 의원을 있게 한 것은 학벌도 영민함도 아니다. 세상을 대하는 곧은 믿음과 준비된 자세다.

또 다른 불확실성의 연속

“저는 평생 자만심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남들이 볼 때 결과적으로는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때때로 그런 오해를 할지도 모르나, 하나를 이루기 위해 전 너무나 초라하고 고된 시간들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믿는 구석이 전혀 없는 제가 자만심이라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확실한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자만심’이란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이라고 했다. 일정한 수입을 매달 받게 된 것이 처음이라는 고 의원은 아이들 베갯머리 이야기 같은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국회의원도 4년 계약직이라 이것도 확실한 직업은 아닌 셈이니, 그의 삶은 그의 말처럼 늘 새로운 불확실과 마주하는 연속임에 틀림없다.

나이 오십이 되고 보니, 이젠 자신이 무언가 가지길 위해 아등바등 사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주기 위해’ 살고 싶어졌다. 세상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그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들 각오를 다지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서민들의 대변인으로서 고 의원은 현재 ‘빈곤 없는 나라 만드는 특별위원회’ 간사로 100여 명과 함께 2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법을 해석하기만 하던 과거에서 법을 만들 수 있게 된 지금에 더 없는 행복과 감사를 느끼는 고 의원이,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는 좀 더 의미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새 국면을 마주하게 됐을 때가 떠오른다. 촉망받는 인재가 변질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와 그라면 낡아 빠진 정치에 새 기운을 불어넣겠구나 하는 기대들이 그를 뒤따랐다. 그 결과가 어디로 기울지 감히 상상이 가는가. 적어도 우리 모두가 좀 더 나은 삶을 열망하는 데에, 그의 나머지 삶은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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