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한국 사회가 외모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체감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산업 분야에서도 외모지상주의가 존재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최근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저장장치), 드론 등은 정체된 산업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세계 산업을 선도해나갈 신산업 분야로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드론이 일반 대중에게까지 큰 관심을 받자, 주요 산업전시회에서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드론전을 신설하고 있다.
드론 전시회를 가보면, 확실히 다른 분야보다 많은 참관객들이 몰려있다. 다들 드론을 직접 시연해보기도 하고, 구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전시회를 취재하면서 국내 드론 산업의 속내가 겉처럼 화려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국내에서 마땅한 드론 전문기업을 발굴해 유치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나마 국내에서 가장 규모와 명성이 있는 드론 기업도 사실상 해외 유명 기업의 드론을 유통하는 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고, 최근에야 그 경험을 토대로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에너지 문제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에너지저장장치 분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과 미디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것은 드론과 ESS의 몸체, 즉 하드웨어이지,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이게 바로 시장의 거품이며, 산업계에도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다는 말이다.
국내 시장이 하드웨어 개발에만 치우쳐 있는 원인이 뭘까. 바로 스타트업 기업의 육성이 해외만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미진이다. 이 소프트웨어 개발은 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스타트업의 경쟁에 의해 촉발된다.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면 되지 않냐고?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 구조자체가 대기업 의존성이 지나치게 크다. 기본적으로 아이디어 구현을 위해서 자본이 필요한 제조업이나 개발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ESS와 드론은 빅데이터, ICT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폭넓은 산업분야에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와 빅데이터를 융합하는 EMS(Energy Management System) 개발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국내 ESS 시장은 하드웨어 개발에 치우쳐 있다. 여기에서 저가공세가 나온다. 이는 EMS와 같은 ICT 융합기술이나 소프트웨어에 대한 연구를 저해하는 요소로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남들이 먼저 앞서가고 나면 뒤따라가는 안일한 태도도 문제다. 지금 세계 산업은 패스트팔로어가 아닌 퍼스트무버, 퍼스트 펭귄을 원한다.
세계 ESS 시장에서 4위를 차지한 (주)코캄의 홍인관 이사는 “전기차의 수요가 거의 없던 1999년도부터 리튬 배터리를 개발해 공급하기 시작했다. 2009년 미국과 독일을 중심을 ESS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 국내에서 ESS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한참 시장을 앞서간 셈”이라며 “그때는 주변에서 무모하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아마, 돈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문제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이익을 쫓는데 만 급급해서는 결코 시장의 전망을 예측할 수 없고, 일명 ‘예언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 조성과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갖춘 스타트업, 중소기업들을 장려하는 정부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기술력은 기본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부터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자본의’ 논리에만 기대서는 안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