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글로벌 제조 산업이 정밀성과 민첩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시대, 지멘스는 이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을까. EMO 하노버2025에서 공개된 지멘스의 가공 자동화 비전이 한국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에서 다시 조명됐다.
디지털 중심 제조 혁신, 그 중심에 선 ‘지멘스’
2025년 EMO 하노버 전시회는 단순한 가공기계의 경연장이 아니었다. 디지털 트윈, 인공지능, 클라우드 기반 통합 플랫폼 등 차세대 제조 트렌드가 집약된 ‘디지털 제조의 미래’를 가늠하는 현장이었다. 지멘스는 이번 전시회에서 이러한 흐름을 이끄는 핵심 기업 중 하나로, ‘통합’과 ‘자동화’를 키워드로 내세우며 제조 현장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러한 발표의 배경과 실제 적용 전략을 보다 심층적으로 다루기 위해,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국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 사무실을 찾아 김지완 이사(OEM영업 부문 총괄)를 인터뷰했다. 현지 전시 부스를 통한 설명을 넘어, 기술 적용 맥락과 국내 시장 전략을 포괄적으로 언급했다.
“기계가 아닌 공정 전체를 디자인하라”
EMO 2025에서 지멘스가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한 CNC 컨트롤러나 가공 장비가 아닌, 로봇 기반 자동화 시스템, 3D 스캐너를 활용한 경로 자동 생성, 그리고 개방형 데이터 연합(Data Alliance)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전체의 디지털 전환’ 구상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지멘스는 ▲기계 선택부터 ▲공정 설계, ▲데이터 수집과 활용, ▲CNC 자동 프로그래밍, ▲로봇 기반 실행까지 전 주기를 하나의 디지털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구조를 강조했다. 김지완 이사는 이를 “디지털 제조 환경에서 더 이상 개별 장비가 아닌, ‘프로세스 전체’가 경쟁력의 본질이 되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략이 단지 유럽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시장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이사에 따르면, 지멘스는 로봇 기반 가공 솔루션을 국내 고객사들에게 제공하려고 준비 중이다. 특히 제조 현장의 특성을 반영해 소형화•모듈화된 셀 구조, 기존 장비와의 유연한 연동, 로컬 파트너와의 협력을 통한 적용성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그는 “지멘스가 강조하는 자동화 전략은 단지 기술적 솔루션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의 설계자 역할’을 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핵심 기술 ①: 3D 스캐너 + CNC 자동 프로그래밍 → 프로세스 단축
지난 EMO 2025에서 발표된 기술 중 주목할 만한 혁신은 3D 스캐너 기반의 자동 공정 생성 기술이다. 사용자가 해당 솔루션을 활용해 3D CAD 모델을 그 형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공 경로를 자동으로 생성하고, 이를 지멘스 CNC 컨트롤러와 연동해 사전 시뮬레이션부터 실행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 구조다.
김 이사는 “이 기술은 특히 소량 다품종 생산이 일반적인 한국의 중소 제조업에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편차가 컸던 경로 설계와 CAM 작업이 데이터 기반 자동화로 일원화되면서, 교육 및 설비 투자 부담도 줄일 수 있다.
핵심 기술 ②: 로봇 기반 가공 셀 → 유연성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
지멘스는 이번 전시회에서 CNC 기반 로봇 솔루션인 'Sinumerik Machine Tool Robot'을 소개하면서 새롭게 파트너십을 맺은 다노밧 (Danobat)과의 협력을 통해 구현한 로봇 기반 가공 셀을 시연했다. 이는 공작기계의 정확성과 안정성에 6축 로봇의 민첩성과 유연성을 결합해 항공우주, 에너지 그리고 자동차 산업과 같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산업에 새로운 제조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김 이사는 “기존 공작기계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닌 Hybrid 생산 시스템 및 자동화 제조에 최적화된 유연하고 정밀도를 갖춘 로봇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설명했다.
핵심 전략: Data Alliance
지멘스는 미래 제조업을 위한 생성형AI어플리케이션 개발에 사용될 엔지니어링, 제조 및 기계 데이터 교환을 위해 여러 주요 제조업체와 연구소 등과 같이 협력을 위한 ‘Data Alliance’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제조 산업의 효율성과 혁신 주기를 크게 향상시키고자 한다. 공작기계 분야에서는 이를 통해 가공 프로그램 자동생성이라는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연동 가능한 개방형 생태계를 지향하는 부분도 빠질 수가 없는데, 김 이사는 “한국 시장처럼 복잡하고 커스터마이징 요구가 많은 환경에서는 폐쇄형 시스템보다는 개방형, 모듈형, 맞춤형 전략이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기술이 한국 제조 현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려면 단지 장비 도입만으로는 부족하다. 김지완 이사는 “자동화는 오히려 ‘사람의 역할’을 더 전략적으로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지멘스는 국내 고객 대상의 ▲CNC 자동화 설계 교육, ▲디지털 트윈 기반 공정 시뮬레이션 트레이닝등을 운영 중에 있고 앞으로 나아가서는 ▲로봇 기반 가공 솔루션 등도 협력을 하려고 계획 중에 있다.
한국 제조업, ‘시스템 설계자’로 거듭날 때
이번 한국지멘스 본사에서의 인터뷰는 단순한 기술 소개를 넘어, EMO 2025에서 제시된 비전이 한국 산업에서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자동화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더 전략적인 위치로 끌어올리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장에서 선보였던 미래는 이미 현재 진행형이며 그 구현의 방식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지멘스가 그리는 그림은 거대하지만, 이를 한국 시장에 맞게 구현해내는 방식은 현장 중심, 설계 중심, 사람 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