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한 현재, 산업 간 ‘융합’이 부상하고 있다. 이에 기업 간 합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몇몇 반도체 기업은 지난 2년 간 대규모 합병 사례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러한 상황에 많은 전문가들은 반도체 업계는 몇 개의 기업으로 통합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 설계 자동화(EDA) 소프트웨어 기업 ‘멘토, 지멘스 비즈니스(Mentor, A Siemens Business, 이하 멘토)’는 이와는 다소 다른 견해를 보였다.
31일, 서울을 찾은 멘토의 글로벌 CEO이자 회장, 월든 C 라인스(Walden C. Rhines)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EDA 분야 기술 행사 ‘Mentor Forum 2017’ 현장에서 그룹인터뷰를 진행했다.
2010년에서 2015년까지 반도체 업계에서 이뤄진 일반적인 인수합병 발표 건수는 23건에 이른다. 또한, 인수합병 활동 규모는 점차 증가해 2016년에는 1천160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 동향에 월든 C 라인스 회장은 “최근 반도체 산업에서 이뤄지고 있는 구조적 변화는 규모를 키우기 위한 통합이 아니라 전문화를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인수와 매각을 이용해 전문화를 도모한 기업들은 대개 영업 이익률이 증가했지만 증가율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또한, “오직 상위 다섯 개 기업들 중 한 회사만이 인수로 인해 시장 점유율에 있어 증가를 보였으며 나머지 기업들은 인수가 아닌 유기적인 성장을 통해 시장점유율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윌든 회장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인수합병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인텔은 맥아피, 윈드리버, 인피니언 모빌, 알테라 등의 기업을 인수하며 적극적인 인수 활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이 인수합병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 역시 10%의 시장점유율에서 12%로 성장했지만 이러한 성장의 요인은 인수합병이 아닌 메모리 비즈니스 성장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퀄컴 역시 인수 활동을 펼쳤으나 시장점유율이나 매출에 큰 영향이 없었고 무선 시장 산업의 흥망성쇠와 흐름을 같이 했다고 소개했다. 윌든 회장은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인수합병이 전반적인 시장점유율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반면, 현재 가장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상위 업체들의 경우, 아날로그, 메모리, 파운드리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윌든 회장은 “이는 기업이 집중하기로 결정한 부문들에 주력하고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윌든 회장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를 사례로 들며, 1990년대는 수익성이 그리 높지 않았으나, 전문화를 위해 메모리 부분이나 제조 프로덕트 라인을 매각하고 아날로그 부문에 집중한 결과, 종전에 비해 40~50% 가량의 높은 수익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윌든 회장은 “실제로 반도체 업계의 인수는 재무 레버리지(financial leverage) 즉, 영업이익 개선을 위한 것이지 규모의 경제를 위해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한 뒤, “현재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R&D 지출 규모가 성장하고 있으며 과거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 보아, 소수의 대기업에 의해 반도체 산업이 통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향후 반도체 산업계를 내다봤다.
Q 지난해부터 이어진 메모리 시장의 강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지
지난 해 메모리 시장의 강세는 공급의 압박이 있을 정도로 굉장한 수준이었다. 이에 메모리 업계는 수용 능력(capacity)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현재 전반적으로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성장하면서 반도체에서 메모리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유지될 것으로 보이며 비중 또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Q 지멘스와 멘토그래픽스의 인수합병으로 얻고자 하는 바는?
지멘스와 멘토그래픽스가 인수합병을 진행한 목적은 ‘비용 절감’보다는 ‘투자 증가’에 있다. 현재 멘토의 수익을 가속화‧증대화하기 위해 지멘스 소프트웨어의 설계부터 제조 지원에 이르기까지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투자를 강화할 수 있는 뚜렷한 전략을 진행할 예정이다.
Q 기업이 인수합병을 할 때 고려해야할 점이 있다면?
기업의 비즈니스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점, 타 기업 문화와의 융합, 인수합병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장점, 업계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점 등 여러 요소가 고려돼야 한다.
멘토그래픽스와 지멘스 역시 아직까지는 독립적인 비즈니스 운영을 해 오고 있지만, 천천히 신중하게 인수합병을 진행해 왔으며, 현재 양사는 법무 분야에 한정해 통합된 상태다. 향후 1~2년 간 통합을 통해 성장이 가속화될 수 있는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인수합병이 이뤄질 예정이다.
Q 때때로 기업의 인수합병이 마이너스 효과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
두 기업이 합병했을 시, 세 개의 기업이 만난 것과 같은 결과를 내게 되는 경우와 같이 시너지가 발생하는 점도 분명히 있지만, 비즈니스가 중복될 경우에는 손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요소를 고려해 합당하게 진행된 인수합병이라면 손실은 빠른 시간 내로 회복돼 손실 이상의 성장을 거두기도 한다. 결국에는 인수합병으로 인해 동등하거나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를 위해서는 이미 기존 기업에 강점이 있는 분야, 수익성이 있고 성장이 진행되고 있는 분야와 관련된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인수합병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기업의 단순 다각화를 위한 인수합병은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