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혼수로 가전제품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 디지털프라자에 방문한 김 씨는 직원으로부터 “평소에 집에서 요리는 얼마나 하는지”, “빨래는 매일 또는 몰아서 하는지” 등의 질문을 들었다. 선호하는 제품 용량, 전력 등급 등을 묻고 따지던 이전의 풍경과 사뭇 달랐다.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차경진 교수는 서울시립대학교 빅데이터혁신융합대학사업단에서 주최한 ‘2023학년도 BIG DATA 미래산업 트렌드 기업연계 세미나’에서 ‘데이터 기반 고객경험혁신’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진행하며 위와 같은 ‘고객중심의 데이터 활용’ 사례를 들었다.
그는 빌게이츠가 ‘앞으로 ‘뱅킹’은 필요한데, ‘뱅크’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일화를 소개하며 “점차 대부분의 오프라인 서비스가 디지털 세계로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전은 어떨까? 음식을 저장하고 빨래를 해야 하니 디지털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이제는 신선한 재료를 아침마다 배달받아 볼 수 있고, 세탁 구독 서비스로 저녁에 수거해서 다음 날 아침 가져다주니 냉장고와 세탁기·건조기의 필요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밝혔다.
차 교수는 “가전시장이 점차 어려워지는 시대상에 맞춰 기능적인 요소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제품과 서비스의 새로운 의미를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도미노피자의 자율주행로봇 배달서비스를 소개했다. 도미노피자는 위기 극복 방안으로 ‘디지털’에 앞서 ‘고객’에 주목했다. 고객들이 피자를 주문하는 이유는, 요리가 귀찮은 순간에 빠르게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고 ‘제로클릭’ 서비스를 출시한 것이다. 머신러닝, 데이터히스토리 등의 알고리즘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의 도미노피자 이용 기록으로 추천 제품을 이전 결제 정보로 자동 주문해 ‘아무것도 누르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다.
또, 도미노피자의 배달로봇은 피자를 전달한 뒤 고객의 아이들과 잠시 놀아준 뒤 복귀한다. 대부분 배달로봇 도입 이유를 ‘효율적인 배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도미노피자는 고객들이 피자를 파티 등 ‘즐거움’을 위해 주문한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이 때문에 고객들은 기꺼이 추가요금을 지불해 로봇 서비스를 이용하고. 도미노피자는 혁신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할지 전략 있어야
차경진 교수는 “단순히 ‘데이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고객의 맥락’에서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시도도 전했다. 2018년부터 양 사는 가전에 와이파이 센서를 탑재했다. 그러나, 컨설팅 결과 클라우드 비용이 아깝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수집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전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 교수는 “사실 IoT 센서로 고객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며 “다변화된 고객의 맥락을 알기 위해, 삼성전자의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좋은 질문’을 하는 것으로 매뉴얼을 바꿨다”라고 설명했다. 기사 처음에 소개했듯,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묻고 그에 맞는 제품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차경진 교수는 “마케팅에서는 고객의 가치에 ‘스펙트럼’이 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가령, 똑같은 기능과 스펙의 공기청정기가 한국 제품은 150만 원, 샤오미 제품은 50만 원이라면 과거에는 품질을 기준으로 국산을 선택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품질 때문에 가격을 3배 이상 받을 수 있었던 시대가 지났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재작년부터 ‘프리미엄’에 공들였고, LG전자는 33조라는 사상 최대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작년 매출은 시원찮았고,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프리미엄 시장의 확장성이 크지 않다는 것에 있다. 또, 당시 매출의 원동력은 ‘코로나19 특수’로 소비자들의 시선이 집 안의 인테리어, 가전을 주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상 가전을 바꾸는 시기가 10년으로 당분간 가전을 구입할 일은 적다는 해설이다.
이 때문에 양 사는 고객경험부서를 사장실 직속으로 신설했다. 다른 전자회사에는 없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가령, 아기가 있는 가정을 타깃으로 한 ‘슬립케어’ 솔루션이다. 온·습도 등에 쉽게 탈이 날 수 있는 아기를 돌보느라 선잠을 잘 수밖에 없는 부모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잠에 들라는 취지다. 가습기, 공기청정기, 에어컨, IoT가 탑재된 아기 침대를 연동하고, 아기가 깊이 잘 수 있는 환경을 24시간 알맞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차 교수는 “이 솔루션으로 사계절을 보낸 가정은 쉽게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꿀 수 없다”라며 “이미 학습이 끝난 상황에서 한 가전을 바꿔야 한다면 결국은 동일 브랜드의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게 될 것, 그래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데이터 기반의 구매 경험의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하며 과거에 비해 엄청난 데이터가 수집되고 있다.”라며 “그러나 오히려 의사결정 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사람들도 있다.”라고 언급했다. 데이터를 무작정 쌓다 보니 불필요한 데이터도 많아졌고, 이를 처리하고 가공하는 너무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클라우드 비용을 줄여달라는 컨설팅 의뢰에 오히려 새로운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라고 언급한 차경진 교수는 “빅데이터의 성공은 세분화된 영역을 수량화할 때 이뤄진다.”라며 “빅데이터에만 의존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걸 다 안다는 착각에 빠져있을 동안 무언가를 놓칠 확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차 교수는 이어 생성형 AI를 활용해 이커머스 검색을 편리하게 하고, 스마트TV의 추천 콘텐츠에 관심을 끌 만한 문구를 만드는 등의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고객 경험이란, 고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그들이 끌릴만한 문화적인 세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데이터 결합을 통해 새로운 고객 가치와 경험의 시나리오를 기업들이 고민하는 추세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