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위기론이 지속되는 한국 배터리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산업연구원(KIET)가 최근 발표한 ‘K-배터리, 위기인가 전환기인가: ESS를 중심으로 본 새로운 성장축의 모색’ 보고서는 현재 국내 배터리산업 위기의 원인을 전기차 시장의 일시적 성장 둔화(Chasm)가 아니라, 주력시장 및 주력 제품의 부진이 구조화된 탓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LG에너솔루션과 삼성SDI, 포스코퓨처엠의 2025년 매출은 전년보다 각각 7.6%, 20%, 20.6%씩 줄었다. 올해 1분기 영업 손실액은 각각 2천78억 원, 1천556억 원, 11억 원에 달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집계로는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30% 늘었음에도 국내 주요 기업들의 부진은 이어진 셈이다.
원인은 높은 미국 시장 의존도와 주력 제품인 삼원계(NCM) 배터리의 부진이 꼽혔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내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면서, 최근 2~3년간 미국 시장에 집중해 온 한국 배터리 기업의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는 것이다.
또한 유럽 시장에서는 보조금에 힘입어 중저가형 전기차 수요가 반등했지만,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의 주력 제품 LFP 배터리가 한국 NCM 배터리의 자리를 차지했다. 유럽 내 한국 배터리 기업의 합산 점유율은 2023년 55%에서 2025년 35%로 급감했으며, 같은 기간 중국기업들의 점유율은 42%에서 61%로 상승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보고서는 심화되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 한국 배터리 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탈탄소화와 AX(인공지능 전환)의 핵심 인프라이자, 미국 중심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대중국 경쟁 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ESS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위기 심화에 따라 에너지 안보 강화 필요성이 커지면서 재생에너지의 수요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변동하는 간헐성이 한계로 지적됨에 따라, 잉여전력을 저장했다가 초과수요 시 전력을 공급하는 ESS 시장도 급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AI 데이터센터의 무정전 전원 장치(UPS)도 핵심 성장동력으로 주목된다.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재편 움직임도 기회 요인으로 짚었다. 미국은 관세 부과,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요건 강화, 연방 조달 제한 등 중국산 제품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에 미국 현지 생산 기반과 탈중국 공급망을 구축한 한국 기업의 상대적 수혜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같은 기회를 실질적 성과로 연결하려면 정부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배터리 소재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내생산세액공제 도입 ▲주요국 산업·통상 정책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 강화 ▲LFP 배터리와 PCS·EMS 등 ESS 핵심 시스템 기술 개발 지원 확대 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