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포스트 우즈로 거론된 선수는 한둘이 아니다. 아마추어 시절 걸출한 성적으로 세간의 이목을 모으고서 프로데뷔에 성공했다면, 열이면 열 포스트 우즈란 소리를 듣는다. 20대 초·중반, 포스트 우즈로 거론된 바 있는 많은 선수들의 공통점은? PGA에서 ‘이름값’은 하고 있지만 우즈의 명성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다. 앤서니 김, 그 또한 이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신화로 세계를 긴장시킬 것인가.
2007년까지만 해도 앤서니 김(24·나이키골프)은 평범한 유망주의 길을 걷는 듯했다. 2006년 8월 프로 전향 후 그해 12월 Q스쿨에서 공동 13위에 오르며 PGA(미국골프협회) 풀시드권을 확보했지만, 그에게 프로 무대의 벽은 높고 단단했다.
26개의 대회에 출전했지만 우승은커녕 컷탈락만 여섯 번을 기록했다. 10위권 내에 몇 차례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경기력의 기복이 심했다. 앤서니 김은 2007년의 치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2008 시즌을 준비했다. 어울려 파티하기를 좋아하던 ‘스물두 살’의 앤서니 김은 약속을 줄이고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조차 떨어져나갈 정도로 연습량을 늘렸다.
새롭게 무장한 앤서니 김이 맞은 지난 시즌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시즌 첫 대회였던 밥 호프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 3위에 오르며 좋은 출발을 보였던 앤서니 김은 4월, 버라이즌 헤리티지에서 준우승 했고, 뒤이은 와코비아 챔피언십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첫 우승컵에 키스를 했다. 당시 기록한 16언더파 272타는 ‘디펜딩 챔피언’인 타이거 우즈(34·미국)가 세운 기록을 훌쩍 넘긴 기록이었다.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라이언이 뜨는 결정적 이유
앤서니 김은 단순히 아마추어 시절 주목 받았던 두 차례의 투어 우승자란 이유로 포스트 우즈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못 말리는 승부욕을 가진 이 어린 선수는 178cm의 크지 않은 키에서 발휘되는 300야드가 훌쩍 넘는 거짓말같은 비거리에 일반 장타자 보다 우수한 경기력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타이거 우즈의 뒤를 잇는 차세대 스타로 인정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2008년 라이더컵에서 종횡무진 그린을 압도했던 플레이였다. 지난해 4월 와코비아 챔피언십과 7월의 AT&T 내셔널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미국과 유럽의 골프대항전인 제37회 라이더컵 대회에 참가하게 된 앤서니 김은 미국 승리의 히어로였다. 아마추어 때 미국과 유럽 간 아마추어 대항전인 워커컵에 출전한 바 있는 앤서니 김은 라이더컵에서 사자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특히 마지막 날 싱글매치플레이에서 한때 포스트 우즈로 불리기도 했던 세르히오 가르시아(29·스페인)를 상대로 4홀 남기고 5홀 차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우승 트로피를 미국에게 안겨 주었다. 이날 미국은 유럽을 상대로 9년 만의 감격적인 우승을 맛봤다. 당시를 두고 앤서니 김이 미국 승리의 일등공신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 그는 라이더컵의 멤버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무릎 부상으로 불참하는 타이거 우즈 대신 선발된 것. 우즈의 빈자리를 확실히 메웠던 이 젊은 신인은, 뒤이은 PGA 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에서 그가 타이거 우즈의 뒤를 이을 새로운 영웅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최고의 선수 30명만이 출전, 골프의 올스타전으로 불리는 이 대회에서 첫 라운드 4타차 단독 선주로 뛰어오른 그는, 이튿날까지 선두를 지키다 셋째 날 세르히오 가르시아에게 선두를 내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날 세르히오 가르시아, 카밀로 비제가스(28·콜롬비아) 등 20대의 젊은 영웅들과 대선배 필 미켈슨(37·미국)과의 흥미진진한 대접전을 벌이며 충분히 그의 역량을 과시했다. 그로써 올 시즌 세계가 그의 행보를 주목할 만한 이유는 충분히 채워졌다.
부상이야? 아니면 뻥튀기된 실력이야?
2009 시즌이 시작되고 약 6개월 동안 부진한 성적이 계속되며 포스트 타이거 우즈로서의 앤서니 김은 ‘과대평가됐다’는 의견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시즌 초 어깨 부상을 당한 이후, 부진의 벽을 부수지 못하던 앤서니 김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감기 증세가 더해져 결국 PGA 투어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의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올 1월 12일 막을 내린 시즌 개막전 메르세데츠-벤츠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에 오르며 힘찬 스타트를 끊었던 앤서니 김은 2주 뒤 열린 밥호프 크라이슬러 클래식을 앞두고 연습 도중 어깨 부상을 입으며 대회가 열리기 직전 출전을 포기했었다. 앤서니 김은 이후에도 1주일 동안 휴식을 취한 뒤 FBR 오픈에 시즌 두 번째 출사표를 던졌지만 예선 탈락했고, 이어 참가한 2월 WGC(월드골프챔피언십) 액센츄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는 2회전에서 탈락했으며 3월 CA챔피언십에서는 58위에 머무는 등 주춤한 행보를 보였다. 세계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4월 마스터스에서는 2언더파 286타로 공동 20위에 올라 체면치레는 했지만, 그를 둘러싼 재평가의 말들은 수그려들지 않았다.
앤서니 김의 부진에는 부상이 상당부분 이유로 차지하지만, 게임 능력을 들여다봤을 때 숏게임 능력이 떨어지면서 스코어를 지키지 못한다는 점이 취약점으로 드러난 것이 사실이다. 앤서니 김이 버디를 잡아내는 능력은 PGA투어 3위(4.50개)로 여전히 막강하다. 하지만 파온에 실패했을 때 파 이상의 스코어를 작성할 수 있는 스크램블링 능력은 지난해 45위(59.32%)에서 올해는 159위(54.23%)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앤서니 김은 실제로 지난 5월 11일 마친 ‘제5의 메이저대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는 2라운드 13번 홀(파3)에서 더블파까지 작성했는가 하면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는 더블보기를 범하며 ‘컷 오프’됐다. 또한 같은 달 뒤이어 참가한, HP 바이런넬슨 챔피언십 2라운드 12번 홀(파4)에서는 러프를 헤매다 순식간에 3타를 까먹기도 했다. 앤서니 김의 부진한 성적이 위기관리능력에서 시작 된다는 이야기다. 위기에서 비롯되는 집중력의 하락, 여기에서 나오는 실수를 줄여야만 정상에 더 가까워 질 것이다.
타이거 잡는 ‘라이언’, 재시동을 걸다
실제로 최근 앤서니 김의 대회 성적은 눈에 띄게 상승했다. 지난 5월에 출전했던 크라운 플라자 인비테이셔널에서 공동 51위를 했지만, 6월 개최된 세계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US 오픈에서 공동 16위로 뛰어 올랐고 같은 달 28일 개최된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에서는 공동 1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신들린 퍼팅으로 동반 플레이어였던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기선제압 했던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1라운드는, 2007년의 앤서니 김을 보는 듯 인상 깊은 플레이를 펼쳤다.
왼쪽 엄지손가락 부상이 완쾌돼 US 오픈 때부터 예전 경기력을 되찾아가고 있던 앤서니 김은, 지난달 AT&T 내셔널을 앞두고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대회, 지난달 6일(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콩그레셔널 골프장(파70·7,255야드)에서 마친 AT&T 내셔널에서 앤서니 김은 3위로 경기를 마쳤다. 이후, 앤서니 김의 경기력이 완벽히 돌아왔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첫 날,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잡으며 단독 선두로 나서더니, 3라운드 타이거 우즈와 공동 선두를 이어가며 ‘라이언’이 돌아왔음을 여과 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타이거 우즈는 앤서니 김에게 경기 후, 계속 열심히 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앤서니 김은 꼬마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타이거 우즈와의 경기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3년 전 PGA 무대에 등장하며 “호랑이 잡는 사자가 되겠다.” 말하던 이 당돌한 선수가 꿈에 그리던 우즈와 나란히 걷는 영상을 보며 언젠가 그린의 정상에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모습을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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