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내연기관 차량을 운전하면 교수형에 처한다.
프랑스 SF소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파라다이스> 중, <환경 파괴범은 모두 교수형>이라는 소설의 내용이다.
작품 속 지구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극심한 재난을 겪는다. 북극 상공 오존층에 구멍이 뚫려 피부암 발병이 증가하고, 북극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쓰나미가 발생한다. 그 결과, 해안 지역에서는 수백만 명이 사명하고, 일본 등 일부 지역은 해일에 삼켜지면서 사망자는 수천만에 이른다.
충격받은 인류는 UN사무총장으로 미국 생태주의 정당의 정치가를 선출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의 오염은 불가’라는 법령과 함께 ‘오염방지법’을 공포한다.
이 법은△자동차 운전 금지 △흡연금지 △석유 동력 모터 사용 금지 △가스 배출 공장 가동 금지 △연기를 내뿜는 것은 무엇이든 사용 금지 △전기 사용 금지 △붉은 고기 섭취 금지를 내용으로 한다. 오염방지법을 어긴 범법자, ‘환경파괴범’은 교수형에 처해진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기존의 공산품과 외형은 같으나 ‘반환경적이지 않게’ 생산하고 작동하는 제품을 개발한다. 자동차에는 나무를 만든 페달과 체인 변속장치가 들어간다. 식품 공장에서는 식물성 단백질 상품을 생산한다.
일상도 달라졌다. 엘리베이터는 운동선수들이 수동으로 도르래를 돌리고, 커피는 태양광 집광판에 달린 오목거울로 데운다. SNS나 소포는 새가 운반한다.
선풍기는 기계 안에 실린 다람쥐에게 해바라기를 주고 날개와 연결된 쳇바퀴를 돌리게 한다. 턴테이블은 쥐에게 치즈를 줘서 구동하고, 손목시계는 해시계로 대체됐다.
헬륨풍선 날개가 달린 비행기의 승객들은 비행시간 내내 좌석 앞에 달린 페달을 밟아 나선형 프로펠러를 움직여야 한다. 스튜어디스들은 에너지바와 음료를 지급하고 근육연고를 발라준다. 또, 교외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투석기가 실증연구를 거치고 있다.
이 작품은 ‘에코파시즘(Ecofascism)’에 물든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에코파시즘이란 지구,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상을 말한다. 전체주의적 생태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석유와 전기 없이도 선풍기를 사용하고 자동차, 비행기를 운행하는 이 세계 속 인류는 어떤 희생을 치렀을까?
환경 정책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
잠깐 현실을 돌아보면, 기후위기는 현재 우리에게 AI와 더불어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16일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도 기후위기가 핵심의제로 예고됐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기온이 1.45℃(도)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기상청의 ‘2023년 연 기후분석 결과’ 보도자료를 보면, 작년 전 지구 평균기온은 14.98℃로 산업화 이래 가장 높았다. 한국도 연평균 기온이 1.2℃ 높은 13.7℃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올해도 이상기후는 우려를 더하고 있다. 제주도의 매화가 한 달가량 일찍 피어났고, 강원도 등 지자체의 겨울축제도 이상고온으로 취소되고 있다. 북미에서는 한파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고, 남미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지구촌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과학자들의 경고는 다양해지고 있다. 환경 활동가들의 요구도 짙어진다. 상술한 소설 속 사무총장의 ‘초’급진적인 환경 정책은 이들의 주장과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환경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강력한 환경보호 대책이 기후위기의 속도를 늦추는 처방제가 될 수 있을까?
2019년 환경부가 대형마트의 자율포장대 운영을 중단시킨 적이 있다. 종량제 봉투나 장바구니를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차가웠다. 테이프의 사용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대형마트의 폐기물로 발생하는 종이상자가 각 세대까지 물건을 옮기는 수단으로 이미 재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었다.
같은 해, 온라인 쇼핑몰 마켓컬리는 친환경 배송을 표방하며 포장재를 종이 소재로 전환하는 ‘올페이퍼챌린지’를 선언했다. 환경부에서 자율포장대 운영을 중단하며 지적한 박스테이프를 종이테이프로 교체해서다.
2022년에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규제돼 종이빨대가 도입됐는데, 스타벅스 등 일부 브랜드의 품질문제, 종이빨대 생산에 생분해가 어려운 화학물질 포함과 같은 논란이 붉어졌다. 기존의 빨대 생산 업체들의 매출문제도 한몫 더했다.
1년 뒤, 정부는 다시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 사용을 제한하는 규제의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고 이번에는 종이빨대 업체들이 도산위기에 몰렸다.
이렇듯 충분한 고민과 의논을 거치지 않은 무조건적인 규제와 금지는 사회의 혼란만 가중시키기 쉽다.
한편, 일부 환경단체들은 ‘에코테러’를 감행하기도 한다. 유명관광지의 분수에 먹물을 뿌리고 예술작품에 페인트를 뿌린다. 공연이 진행 중인 무대에 올라 환경 보호를 설파하기도 하고, 동물보호 단체들은 식당에 침입해 증오 섞인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몇몇 환경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지구를 보호하고 대변한다’는 선민사상에 취해 과격한 시민운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모습은 생태주의가 파시즘으로 변질되는, 에코파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절차를 무시하고 반인간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환경 정책, 충분한 시간 필요해
다시 <환경 파괴범은 모두 교수형>을 들여다보자. 작품 속 세계는 나름의 대용품들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급진적이고 강압적으로 이뤄졌다. 환경오염법에 가장 크게 반발한 산유국의 통치자들은 UN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을 매수하고 변화를 주도한 사무총장의 암살을 시도했다. 사무총장은 최첨단 석궁으로 무장한 반오염군을 창설했고, 3년의 석유전쟁 끝에 산유국 통치자들을 처형했다.
다음으로 ‘자동차운전자협회’의 자동차 애호가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사무총장은 반오염경찰과 기마대를 조직했다. 반오염경찰은 반란군들을 붙잡아 교수형에 처했고, 모터 달린 차량은 모두 바닷속에 투척했다.
소, 양, 돼지의 방귀는 메탄가스의 원천이 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사무총장은 그들을 절멸시켜 버리기도 했다.
사무총장은 ‘지구를 망치는 극단적 사태를 피하기 위한 작은 희생’이라는 선언으로 사태를 정리했다. 수십만 생명의 목숨을 대가로 이룩한 ‘친’환경적인 세상인 셈이다.
CBS라디오<김종대의 뉴스업>에서 2021년 1월 22일 역사학자 공원국 작가,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홍수열 소장과 진행한 좌담에 따르면, 도시에서 사용되는 재생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태양광발전기가 농촌지역에 설치되며 농민들이 배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새들은 풍력발전기의 날개에 맞아 죽기도 한다.
홍수열 소장은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공원국 작가는 “환경을 소비하는 사람은 개개인들, 이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라 수요와 공급이 맞춰지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의견을 내놨다.
좌담을 진행한 연세대 객원교수는 “어떤 선한 목적에도 항상 악은 스며들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환경 보호는 인간의 종속과 직결되는 아주 중대한 문제다. 그렇기에, 환경 보호를 위해 ‘인간’을 빠트려서는 안 된다. 환경 보호를 위한 대책은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고민과 의논을 거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즉각적인 ‘효과’와 더불어, 사회구성원 간의 충분한 ‘이해와 존중’이 조화를 이룰 때 환경 보호의 목적인 ‘지속가능한’ 세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