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의 제어, 기능, 성능을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정의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oftware Defined Vehicle, SDV)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동차 산업 전반이 격변기에 들어섰다.
[SDV 리포트]는 재편되는 자동차 생태계의 변화, 글로벌 기술경쟁과 제도 대응 전략을 살펴 본다.
SDV는 단편적인 기술 트렌드가 아닌 자동차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핵심은 기능이 '구입 시점'에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를 통해 주행 성능, 연비, 자율주행 알고리즘, 사용자 UI 등이 지속적으로 개선된다.
SDV 구현에는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 클라우드 기반 아키텍처, AI 데이터 처리, 차량 간 통신(V2X) 기술이 모두 요구된다. 이에 따라 경쟁은 부품을 넘어 OS, 플랫폼, 생태계 주도권 확보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L3 상용화 본격 돌입 - 미국, 규제 완화로 전면전 선언
자본과 국가 주도라는 서로 다른 축을 중심으로 자율주행과 AI 기술에서 크게 앞선 미국과 중국은 이미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는 제품 차별화 경쟁이 전동화 성능에서 자율주행과 SDV 기술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최근 '상하이모터쇼로 본 중국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분석을 내놨다.
BYD와 지커, 리오토, 체리차 등 주요 업체들은 늦어도 내년까지 레벨3(L3) 자율주행차를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L3는 특정 조건에서 차가 스스로 운행하지만 시스템이 요청 시 운전자가 즉시 개입해야 하는 '조건부 자율주행' 단계다.
자동차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화웨이는 중국 최초의 L3 자율주행 시스템 상용화 솔루션으로 소개한 'ADS 4.0'를 발표하고 올해 내 고속도로 L3 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미국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드라이브 파일럿'이 지난해 상용화됐다. 그러나 주 정부 규제 등으로 캘리포니아, 네바다 등 일부 주에서만 판매돼 왔다.
연방 차원의 통합 기준이 부재했던 미국은 지난 4월 자율주행차에 대한 새로운 정책 프레임워크를 발표하며, 자율주행 기술 도입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겨졌던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개편안은 자율주행차의 충돌 보고 요건 완화, 시험 운행 면제 범위 확대, 상업적 배치 확대 등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테슬라, 포드, GM, 스텔란티스 등 제조사의 L2 자율주행 차량과 메르세데스-벤츠의 드라이브 파일럿을 포함한 L3 일부 차량은 사망, 부상 등의 특정 상황을 제외하면 보고 의무가 면제됐다. L4 이상 차량만 전면 보고 대상이 된다.
또 자율주행차 시험운행 면제 프로그램이 확대되면서, 해외 제조 차량만 해당됐던 기존과 달리 미국 내 생산 차량도 면제 대상에 포함됐다.
그동안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탑재 차량의 사고 보고 조치가 과도하고 불공평하다 비판해왔다. 당초 테슬라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ADAS 탑재 차량을 판매하는 만큼 최다 사고 건수를 보고해 왔으나, 이번 조치가 테슬라의 로보택시 서비스 확대 운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규제 완화 발표 직후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기도 했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교통부 션 더피 장관은 "행정부는 중국과의 혁신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라며 "새로운 프레임워크는 불필요한 규제를 대폭 줄이고 미 전역의 단일 기준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설 것"이라 언급했다.
한국, 뒤처지는 실증 규모… '제도 기반' 마련부터
반면,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 실증 규모는 아직 미·중과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에서 운행 허가를 받은 자율주행차는 471대에 불과하다. 이 중 민간 자율주행 스타트업 오토노머스A2Z(이하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가장 많은 55대를 보유했지만 대부분 정부 수주 사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미국 웨이모는 기업 자체 예산으로만 지난해 기준 1천65대의 자율주행 자동차를 운행 중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모빌리티 산업에 투자한 금액은 2023년 기준 239조원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공안부는 지난해 기준 자율주행 시험 주행을 허가한 도로 구간은 약 3만2천km, 발급한 자율주행 허가증은 1만6천 건이라고 밝혔다.
한국도 꾸준히 자율주행 시범 운행 구간을 늘려가고 있다. 전국 40여 곳이 자율주행 시범운행 지구로 지정됐지만, 전체 구간을 합쳐도 500km에 불과해 미·중 수준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 제도 기반의 신뢰 확보 전략을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은 UN1958 협정에 따라 UN과 함께 자율차 안전 기준을 국제 표준화하고, 독일, 일본에 이어 대중교통 및 물류에 자율주행을 우선 도입하는 B2B거래 법규를 전세계 세 번째로 제정해 시행 중이다.
이같은 내용을 직접 입법 제안했다고 밝힌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유민상 상무는 "UN1958 협정에 따라 L3 법규 제정에 5년이 걸렸으나 인증 받은 기업은 벤츠 뿐이다. L4에 대한 법규 제정 진행은 속도를 늦춰 2027년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앞선 독일, 일본과 같이 자율주행차 안전 기준 제정 전이라도 성능 인증을 받으면 대중교통과 물류에는 L4 자율주행차 판매가 가능하도록 입법 건의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 세 국가 모두 고령화율이 높은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어 도심 대중교통의 자율화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전략과 맞물려 있다"라며 "B2C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필요 구간부터 점진적 확산이 가능한 방식"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