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2025년 말 기준 글로벌 국부펀드 순자산총액(AUM)은 사상 처음 15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2000년 1조 달러 수준 대비 15배 증가한 수치다. 전 세계 국부펀드는 단순 자산 운용을 넘어 첨단전략산업과 공급망을 선점하는 국가전략자본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 역시 지난 14일 기존 한국투자공사(KIC) 펀드에 ‘전략투자계정’을 신설하고, ‘종합형 국부펀드’로 확대 개편할 계획을 발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8일 발표한 ‘주요국 국부펀드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는 한국형 국부펀드도 자산을 굴리고 쌓는 역할을 넘어 전략산업과 공급망을 키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한국형 종합 국부펀드 도약을 위한 3대 성공 조건으로 ‘수익 내는 전략투자’ 원칙 수립, 경기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 재원 확충 구조 설계, 투명한 운용을 통한 국제적 신뢰 확보를 최우선으로 제시했다. KIC는 민간 주도의 ‘국민성장펀드’와 명확히 역할을 분담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수십 년이 걸리는 해외 핵심광물 확보나 원천기술 기업 인수합병(M&A) 등 초장기 인내자본 투자에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최근 국부펀드의 이 같은 역할 변화는 주로 경제개발형 펀드가 주도하고 있다. 싱가포르 테마섹(Temasek)은 이사회를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해 상업적 원칙을 지키며, 최근 10년 새 포트폴리오 가치를 두 배인 5천180억 싱가포르달러(약 4천억 달러)로 불렸다.
사우디아라비아 PIF는 국가 개조 프로젝트 달성을 위해 자국 투자 비중을 80%로 유지하며 전기차, 항공우주 등 13대 전략산업 창설을 앞장서 이끌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무바달라(Mubadala)는 과거 미국 AMD의 반도체 제조 부문을 대규모 출자로 인수해 글로벌파운드리를 직접 육성하는 등 첨단 투자를 선도했다.
한국형 국부펀드 역시 소극적 지분 투자를 넘어 미래 첨단 생태계를 개척하는 방향으로 운용될 전망이다. 송승혁 대한상의 금융산업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략투자의 대상은 특정 업종에 국한되지 않고, 전략산업이라고 할 만한 분야라면 다 포함될 수 있다”며 확장 가능성을 열어뒀다. 제조현장의 피지컬 AI나 자율주행 등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생태계를 이끄는 해외 핵심 소부장 기업 역시 KIC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 지분 투자를 넘어 사모펀드처럼 선제적으로 경영권을 쥐고 일정 기간 기업 가치를 키워 고가에 매각하는 ‘바이아웃(Buyout)’ 전략도 열려 있다.
대한상의 보고서는 성공적 펀드 안착의 핵심 과제로 거버넌스 확립과 제도적 장벽 정비를 꼽았다. 정부 주도의 유사 정책 펀드 간 맹목적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해 명확한 역할 분담과 ‘교통정리’가 선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송 팀장은 기금 간 역할 분담과 관련해 “불필요한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며 합리적인 리스크 분담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