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중국산 제품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규제가 확대되면서 한국 무인이동체 산업이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하지만 국내 산업은 협소한 내수 시장과 군·공공 수요 의존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갇혀 있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기회를 실제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개최한 ‘2026 무인이동체 X 민군협력 엑스포(UWC X CIMEX 2026)’는 드론을 필두로 방산 분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무인이동체 산업의 추세를 조명했다.
88개사 187개 부스 규모로 열려 1만 3천220명의 참관객이 찾은 전시회는 완제품 기체를 넘어, 핵심 부품을 포함한 소부장 기술까지 아우르며 산업 생태계와 민군 수요에 초점을 맞췄다.
본보에서는 UWC X CIMEX 2026의 참가 기업들을 만나 한국 무인이동체 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산업 생태계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들어봤다.
군·공공 의존도 높은 영세 생태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무인이동체원천기술개발사업단(UVARC)가 312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5 무인이동체 산업실태조사 결과 보고서(2024년 1월 1일~12월 31일 기준)’에 따르면,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인이동체는 무인항공기(UAV, 255개, 81.7%)였으며 육상(UGV, 24개, 7.7%), 해양(USV, 19개, 6.1%), 임무장비(14개, 4.5%)순으로 뒤를 이었다.
응답기업 중 무인이동체 관련 매출액이 10억 원 미만인 기업은 60.5%(189개)였고, 매출이 없다는 기업은 8.3%(26개)로 조사됐다. 이들의 매출 중 52.5%는 정부 및 공공기관에 의존하고 있어 공공 수요가 정체되면 생존이 흔들리는 취약한 구조다.
방위산업체 A기업 관계자는 “로봇이나 무인이동체 업체들은 모두 영세하다”라며 “시장이 없는 수준이라, 이렇게 전시회에 참여해 개발 성과를 자랑하더라도 창고에 재고로 쌓이는 제품이 더 많다”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UAV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B업체 관계자는 “민수시장은 중국산에 잠식돼있어, 방산 및 공공시장에 집중하고 있다”라며 “이번에 육군의 교육용 상용 드론 구매 사업의 최종 공급사로 선정돼 1만 5천여 대 중 약 5천 대를 수주했는데, 드론 업계에서는 5천 대도 대규모라 부를 만큼 시장 파이가 작다”라고 토로했다.
협단체 관계자 C는 “내수 시장의 한계로 창업보다 폐업하는 소기업이 늘고 있는 형국”이라고 전했으며, R&D 담당자 D는 “2019년 이후 공공시장의 수요가 줄어 현재는 군 수요가 거의 전부인 상황”이라고 짚었다.
E소재기업 관계자는 “국내 무인이동체 소재 발주는 다른 산업에 비해 현저히 작은 수준”이라며 “그러나 해외 기업들의 요구는 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성장세는 체감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비중국화’라는 골든타임…핵심부품 국산화 강조
이러한 상황에서 관계자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비중국화’ 움직임이 국내 무인이동체 산업의 큰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핵심부품 및 소프트웨어의 ‘국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업체 관계자는 “제조는 국내에서 한다고 해도, 배터리와 같은 소모품은 가성비가 좋은 중국 부품을 많이 사용했었다”라며 “그러나 지정학적 갈등을 시작으로 중국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면서 비중국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며,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나라가 전통적인 제조 강국인 한국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기업 관계자는 “개인적으로는, 관련 기술 발전을 위한 일시적인 보호무역 장벽으로 본다”라며 “다시 시장이 개방되기 전에 국내 산업 생태계를 서둘러 구축하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즉, 국산화는 한국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차원의 요구인 동시에 미국 주도 공급망으로 판로를 넓히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 산업의 기술 역량에서 국산화하기 어려운 지점은 없다고 자신했다. 문제는 다시 내수시장의 규모였다. 협단체 R&D 담당자 D는 “예 를들면, 십여만 원에 판매하는 부품을 개발하는데 1~2억 원 규모의 개발비가 필요하다”라며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 국내 시장의 한계를 지목했다. 개발비를 회수할 만큼의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기업이 핵심부품 개발에 선뜻 투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산화의 정의와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E소재기업 관계자는 “무인이동체의 경우 정해진 규격이 없어 진입하기 좋은 기회이지만, 반대로 높은 수준의 항공 인증 규격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돼 영세한 국내 소부장 업체가 대응하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협단체 R&D 담당자 D는 “국산화에 대한 정의나 국산화율을 산정하는 기준이 애매하다”라며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기업들도 어떤 부품과 기술을 국산화할지 전략을 세울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관계자들은 모든 소모품까지 국산화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FC(Flight Controller)처럼 보안을 좌우하는 핵심부품·소프트웨어 분야의 국산화를 집중하고, 프로펠러나 외장재 또는 볼트·너트처럼 단순한 부품 정도는 중국산을 사용해도 되지 않겠냐는 진단이다.
무인이동체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 제언도 제시됐다. 정부가 표준 보급형 모델을 선정해 산업계에 대량 보급하자는 것이다. A기업 관계자는 “로봇·무인이동체 육성은 일회성 구매가 아니라, 전반적인 생태계 조성이 돼야 한다”라며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마중물로 삼아 사용자 경험을 넓히고, 보급 이후 정비·리스·중고 유통으로 이어지는 후방 시장을 함께 육성해 민간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UWC X CIMEX 2026를 주최한 한국무인이동체연구조합(KRAUV)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내수시장만으로는 양산 및 물량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시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현재 미국 노스다코타 주정부 및 현지 대학과 제휴해 세제 혜택·현지 생산 체계 구축·연구 공동 참여 등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다각도 지원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