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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상 프로 & 구옥희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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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상 프로 & 구옥희 프로

골프 외길인생을 살아온 한국골프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인

기사입력 2010-03-19 16: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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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일보]
55년 전 열일곱의 나이에 처음 잡은 골프채를 일흔의 나이가 되어서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 골프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한국골프의 살아있는 전설 한장상 프로.

올해 프로데뷔 30년 동안 오직 골프에만 집중을 해온 사람. KLPGA 명예의 전당 1호인 영광의 주인공. 골프선수로 살아온 지난 날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래묵은 와인처럼 골프에 대한 사랑이 더욱 숙성된 구옥희 프로.

한국 골프 역사를 함께해 온 한장상 프로와 구옥희 프로를 만나보았다. 그들의 지독한 골프 사랑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한국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 한장상 프로

한장상 프로 & 구옥희 프로
한국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 한장상 프로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골프장에서 만난 한장상 프로는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골프를 즐기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인터뷰 내내 한국 골프의 미래와 발전을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골프를 진정 사랑하는 살아있는 ‘전설’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인생은 한국 골프의 역사

1953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캐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 접하게 된 골프는 그의 인생에 전부가 되었다. 골프의 황무지였던 한국은 50년대만 해도 골프라는 스포츠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때였다. 그렇게 일하던 중 55년 처음으로 골프채라는 것을 만져보게 된 청년 한장상은 골프채로 볼을 때리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치고 또 치며 연습을 거듭하던 어느 날 서울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작은 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되었고, 이 때 윌슨 스태프 아이언 한 벌을 상품으로 받는 황금 같은 기회를 얻었다. 골프의 황무지에서 차츰 빛을 발하기 시작한 한장상 프로는 60년부터 일본무대에 진출하며 골프선수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한장상 프로는 72년 열린 일본오픈에서 우승하며 그야말로 한국 골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이 우승을 계기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오거스타에서 열리는 꿈의 대회 마스터스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젊은 나이 영어도 잘 모르는 동양인이 마스터스에 출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것이었다. 개인 캐디도 비서도 없던 그 때 우여곡절 끝에 미국행 비행을 마치고 오거스타에 도착했을 때 꿈만 같던 기분도 잠시, 막막해 하고 있는 찰나 자신을 마중 나온 한국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미국에서 시차적응도 안되고 생각처럼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결국 한 점차로 예선 탈락을 하긴 했지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았다. 모든 직원과 청소부까지도 유니폼을 입고 정갈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 모습을 보고 오거스타 골프장이 세계적인 명문 골프장임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이 후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초대해 외국에서 훌륭한 모습으로 활약하고 있는 점을 치하하고, 같이 라운드를 하며 레슨을 할 정도였으니 그의 역사가 바로 한국 골프의 역사인 셈이다. 반세기를 흘러온 한국 골프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지 그도 이제는 실감하는 듯 하다.

한국 골프의 미래를 말하다

한국 골프의 원로인 그는 요즘 들어 걱정이 많아졌다. 한국 골프가 반세기 동안 세계가 놀랄 정도로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골프 인구가 늘어난 만큼 제도적인 정비가 아직 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우리나라의 골프장 공급이 적어 골퍼들에게 높은 그린피를 적용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골프인구는 400만이 넘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골프장 공급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한국의 골프가 선진화 되고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는 일류선수 양성을 위해서는 골프장 공급이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져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골프 협회들이 한국 골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협회가 없었던 시절부터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시절을 거쳐 오늘날 협회는 좀더 체계화 되고 그 역할이 계속 커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 골프의 발전을 위해서 각 협회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체계적인 관리, 정기적인 교육, 사진과 각종 기록의 정리 그리고 골프의 룰이나 기술적 측면, 레슨, 에티켓까지 모든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작년 선수생활에서 은퇴한 후 앞으로 남은 시간은 골프 협회에 자신의 연륜과 노하우 등을 조금이나마 보태어 한국 골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골프는 스포츠이다. 스포츠를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골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골프에 재미를 느끼고 무턱대고 골프선수로 전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골프에 대한 열정, 재능, 노력을 갖추어야만 진정으로 실력을 갖춘 골프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다하는 노력만이 최고의 골프 선수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한장상 프로는 인터뷰 내내 한국 골프의 전반적인 문제점, 미래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했다. 그만큼 골프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한국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로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 한국 골프의 미래를 환하게 비춰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골프는 나의 천생연분 구옥희 프로

한장상 프로 & 구옥희 프로
골프는 나의 천생연분 구옥희 프로
최근 김영주골프단에 8명의 젊은 여자 프로골프 선수들과 함께 구옥희 프로가 영입되었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올해로 프로 생활 30년이 된 구옥희 프로와 한 팀에서 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젊은 선수들에게는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노장 구옥희 프로는 여전히 우승에 목마르다. 그는 올해 역시 우승의 목표를 갖고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골프 사랑은 아직 식지 않았다

“30년 전 프로생활 시작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마음은 아직 젊은데....” 구옥희 프로는 1978년 5월에 프로데뷔 이후 올해로 딱 30년이 지났다. 결혼도 잊은 채 골프를 향한 외길인생을 살아온 그의 지독한 골프 사랑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난 이것밖에 없다, 내가 가야할 길은 이 길이다, 내 길은 이길 뿐이다, 나는 골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매일 주문처럼 외우고 다짐했습니다.” 구옥희 프로는 골프 이외에 그 흔한 취미조차 만들지 않았다. 골프를 하지 않는 시간에도 모두 다음 시합 준비를 하는 시간을 소비했다.

“제가 가는 길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제 인생의 모든 시간은 골프를 위해서만 쓰였습니다. 저는 골프이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어요. 그만큼 골프에 집중할 시간이 없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30년 동안 골프채를 놓지 않고 단 한번도 골프에서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구옥희 프로는 골프가 인생보다 어려웠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골프를 흔히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18홀을 돌면서 인생의 새옹지마를 느낄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수많은 18홀 인생을 겪어봐서 그런지 구옥희 프로는 한 때 골프장 사기사건에 피해자로 10억원을 손해 봤을 때도 덤덤하게 넘겨버렸다. 그리고 언제그랬냐는 듯 여전히 따뜻한 눈빛과 순수한 웃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간 흔적을 느끼기 힘든 그에게 은퇴라는 것은 너무 이른 질문인 듯 싶다.

“주변에서 언제 은퇴를 할껀지, 은퇴 후 무엇을 할 계획인지 물어옵니다. 그 어떤 계획도 아직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올해 우승을 향해 열심히 뛰는 모습 지켜봐주세요.”

그 어떤 장애도 뛰어넘다

한국 골프역사를 논할 때 구옥희 프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골프 관련 기사 스크랩을 시작으로 1975년 123cc에서 캐디로 일했던 것을 계기로 프로골프의 길을 걷게되었다.

“우연히 집 근처 골프장에서 캐디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앞으로 진로에 대해 한참 고민할 때 였죠. 그 당시 일본 프로들의 활동 기사를 보고 영감을 받았어요. 신문 스크랩을 하면서 골프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 같아요. 성공하고 싶었어요.”

어린시절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한 구옥희 프로가 골프선수의 길을 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책의 구절처럼 ‘자아의 신화’ 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는 그 소망이 실현되게 도와준다고 했다.

“당시 골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집안이 풍족하지 않았지만 캐디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골프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골프를 열심히 하니까 골프장에서 배려해 주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주변에서 연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는 프로골퍼가 되고 난 후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KLPGA에서 통상 20승을 거두고 1983년 일본 무대로 진출하고 또다시 1985년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USLPGA 1988년에는 스탠다드레지스터클래식에서 1승을 거두었다. 1985년부터 2005년까지 주 활동무대였던 JLPGA에서는 통산 23승을 했다.

“우승한 경기는 다 기억에 남아요. 우승을 하지 못한 경기는 당연히 아쉬움이 남고요. 지금까지 많은 대회를 참가했고 우승도 여러번 해보았지만 그래도 체력만 따라줬다면 더 많은 우승을 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제일 큽니다,” 구옥희 프로에게는 쉰이 넘은 나이에도 프로골퍼로 활동하며 노장투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을 정도. 항상 밝은 웃음과 카리스마 넘치는 강인함 뒤에는 약하고 여린 구옥희 프로가 숨어있었다. 그만큼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었던 그는 절대로 자만할 수 없었다.

구옥희 프로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또다시 일본으로 환경을 옮겨가며 프로생활 10년 만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고 소화불량에 불면증에도 시달려야 했다. 그때 참선을 알게 되면서 몸과 정신이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해 요즘도 참선은 매일 빠뜨리지 않고 하려고 하는 운동 중 하나가 되었다.

영원한 골퍼로 남고 싶다

과거에 비해 요즘은 많은 어린 후배들이 프로선수로 활동 중이다. 골프가 점점 대중화되면서 조기교육으로 일찌감치 시작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국 프로골프의 개척자이자 선구자인 구옥희 프로에게도 이들에게 바람이 있다.

“제가 힘들게 거쳐온 길을 후배들은 재미있게 즐기길 바랍니다. 하루하루를 꾸준히 그리고 최대한 많은 연습양을 확보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훌륭한 후배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의지도 내비쳤다. “제가 키운 제자가 타이거우즈나 소렌스탐처럼 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요. 장기간에 걸쳐 그런 골프스타를 길러내는 것이 소망입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앞으로 골프선수로 그간의 살아온 삶을 기록해 자서전을 쓰거나 골퍼로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해설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영원히 골퍼로 남고 싶습니다.” 구옥희 프로는 그렇게 골프와 평생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생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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