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지난 8월16일 발효한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의 전기동력차(이하 전기차) 보조금 규정은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최대 7처500불의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미국의 전기차 산업 육성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IRA에 따르면, 전기차 외에도 전기차용 배터리 부품의 50%(연도별로 단계적 상승해 2029년 100%) 이상이 북미에서 ‘최종 제조 또는 조립’돼야 하며, 배터리 제조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의 40%(연도별로 단계적 상승해 2027년 80%) 이상은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 또는 가공되거나 북미지역에서 재활용된 것이어야 한다.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미국의 新 공급망 재편 전략과 IRA 전기동력차 보조금 규정 : 통상적이지 않은 통상 Part 3’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오랫동안 전기차-배터리 공급망 전반에 걸쳐 내재화 노력을 펼쳐왔다. 올해 8월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는 바이든 정부의 전기동력차 시장 확대와 배터리 산업생태계 내재화 목표에 맞춰 인프라투자법(IIJA)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통과시켰다.
특히 IRA의 전기동력차 보조금 규정은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동력차에 대해서만 최대 7천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전기동력차 및 배터리 산업 육성과 자국 중심의 공급망 내재화를 동시에 시도했다. 그러나, 자국산 소재·부품 사용을 조건으로 하는 국산화 우대 조치는 그간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통상규범에 반하는 것으로 여러 차례 확인됐다.
WTO 분쟁 사례에서도 자국산 부품 사용 요건 조치가 수입산에 대한 차별(내국민대우 원칙 위반)로 인정된 사례가 14건 확인됐다. IRA 전기동력차 보조금 규정은 WTO 보조금 협정상 금지보조금인 수입대체 보조금에 해당할 소지가 높으며, 투자유치국 정부의 인위적인 조치로 투자 결정을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요건 금지 규정에 위반일 가능성도 있다.
WTO 보조금 협정 제3조1항(b)는 “수입품 대신 국내상품의 사용을 조건으로 지급되는 보조금”에 대해 금지보조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미 FTA 11.8조 1항에서는 어떠한 당사국도 비당사국 투자자의 자국 영역 내 투자의 설립·영업 등과 관련해 '자국 영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매 또는 사용하거나 이에 대해 선호를 부여하는 것, 또는 자국 영역에 있는 인으로부터 상품을 구매'와 같은 요건을 강요하거나, 이에 대한 약속 또는 의무부담을 강요할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다.
보고서는 IRA 시행에 따라 한국 기업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하나 미국 기업도 요건 충족이 어려운 만큼 IRA 시행의 장단기 영향 분석과 이에 따른 대응 모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IRA 시행으로 우리 전기동력차 구매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은 즉시 사라지나, IRA의 세액공제 요건 중 배터리 소재나 부품의 북미 혹은 FTA 체결국 조달 요건, 차량가격 상한제, 차량구매자 소득요건 등으로 인해 미국산 전기동력차 구매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 전기동력차의 가격 상한은 밴, SUV, 픽업트럭의 경우 8만 달러, 기타 차량은 5.5만 달러이며, 차량 분류 결정에 필요한 세부 사항은 추후 세부 지침에 고시될 예정이다.
미국은 전기동력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의 부존량과 배터리 부품의 자급률이 모두 낮아, 배터리 부품의 북미 제조·가공 요건, 핵심광물의 미국 및 FTA 체결국 내 채굴·가공 요건 충족이 쉽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미국산 전기동력차와 미국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이해와 미국 정부의 인센티브가 결합되면, 미국 배터리 산업 기반은 짧은 시간 내 크게 확충될 전망이다.
무역협회 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협회는 업계와 조율을 거쳐 IRA 시행에 대한 협회 의견서를 미국 재무부에 제출할 계획”이라면서, “현지 투자를 진행 중인 현대차 등 우리 기업에 대한 IRA 적용 면제나 유예를 요청하는 등 IRA 영향 최소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공급망 구축에 우리나라도 포함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등 국제 협력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