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일보]
글로벌 고무 산업이 다중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구조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천연고무 생산 정체, 기후 변화에 따른 생산지 불안정성, 전기차 수요 확대, 친환경 규제 강화 등 복합적인 변화 속에서 각국 고무 산업은 기술 중심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천연고무협회(ANRPC)는 2025년 천연고무 생산량이 전년 대비 0.3% 증가한 1천490만 톤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소비는 1천560만 톤으로 1.8%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며, 약 70만 톤의 수급 불균형이 5년 연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공급 정체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중국·인도·태국 등에서의 산업 생산 회복이 수요 확대를 이끌고 있다.
생산지에서의 기상이변도 수급 불안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태국은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로 수확량이 크게 줄었고, 중국 하이난성에서는 태풍으로 인한 고무나무 피해가 확산됐다. 이 여파로 천연고무 가격은 2024년 하반기 기준으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원자재 시장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고무 산업은 산업용 고기능 소재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GM Insights에 따르면, 국내 산업용 고무 시장은 2032년까지 연평균 4.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무 호스, 진동 제어용 부품, 내열·내유성 고무 등 특화된 수요가 확대되면서, 자동차, 건설, 전자 분야에 대응하는 맞춤형 제품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전기차(EV) 보급 확대는 고무 산업에 새로운 기술적 과제를 던지고 있다. 전통적인 타이어에 비해 고중량·고토크 특성을 지닌 전기차용 타이어는, 구름 저항을 최소화하면서도 내구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복합 설계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글로벌 타이어 제조사들은 구아율(guaayule)이나 민들레 고무 등 바이오 기반 폴리머를 대체 소재로 채택하고 있으며, 나노소재를 활용한 경량화 기술도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고무 소재 기업들에게도 기술 혁신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친환경 요구와 ESG 강화 흐름은 완성차 기업의 소재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규어 랜드로버는 피렐리와 협력해 FSC 인증 천연고무 타이어를 적용했고, 유럽 주요 OEM은 2030년까지 공급망 내 비오염 고무 사용 비율을 절반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공급사에 요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도 공급망 이력 관리, 친환경 인증 체계 도입 등 새로운 기준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합성고무 수요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Research Nester는 글로벌 합성고무 시장 규모가 2024년 약 2천420억 달러에서 2037년 약 6천12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연평균 성장률은 7.3%에 달한다. 자동차 부품, 의료용 재료, 방수·단열 건축 자재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의 확장성이 시장 성장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내 화학소재 기업들도 고탄성·고내열 특성을 강화한 차세대 제품군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천연고무 수급 불균형, 기후 위기, ESG 규제 강화라는 리스크 요인이 지속되는 가운데, 고무 산업은 원자재 기반 산업 구조를 넘어 고부가가치 기술 산업으로 전환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경쟁력 확보의 핵심은 소재 기술, 친환경 인증 역량, 글로벌 규제 선제 대응이며, 이를 중심으로 국내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과 구조 혁신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