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한국 자율주행①] “기술 선도국가와 한국 격차, 3~4년 차이”’기사에서 이어집니다.
E2E 향하는 자율주행, 한국은 아직 룰베이스 머물러
기업들은 자율주행의 기본적인 요소 기술로 인지, 판단, 제어를 지목했다. 주위 상황을 얼마나 명확하게 인식하고, 인식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제어할지를, 얼마나 신속하게 판단하느냐가 기술 성숙도를 판가름한다는 것이다. 현재 차량의 위치가 어딘지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로 덧붙였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 유병용 부사장은 “누가 더 저렴한 센서로 빠르게 인식하느냐를 두고 경쟁이 치열하다”라며 “그래서 카메라만으로 E2E(End-to-End) 방식의 자율주행을 구현하고 있는 테슬라(Tesla)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2E는 센서가 수집한 정보를 딥러닝 AI(인공지능)가 판단해 가속, 제동을 비롯한 제어 명령과 주행경로 등을 알아서 결정하는 방식이다.
유 부사장은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라면 모두 E2E를 지향하고 있다”라며 “알파고의 사례를 통해 인간이 하나씩 짜놓은 규칙보다 AI가 학습에 의해 내리는 결정이 더 낫다는 게 검증됐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룰베이스(rule-based)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방식은 미리 정해진 규칙과 알고리즘에 따라 차량의 행동을 결정한다. 새로운 상황이나 환경에 대해 규칙을 추가·수정해야 해 개발 과정이 비효율적이다.
SW 기업 관계자는 “E2E는 AI가 학습한 대로 판단했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원인 규명이 어렵다”라며 “룰베이스는 원인 분석을 할 수 있어, 사고에 대한 해명 및 개선이 가능해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사고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라고 한국 기업들이 룰베이스를 주로 사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유병용 부사장은 “사실, 전 세계에 제대로된 E2E를 구현하고 있는 기업은 테슬라밖에 없다”라며 “E2E는 하드웨어가 바뀌면 데이터 수집부터 다시 해야 하는데, 테슬라는 자율주행패키지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차량의 하드웨어(센서) 구성이 같다”라며 E2E 구현 전략 로드맵을 처음부터 수립하고 발전시켜 왔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테슬라의 카메라 기반 E2E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하기도 했다.
‘판타G버스’를 운영하고 있는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카메라가 가격이 더 저렴하지만, 신뢰도를 따져보면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라며 “판타G버스의 경우 라이다(LiDAR)를 주 센서로, 카메라와 레이더를 혼합하는 ‘다중 센서 융합(Multi-Sensor Fusion)’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중국 자율주행기업 ‘포니AI’와 기술 제휴를 맺고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자율주행택시를 시범 운행 중인 ‘포니링크’ 관계자는 “카메라, 라이다, 레이더 등 다양한 센서를 유기적로 통합했다”라며 “최소한 2개의 센서가 같은 구간을 인식하도록 구성해 안정성을 높였다”라고 말했다.
유 부사장도 “안전성 측면에서는 당연히 여러 센서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라며 “여러 기업이 다양한 방식을 내세우며 기술력을 선보이고 증명해 나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라고 의견을 더했다.
해외 선도국 추격, 대기업 역할 강조된다
선도국을 따라잡기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기업들은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대기업의 역할도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내부적으로 AI나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고 있겠지만, 외부로 퍼트리려는 움직임은 없다”라며 “AI만 두고 보더라도 대기업들은 기술을 ‘공개’하는데 만 그쳤고 오픈소스나 데이터셋을 ‘공유’하지는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대기업에서 개발한 기술을 자국 내에 오픈소스로 제공하고 있다”라며 “그런 면에서는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선진화됐다고 본다”라고 꼬집었다.
유병용 부사장도 “현대자동차가 기존 자동차 생태계를 잘 구축해 놓았고, 실력 좋은 스타트업도 많다”라며 “그러나 현대차가 자율주행차(이하 자율차) 생태계 확장에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아쉽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 도요타(Toyota)가 ‘WOVEN CITY’를 발표하며 자국 생태계를 미래 모빌리티 산업으로 이끌고 있다”라며 “현대차와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나서줘야 생태계가 빠르게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라고 진단했다.
유 부사장은 “대기업에서 단일화한 센서 구성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일괄적으로 수집·분석한다면 데이터 축적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 자율주행산업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
‘2025 자율주행모빌리티산업전(AME 2025)’에서 만난 한국 자율주행 기업들은, 국내 시장 성장을 위해 3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규제 완화였다. 가장 대표적인 규제 사례로 꼽은 것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자율주행 제한’이었다. 도심 주행 시 어린이보호구역을 피할 수 없는데, 해당 구간마다 수동운전을 하다 보니 자율주행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안전장치를 추가한다면 어린이보호구역에서도 안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두 번째로, 자율차 사고 발생 시의 엄격한 잣대를 개선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수동운전과 똑같은 사고가 나더라도 ‘자율주행은 사고가 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후방차량이 추돌사고를 내더라도 ‘알아서 피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자율차 사고 시 이를 투명하고 공개하고, 자율차의 과실이 없는 경우 정부에서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호장치’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자율주행 AI 개발과 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GPU와 저장장치 등 고비용 하드웨어 시스템을 정부에서 구축하고 저렴하게 빌려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