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안보가 디지털 패권 경쟁 시대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대학 캠퍼스와 기초연구 현장까지 경쟁의 장이 확장되면서, 국제 과학기술 외교 패러다임에도 변화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인경 연구위원은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 국제협력 토론회에서 "냉전시대에는 산업스파이를 통한 군용기술 탈취가 주를 이뤘으나, 오늘날 기술경쟁은 연구자의 국제 협력을 통해 국가 주요 연구자산을 탈취하는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연구자 보호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21년 노벨상 후보자로 여러 차례 거론되던 하버드대 교수가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은폐하고 연구 내용을 빼돌린 혐의로 캠퍼스 내에서 체포된 사건을 들었다.
실제로 미국은 2019년부터 중국의 산업 및 학술 스파이 활동을 공식 수사해왔으며, 2022년 의회 보고서에서는 중국 정부의 하버드대 내 영향력 확대와 인재 영입 노력을 경고했다. 연구자와 그들의 연구 활동이 기술 안보적 관점에서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대응해온 것이다.
국내에서도 카이스트 교수가 중국에 자율주행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바 있다. 단순한 산업 기술 유출을 넘어, 기초연구 단계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 안보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기구들은 연구 안보를 단순 보안 문제에 국한시키지 않고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OECD, EU, G7 등은 연구 윤리, 국제 협력, 기술 상업화까지 포함한 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있으며, 이를 국제 규범과 표준으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최근 유네스코 과학기술 장관 회의에서는 194개국 회원국이 모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연구 보안’이 공식 의제로 다뤄지며, 과학기술 외교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됐다.
선 연구위원은 "과학기술은 더 이상 단순한 공공재로만 인식되지 않고, 각국의 국익을 반영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다뤄지고 있다"며 "연구 안보와 과학 외교는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질서 재편의 일환"이라 말했다.
그는 끝으로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제 연구 생태계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무대로 변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과학기술 선진국으로서 연구 안보와 국제 협력 질서 재편에 기여해야 한다”며, 연구자 보호와 신뢰 기반 협력 구축을 중심으로 정책적 대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