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우리가가 뿜어낸 탄소는 ‘따뜻한 겨울’로 돌아왔다. 지난 주말부터 낮 최고기온이 15도 안팎을 오르내리며 봄 같은 날씨가 이어졌다.
따뜻하기만 한 건 아니다. 다음 주부터 한낮에도 영하 5~6도인 혹독한 한파가 다가온다. 따뜻할 땐 따뜻하고, 추울 땐 추운 극단적인 날씨다. 그다지 놀랍진 않다. 봄의 가뭄부터 여름철 극한 호우, 12월 겨울비까지 올해 이상 기후는 ‘일상’이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는 세계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온난화’를 넘어 ‘끓는 지구’가 됐다.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완화에 기여하는 혁신 기술, 이른바 ‘기후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인간이 기술로 기후를 지배하는 세상? 기후기술 투자는 ‘하락세’
‘원래는 기후가 인간을 지배했으나, 지금은 인간이 기후를 지배하고 있다’
기후 재난영화 ‘지오스톰(2017)’에 등장하는 문구다. 영화 속 인류는 가혹한 기후에 대응하려 기후 통제 위성을 띄운다. 이 위성에 이상이 생겨 지구에 거대한 재난이 발생하고, 주인공들이 이를 막으려 고군분투하는 게 주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기술로 기후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재난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기술을 총동원해 끓어오르는 지구를 식혀야 재난을 막을 수 있다.
‘기후기술’은 온실가스를 감축하거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적응에 필요한 장비, 기술, 실용적 지식 등을 포괄한다. 한국은 탄소중립을 실현할 전략 핵심 기술 10가지를 선정해 육성하고 있다.
기후기술의 필요성은 높아지지만 어려운 시장 상황으로 투자는 줄어드는 추세다. 삼일회계법인은 이달 ‘PwC 기후 기술 보고서 2023(이하 보고서)’를 발간하며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정학적 혼란, 밸류에이션 하락, 인플레이션 및 금리 인상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기후기술 스타트업 투자자금은 5년 전 수준으로 감소했다.
긍정적 가능성도 있다. 기후기술 투자 하락세에도 신규 투자자는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전체 스타트업 투자 대비 기후기술 분야의 비중이 증가했다. 특히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은 침체 속에서도 유일하게 투자가 늘었다.
스티븐 강 삼일회계법인 ESG 플랫폼 리더는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중요한 기후기술은 투자 시장 침체 속에서도 기업에게 새로운 투자 기회가 될 것이며, 기후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기업가 정신으로 기후기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한국은 기후 악당? 기후대응지수 사실상 '최하위'
한국의 기후대응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국제단체의 평가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 연합, 이란, 사우디아라비아뿐이다.
기후솔루션은 국제 평가기관과 연구단체가 각 국가의 최신 정책과 이슈를 반영해 매년 발표하는 ‘기후변화대응지수(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CCPI)’에서 한국이 지난해보다 4순위 하락한 64위를 기록했다고 8일 밝혔다.
한국이 저평가된 이유는 ▲재생에너지 목표 하향 ▲석유, 가스에 공적 금융 투입 ▲바이오매스 사용률 증가다.
올해 초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0.2%를 달성한다는 기존 목표를 21.6%로 낮췄다. 노후된 석탄화력발전소를 또 다른 온실가스 배출원인 가스발전으로 대체한다는 계획도 혹평의 이유가 됐다.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한국이 석유와 가스 프로젝트에 공적 자금 조달을 종료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한국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해외 석유와 가스 사업에 71억 4천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이는 일본에 이어 세계 2번째다.
바이오매스도 점수를 깎는 요소가 됐다. 바이오매스 발전은 상당한 온실가스를 배출해 탄소중립 이행 수단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은 산업부와 산림청의 바이오매스 지원 정책에 따라 지난 10년 간 바이오매스 발전량이 42배 증가했다.
‘지오스톰’의 메인 악역은 ‘미국의 약화’를 이유로 미국의 라이벌 국가를 공격했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국을 ‘악당’으로 만든 것이다.
한국도 기후 대응 측면에선 ‘악당’ 취급을 받는다. 지난 6일에는 세계 300여 개 기후환경단체의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에게 기후위기 대응에 무관심한 나라에게 주는 불명예 상인 ‘화석상’을 받기도 했다.
기후솔루션 김주진 대표는 발표 자료를 통해 ‘정부와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의 주도적인 역할로 나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돕고, 공적자금의 화석연료 투자를 끝내야 한다’면서 ‘이는 곧 국제적 기후 리더십을 보여주는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