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CNC 공작기계를 도입하더라도 공구 조립과 측정, 관리 과정이 체계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장비의 성능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 가공 정밀도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작기계 내부의 자동화뿐 아니라 공구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작업 방식과 데이터를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정밀 공구 시스템 기업 하이머(HAIMER)는 이러한 제조 환경에 대응해 정밀 툴홀더와 열박음 장비를 중심으로 프리세터, 밸런싱 머신, 디지털 공구 관리, 자동화 기술을 결합한 ‘미래형 공구실(Toolroom of the Future)’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하이머코리아 한국지사 사무실에서 만난 민병익 지사장은 “앞으로의 제조 경쟁력은 더 빠르고 고가의 공작기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확보하기 어렵다”며 “공작기계와 절삭공구, 툴홀더, 공구 준비, 측정, 데이터 관리와 자동화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하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밀 툴홀더 기업에서 생산성·솔루션 파트너로
하이머는 독일에 본사를 둔 정밀 공구 시스템 기업으로, 정밀 툴홀더와 열박음 장비를 주요 사업으로 전개해 왔다. 현재 17개 해외 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독일 본사 약 550명과 해외 법인 약 300명을 포함해 총 850명 규모의 인력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개별 제품 공급을 넘어 고객의 생산 공정 전반을 지원하는 ‘생산성 파트너(Productivity Partner)’와 ‘솔루션 파트너(Solution Partner)’를 사업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밀 툴홀더와 절삭공구, 열박음 장비, 프리세터, 밸런싱 머신, 공구 관리 소프트웨어를 연결해 공구 준비부터 CNC 장비 투입까지 이어지는 작업 흐름을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민 지사장은 “정밀 툴홀더와 열박음 장비는 여전히 중요한 사업 분야”라며 “이제는 개별 제품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의 생산성 향상을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형 공구실’, 공작기계 밖에서 시작되는 디지털화
하이머가 강조하는 ‘미래형 공구실’은 공구 준비 과정을 하나의 디지털 프로세스로 연결하는 개념이다.
제조기업들이 CNC 공작기계와 자동화 설비에 투자를 확대하는 반면, 공구실에서는 조립과 측정, 재고 관리 등 수작업에 의존하는 업무가 여전히 남아 있다.
공구실에서는 절삭공구와 툴홀더를 조립하고 길이와 직경을 측정하며, 회전 밸런스를 확인한다. 준비된 공구를 CNC 장비에 장착하는 과정에서는 측정 데이터를 입력하고 공구 상태를 관리해야 한다.
미래형 공구실은 열박음과 밸런싱, 프리세팅, 공구 데이터 관리, CNC 장비로의 데이터 전송을 연결해 이러한 작업을 체계화한다.
민 지사장은 “공작기계가 아무리 정밀해도 공구 조립과 측정, 관리 과정이 비효율적이면 장비 성능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며 “공작기계에 공구를 장착하기 전 단계부터 품질과 효율을 관리하는 것이 미래형 공구실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열박음·프리세팅·밸런싱 연계…가공 정밀도와 셋업 시간 관리
공구 준비 공정의 디지털화는 각 장비의 기능을 연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정밀 열박음 툴홀더는 열을 이용해 공구를 체결하는 방식으로, 공구의 런아웃(Runout·회전 흔들림)을 줄여 안정적인 가공을 지원한다.
프리세터(Presetter)는 공작기계 외부에서 공구 길이와 직경을 미리 측정해 장비 내부의 셋업 작업을 줄인다. 밸런싱 머신은 고속 회전하는 공구 시스템의 불균형을 측정·보정해 진동을 낮추고 가공 품질과 공구 수명 관리에 기여한다.
공구 관리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재고 수량과 보관 위치, 사용 이력까지 디지털 정보로 관리할 수 있다.
하이머는 이러한 기술을 개별 장비로 운영하는 데서 나아가 측정값과 관리 정보를 연결해 공구 준비 시간과 작업 편차를 줄이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 본사, 디지털 공구 관리 도입 첫해 절삭공구 비용 약 15% 절감
하이머는 자체 생산 현장에서 디지털 공구 관리 시스템을 적용한 운영 사례도 공개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독일 본사는 2024년 디지털 공구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첫해에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절삭공구 비용을 약 15% 줄였다.
공구의 재고 수량과 보관 위치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면서 불필요한 중복 보관을 줄이고 적정 재고를 운영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하이머는 이를 ‘Right Tool, Right Place, Right Tim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필요한 공구를 필요한 장소에 필요한 시점에 공급하는 운영 체계를 의미한다.
민 지사장은 “공구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투명하게 파악하면서 중복 보관을 줄일 수 있었다”며 “디지털 공구 관리는 생산량을 유지하면서도 공구 운영 비용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해당 수치는 하이머 독일 본사의 운영 사례로, 실제 개선 수준은 제조기업의 생산 환경과 공구 관리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AI 기반 프리세터, 공구 종류와 측정 위치 자동 인식 지원
하이머는 공구 측정 작업의 표준화를 위해 인공지능(AI) 기반 프리세터 기술도 적용하고 있다.
AI 프리세터는 드릴, 엔드밀, 페이스밀 등 공구의 종류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절삭날과 측정 위치를 판단하도록 지원한다.
측정 결과를 저장해 반복 작업에 활용할 수 있으며, 데이터를 CNC 공작기계로 전송하면 수동 입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도 줄일 수 있다.
기존 공구 측정은 공구 종류에 따라 작업자가 측정 위치를 설정하고 절삭날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AI를 활용하면 이러한 과정에서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른 편차를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민 지사장은 “AI가 작업자를 단순히 대체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숙련도 차이에 따른 편차를 줄이고 누구나 일관된 수준의 작업 품질을 구현하도록 돕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Automation Cube One’, 공구 준비 공정 자동화 확대
하이머는 공구 준비 공정의 자동화 수준을 높이기 위한 솔루션으로 ‘Automation Cube One’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툴홀더 교환과 열박음, 측정, 관련 데이터 기록을 자동으로 수행하도록 구성됐다. 작업자가 개별 장비를 이동하며 처리하던 공구 준비 과정을 하나의 자동화된 작업 흐름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장기적으로는 로봇과 자동 물류 시스템을 연계하는 방향도 추진하고 있다.
준비된 공구를 자율이동로봇(AMR)이나 무인운반차(AGV)를 통해 CNC 공작기계로 운반하고, 최종적으로 장비의 공구 매거진과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작업자 개입을 최소화하는 ‘Lights-Out Factory(완전 무인 생산공장)’ 구현과도 관련된다.
민 지사장은 “완전 무인 생산을 실현하려면 공작기계만 자동화해서는 부족하다”며 “공구를 준비하고 공구 수명 정보를 관리하는 과정까지 연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이머는 공작기계 제조업체들과 협력해 공구 준비 시스템과 생산 설비를 통합하는 자동화 기술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CNC 공작기계 220대 이상 운영…자체 생산 현장에서 기술 검증
하이머는 공구 시스템을 공급하는 동시에 실제 생산 현장을 운영하는 제조기업이기도 하다.
독일 본사에서는 220대 이상의 CNC 공작기계를 가동하고 있으며, 하루 약 4,000개의 툴홀더를 생산한다.
이러한 생산 기반은 새롭게 개발한 공구 시스템과 장비, 디지털 관리 기술을 실제 제조 공정에 적용하고 검증하는 환경으로 활용된다.
민 지사장은 “하이머는 장비와 솔루션을 공급하는 기업인 동시에 생산 현장을 운영하는 제조기업”이라며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자체 생산 현장에 먼저 적용하고 검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이머가 강조하는 ‘Quality Wins(결국 품질이 승리한다)’라는 철학도 이러한 제조 현장 경험과 연결돼 있다.
한국 5축 가공·항공우주·반도체 장비 분야 정밀 공구 기술 제안
하이머코리아는 한국 시장에서 5축 가공과 항공우주, 반도체 장비, 정밀기계 분야를 주요 기술 협력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들 산업에서는 가공 정밀도뿐 아니라 공정의 안정성과 반복 가공 시 재현성 확보가 중요하다.
5축 공작기계를 도입하더라도 툴홀더의 정밀도와 공구 준비 과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비 성능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하이머의 설명이다.
이에 정밀 툴홀더와 Safe-Lock, 열박음, 프리세팅, 밸런싱 기술을 연계한 솔루션을 제안하고 있다.
Safe-Lock은 가공 중 절삭공구가 축 방향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방지하도록 설계된 공구 체결 기술이다.
민 지사장은 “항공우주와 반도체 장비, 정밀기계 분야에서는 가공 정밀도만큼 공정의 안정성과 재현성이 중요하다”며 “정밀 툴홀더와 공구 준비 기술을 함께 제안해 고객의 생산 현장에서 개선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중소·중견기업도 단계적 도입 가능…모듈형 공구실 구축
미래형 공구실은 처음부터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도 단계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
하이머는 제조기업의 설비 환경과 운영 규모에 따라 필요한 장비와 기능을 추가하는 모듈형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초기에는 정밀 툴홀더와 열박음 기술을 도입하고, 이후 스캐너와 프리세터, 밸런싱 머신, 공구 관리 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기능을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다.
각 단계에서 공구 준비 시간과 측정 작업, 재고 운영의 개선 결과를 확인한 뒤 다음 투자 범위를 결정할 수 있다.
공구의 고유 식별 코드(Unique ID Code)를 활용하면 개별 공구의 위치와 측정 데이터, 사용 이력을 연결해 관리할 수 있다. 향후 Automation Cube One과 같은 자동화 시스템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된다.
민 지사장은 “처음부터 완전 자동화된 공구실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며 “각 단계에서 얻는 개선 결과를 확인하면서 투자 범위를 넓히고, 현재 도입하는 기술이 미래 자동화와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공작기계 제조사와 가공 테스트·장비 시연 협력 추진
하이머코리아는 국내 공작기계 제조업체와의 기술 협력도 확대할 계획이다.
공작기계 제조사가 보유한 가공 장비와 기술에 하이머의 정밀 툴홀더, 공구 준비·측정 기술, 디지털 관리 시스템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단순한 제품 소개보다 실제 가공 테스트와 장비 시연을 통해 가공 정밀도와 생산성 변화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구 체결 방식과 런아웃, 밸런싱, 측정 데이터 등은 가공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만큼 공동 검증을 통해 적용 가능성을 살펴볼 계획이다.
민 지사장은 “공작기계 제조사의 장비와 가공 기술에 하이머의 정밀 공구 시스템을 결합한다면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양사의 기술을 활용한 실제 가공 테스트와 시연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이머코리아, 기술 영업 강화하고 디지털 공구 관리·자동화 사업 확대
하이머코리아는 기존 정밀 툴홀더와 열박음 장비 사업을 강화하면서 프리세터, 밸런싱 머신, 디지털 공구 관리, 자동화 솔루션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고객의 생산 현장을 직접 방문해 공구 준비와 가공 과정의 문제를 파악하고, 현장 조건에 맞는 기술을 제안하는 기술 영업도 강화한다.
국내 주요 공작기계 제조업체와 핵심 고객을 대상으로 가공 테스트와 장비 시연을 확대해 기술 적용에 따른 변화를 실제 생산 환경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민 지사장은 “하이머코리아는 한국 제조기업들이 공구 준비부터 데이터 관리와 자동화까지 단계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장기적인 파트너가 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하이머의 품질 철학인 ‘Quality Wins’를 언급하며 “결국 품질이 승리하고, 그 품질은 고객의 생산성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