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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산업 이야기] AI 시대의 사회안전망, 제도가 국민을 찾아갈 차례
김대은 기자|kde125@kid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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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산업 이야기] AI 시대의 사회안전망, 제도가 국민을 찾아갈 차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지적하는 ‘신청주의’ 행정의 벽

이재명 정부, 주요 사회보장급여 ‘자동주의’ 전환 제시

기사입력 2026-11-02 18: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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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산업 이야기] AI 시대의 사회안전망, 제도가 국민을 찾아갈 차례
이미지=본보 기획/AI 생성
[산업일보]
40년을 목수로 일한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인해 일을 쉴 수밖에 없다. 그는 법이 보장하는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지만, 그를 맞이한건 사회적 안전망이 아니라 조건과 절차가 꼬리를 무는 ‘신청주의’의 벽이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는 영국을 배경으로 현대 복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묻는 작품이다.
[문화 속 산업 이야기] AI 시대의 사회안전망, 제도가 국민을 찾아갈 차례
이미지 출처=네이버 영화

심장마비로 사망 직전까지 갔던 주인공 다니엘은 주치의로부터 더 이상 일을 하지 말라는 진단을 받지만, 복지부에 신청한 질병수당은 기각당한다. 그는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콜센터에 전화를 걸고, 1시간 40분 만에 연결된 직원은 ‘심사결과 12점인데 15점은 돼야 한다’라고 답한다. 이에 다니엘은 항소하고자 하지만, 통보 전화를 먼저 받아야 재심사 청구가 가능하다는 허울뿐인 답변만 돌아온다.

다니엘은 구직센터로 향하지만, 행정 업무는 인터넷 신청으로만 가능하다는 또 다른 거절이 그를 밀어낸다. 그곳에서 그는 초행길을 헤매느라 예약시간을 몇 분 늦었다며 지원금 삭감 결정을 받은 케이트와 두 아이를 만난다. 그들은 없는 형편에도 서로를 도우며 깊은 유대를 쌓는다.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인터넷 신청을 마친 다니엘은 담당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연필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주당 35시간 동안 구직활동을 했다는 것을 수첩에 기록한다. 그러나 그 구직 활동증거는 국가가 정한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직 수당이 끊기게 된다.

영화는 절차에 집중하는 시스템의 비인간성을 묻는다. 이 신청주의 그늘은 대한민국 공공정책 곳곳에도 드리워져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매년 기업 지원, 소상공인 지원, 산재보상 지원, 고용유지 지원 등 수많은 지원 정책을 쏟아낸다. 하지만 도움이 절실한 영세 소상공인이나 현장 노동자에게 그 정책들이 피부에 와닿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금융인증서·공동인증서와 같은 까다로운 본인 인증, 복잡한 서류제출 등 신청절차 자체가 거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행정적 역량이 부족한 이들은 절차상 ‘자발적 포기’로 세어지고 만다.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AI) 시대를 살고 있다. 이미 국가는 과세, 고용, 산재, 건강보험처럼 개인과 기업의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기업이 경영난에 처해있는지, 어떤 사람이 재해 위험이나 실직 위기에 놓여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이 데이터들이 적극적으로 쓰이는 곳은 조세다. 공공 행정은 ‘신청서가 들어오지 않았다’라는 소극적 신청주의에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 다니엘의 행동이 답답한 지점이 존재한다. 구직센터에서 시키는 대로, 조금 더 공손한 태도를 보이면 쉽지 않을까. 그러나 영화는 복지가 은혜나 용돈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일하며 세금을 지불한 국민이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권리임을 지적하고 있다.
[문화 속 산업 이야기] AI 시대의 사회안전망, 제도가 국민을 찾아갈 차례
이미지 출처=네이버 영화

다니엘은 구직센터 외벽에 항고 신청을 받아들이라는 낙서 시위를 벌이고, 끝내 질병 수당 항고 심리가 잡힌다. 변호사는 승소가 확실시된다고 격려하지만, 다니엘은 심리실 입장 직전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가장 저렴한 시간에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서 케이트는 다니엘이 항소 법정에서 진술하려 연필로 적은 입장문을 대신 읽는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사회보장보험 속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국가가 정한 절차는 보편적인 사람들이 보편적인 서비스를 최대한 신속하게 받을 수 있게 효율적으로 설계됐다. 그러나, 국가의 의무는 거기서 멈추선 안 된다. 단 한 사람의 귄리와 노고까지 책임질 수 있는 굳건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AI가 단순 행정 업무를 자동화하는 지금이야말로, 공급자 중심의 소극적 신청주의에서 벗어나 선제적 발굴 체계로 전환할 적기다.

다행인 것은, 최근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국회에서 2027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진행하며 주요 사회보장급여를 신청주의에서 자동주의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수급 자격이 있으면 별도로 신청하지 않아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바꾸겠다는 취지다.

물론 제도적 정착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적용 범위와 대상자 판별 기준, 개인정보 활용 및 오류 발생 시 구제 절차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 나아가 복지급여를 넘어 산재 보상과 고용 지원 등 다양한 공공행정 영역에서도 신청주의 한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받지 못한 것은 수당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였다. 국민이 제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국민을 알아서 보살피는 사회. 그것이 기술 발전이 지향해야 할 사회적 안전망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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