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일보]
패권경쟁이 심화 중인 디지털 시대에서, 2025년 한국에는 ‘디지털 국가책략(statecraft)·AI 국가책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삼성동 코엑스(COEX) 402호에서 3일 개최된 ‘2025 SW산업전망 컨퍼런스’의 연사로 나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김상배 교수는 ‘변화하는 국제정치와 디지털 패권의 미래’를 주제로, 한국의 디지털 전략 방향을 모색하는 강연을 진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미국 대외정책의 큰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AI(인공지능)·SW(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가 큰 관건”이라고 운을 뗀 그는 “지금은 ‘미-중 패권경쟁’, ‘러-우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중동 전쟁)’, 삼축 지정학의 시대이며,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현이 삼축 지정학의 재편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과 동아시아에는 트럼프의 정책이 어떻게 투영될까”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동맹을 추구했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동맹관을 내세우고 있어 위기와 기회가 공존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진 설명에 따르면, 미국은 디지털·SW 산업 진흥을 위해 규제를 느슨하게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중국에 대해 더욱 강경한 태도, 동맹국에는 거래적인 입장으로 문제를 풀어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중 패권경쟁이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가속화되면서, 5G/6G로 대표되는 디지털 인프라를 비롯해 반도체·AI·바이오&제약 등 첨단부문의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비대면 환경의 플랫폼 경쟁도 촉발됐다.
김상배 교수는 “현재 중국은 응용 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많이 추격했으나, 원천 기술은 여전히 미국이 장악하고 있어 질적 도약의 계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라며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막기 위해 봉쇄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이에 대응해 독자적인 생태계를 모색하고자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진출하고 있다”라며 “미국과 중국, 두 개의 생태계가 경쟁하는 양상으로 전개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The Special Competitive Studies Project’ 보고서를 인용해 소개한 ‘디지털 패권경쟁의 판세’를 살펴보면, 미국은 인터넷플랫폼·합성생물학·바이오&제약·융합에너지·앵자컴퓨팅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중국은 첨단배터리·5G이동통신·상업용드론 기술에서 우세하며, 미국과 중국은 AI·차세대네트워크·반도체·첨단제조업에서 경합 중이다.
김 교수는 “디지털 패권 경쟁은 다양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복합지정학’의 모습을 보인다”라며 “▲공급망 안보 ▲데이터 안보 ▲우주 뉴스페이스 경쟁 ▲AI무기 안보 ▲사이버 국제규범 5개의 의제가 SW/AI를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할 수 있겠다”라고 전했다.
즉, ‘SW 패권’이 강조되고 있다는 말로 김상배 교수는 “미국의 기업들이 장악해 오던 분야”라고 했다.
1990년 PC 시대에는 운영체제(OS)와 CPU를 선도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Windows)’와 ‘인텔(Intel)’의 합성어인 ‘윈텔리즘(Wintrlism)’이 미국의 SW 패권을 대표했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구글(Google)’로 SW 패권이 넘어갔고, 모바일 시대에는 구글 ‘안드로이드(android)’와 애플의 ‘iOS’가 패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의 도전이 이뤄졌다.
이러한 흐름은 현재 AI 시대를 맞이해 OpenAI, 구글 등 미국의 빅테크가 여전히 주도하고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김상배 교수는 “AI 분야에서 패권을 잡으면 미래를 좌우하는 힘을 갖게 될 것”이라며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표준/플랫폼을 주도해 AI 생태계를 만들고, 규제·안보 담론을 형성하며, AI 기반 외교 및 전쟁에서도 승리하는 3차원의 복합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라고 해설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SW/AI 패권경쟁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김 교수는 “우리의 AI 역량은 전 세계 5~6등 정도”라며 “그러나 우리만의 AI 기술을 개발하고 플랫폼을 구축하는 ‘자강 전략’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한국은 중견국으로서 외교적인 맥락을 헤쳐나갈 수 있는 ‘미들파워’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결이 다른 판세의 틈새를 공략하는 ‘중개외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편을 모으는 ‘연대외교’, 서방과 비서방의 대결구도 틈에서 AI 규범을 세울 수 있는 ‘규범외교’ 3가지를 제시했다.
김상배 교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AI와 디지털 기술 전반을 디지털 국가책략(statecraft)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AI 국가책략’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한편, ‘2025 SW산업전망 컨퍼런스’는 2일부터 6일까지 펼쳐지는 ‘2024 소프트웨어 주간’의 일환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주관으로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