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HD한국조선해양이 STX중공업의 지분 35%를 취득한 기업결합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정희은 기업거래결합심사국장은 15일 공정위 브리핑실에서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정희은 국장은 “이번 기업결합은 조선업 전반에 걸쳐 수직계열화를 달성한 기업집단 현대가, 선박용 엔진과 엔진 부품 사업자인 STX중공업과 자회사 한국해양크랭크샤프트(KMCS)를 인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박용 엔진 부품은 주로 ‘크랭크샤프트(Crank Shaft)’를 의미한다. 엔진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엔진 내부 피스톤의 상하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변환해 선박 프로펠러를 작동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 크랭크샤프트를 생산하는 사업자는 3곳으로, HD현대중공업, 두산에너빌리티, KMCS이다. 이 부품을 구매해 선박용 엔진을 생산하는 사업자는 현대중공업, 한화엔진, STX중공업, STX엔진이다.
이중 HD현대중공업은 크랭크샤프트를 직접 생산하는 ‘자가소비’ 중이다. STX중공업은 자회사인 KMCS의 크랭크샤프트를 사용하고 있다. 한화엔진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80%, KMCS에서 20%를 공급받고, STX엔진은 KMCS에서 100%의 물량을 구입하고 있다.
정 국장은 “STX 중공업과 STX엔진은 과거 계열사였으나 현재는 별개 회사”라며 “두산에너빌리티와 한화엔진 역시 과거 계열관계가 있었으나 2018년 이후부터는 별도 회사”라고 언급했다.
공정위는 이번 인수가 ‘엔진 부품과 선박용 엔진 간의 수직·수평결합’, ‘선박용 엔진과 선박 간의 수직결합’, ‘엔진 부품 간의 수평결합’ 등 다양한 결합 유형에서 경쟁 제한 가능성이 있는지 검토했다.
특히, 엔진 부품과 선박용 엔진 간의 수직결합의 경쟁제한 우려에 주목했다. 한화엔진과 STX엔진 등 경쟁 엔진사에 크랭크샤프트를 미공급함으로써, 경쟁 엔진사가 엔진을 생산하지 못할 현실적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 국장은 “과거 국내 엔진 제조사들은 이 부품의 직접 생산 또는 특정 업체와 전속 거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라며 “그러다 2018년 한화엔진과 두산에너빌리티의 계열 관계가 종료되며 변화가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한화엔진이 두산에너빌리티에서 크랭크샤프트를 100% 공급받던 구조에서, 20%는 KMCS에게 공급받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는 “기업결합 전에는 KMCS가 한화엔진에 공급을 거절해 엔진을 생산하지 못하면, 엔진 수요가 STX 중공업보다는 HD현대중공업으로 이동할 확률이 높아 KMCS의 거절 요인이 낮았다”라고 해설했다.
이어, “이번 기업결합으로 STX중공업이 HD현대중공업의 계열사로 편입된 뒤 한화엔진의 엔진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면, 그 수요는 100% 경쟁사인 HD한국조선해양으로 전환될 것으로 KMCS의 공급 거절 요인이 증가했다”라고 이번 인수 영향을 내다봤다.
또, 한화엔진이 KMCS 외 다른 곳에서 크랭크샤프트 조달이 어렵다는 점도 고려됐다. 이 회사의 주요 공급처인 두산에너빌리티는 공장 가동률이 포화상태에 달했고, 원전 주기기의 수주 증가로 크랭크샤프트 생산 증대 여력이 충분치 않다.
중국산 크랭크샤프트는 품질·운송비·납기 안정성 측면에서 대체가 쉽지 않고, HD현대중공업은 크랭크샤프트를 외부에 판매하지 않아 한화엔진에게는 KMCS가 유일한 대체 공급선이라는 것이다.
정 국장은 “KMCS가 HD한국조선해양과 결합 후 경쟁엔진사에 공급을 거절하거나 불합리한 가격·납기로 공급 시 엔진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며 HD한국조선해양의 시장지배 지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화는 2023년 대우조선해양을, 올해는 HDS엔진을 인수하면서 조선 및 선박용 엔진 분야에서 HD현대중공업의 유력한 경쟁사업자로 등장했다.
그런데, 이번 인수로 인해 크랭크샤프트 공급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조선업 시장에서 한화와 HD현대중공업의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위는 3년 동안 한화엔진을 비롯한 경쟁엔진사의 크랭크샤프트 수급이 가능하도록, ▲공급 거절 금지 ▲최소 물량 보장 ▲가격 인상 제한 ▲납기 지연 금지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향후 시장 상황을 살펴보고 필요시에는 기간 연장도 할 수 있다.
정희은 국장은 “이번 심사는 ‘친환경 엔진 투자를 통해서 세계 엔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한다'라는 당초 결합회사의 목적은 유지하되, 경쟁 엔진사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며 “국가 기간산업인 조선업과 관련 중간재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라고 의의를 뒀다.
이어, “공정위는 앞으로도 중간재 시장에서 경쟁에 미치는 영향까지 면밀히 검토 후 기업결합으로 인해 경쟁이 제한될 경우 시정조치를 부과할 계획”이라며 “그 시정조치는 결합으로 인한 효율성 증대효과는 유지하고, 경쟁제한 우려를 적절히 해소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