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일보]
“미래 노동법은 근로자가 노동하면서 ‘내가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발전해야 한다”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권혁 교수는 ‘인구구조 변화, 다가오는 AI시대의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 모색’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토론회에서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노동법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권 교수는 “노동법 체계는 농사짓던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게 된, 산업혁명을 계기로 탄생했다”라며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과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의 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생겨난 것인데, 이들 사이의 계약 관계에서 ‘비 대등성’이라는 특징이 과로와 산업재해 등의 사회적인 문제를 낳았다.
이 때문에 입법자가 사회적 부작용을 해소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 노동법 체계다. 종전에 없었던 ‘근로계약’을 합리적이고 공정한 계약으로 만들기 위한 규율이 구축된 것이다.
권혁 교수는 “노동법 체계의 구축 이유는 명확하다. ‘좋은 노동의 기회제공’을 위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초기 노동법의 좋은 노동은 아동과 여성이 8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라며 “미래, AI 시대의 좋은 노동은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노동인데, 현재 우리 노동법 체계의 근로시간·임금·휴식·고용안정이 이러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수단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다만, 여전히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현재의 노동법 체계는 유지돼야 한다”라며 “현재 노동법 체계의 방법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기존 노동법 체계 중 ‘개별적 노사관계법’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계약 관계가 어떻게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게 체결될지 국가가 책임지게 구성돼 있다. 단, 적정한 근로조건은 근로자가 스스로 획득할 수 있게 헌법에 ‘단결권’이라는 기본권을 부여했다.
권 교수는 현재 산업 전환의 시점에서 이 노동법의 규율 방법에 의문을 제기했다. 우선, 노동력 제공자 중 자영화된 인원들이 늘어났다. 자율적 노동을 지향하는 근로자들과, 고용이라는 조직화를 꺼리는 사용자 각각의 입장 때문이다.
“가장 근로시간이 많은 게 자영업자지만, 이들에게는 근로시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그는 “그러나, 이들에게 과로나 사회적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국가가 사회적 부담을 져야 하는데, 자영업자와 근로자를 구분할 이유가 여전한가”라고 말했다.

두 번째 의문은 근로자 사이의 경쟁이다. 이전의 근로자들은 동일 장소, 동일 조건, 동일 시간으로 연대가 가능하고 쉬웠다. 그러나, 현재 근로자들의 노동형태는 ‘상호 경쟁’ 구조라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러한 구조에서 발생하는 ‘무한 저가 경쟁’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일하는 근로자 간의 단결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해설했다.
또한 우리 산업구조의 원하청 문제와 영세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을과 을, 병과 병 근로계약 문제를 짚었다.
그는 “이렇게 많은 문제에 우리의 노동법은 해법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라며 “기존 노동법 체계에 포섭하기 위해 근로자들을 종속노동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율적 노동을 지향할 수 있도록 국가가 촉진해 줘야 한다”라고 의견을 내놨다.
권 교수는 “근로자들이 재택 근로를 원하는데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우니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기초로 재택 근로를 활성화하는 데 노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현행 임금 체계 역시 공장에서처럼 근로시간의 양으로 따진다”라며 “하지만 창의적 노동에서 시간의 양보다 근로의 질이 중요할 수 있고, 청년들이 생산성과 성과에 비례하지 않은 임금 체계에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사용자와 근로자라고 하는 뚜렷한 개념의 당사자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이 기존의 노동 체계라고 한다면, 미래 노동법은 당사자의 개념이 희석되고 모호할 것”이라며 “새로운 노동법 체계를 설계해야 할 단계라고 본다”라고 내다봤다.
권혁 교수는 “미래 노동법은 ‘노동자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노동’으로 분명하게 나아가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종속노동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야 하고,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 보호 필요성을 포착해 노동법이 접근해 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래 노동법 구축의 방향성으로, ▲획일적인 근로자 및 사용자 개념에서 벗어나 개념적 다원성 수용 ▲노동법적 보호의 범위와 방법의 다양화 ▲노동의 창의성·자율성 촉진 및 지원 ▲노동의 개별화에 대비한 소통과 시스템 제도화 ▲고용자 고용 확대로 평생 일자리 기회 제공을 제안했다. 특히, 공정성과 형평 원리에 비춰 사회안전망 제공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권혁 교수는 “노동법을 통해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전망에 편입하고,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은 보호를 통해 기득권이 된 부분이 있다면 일정 부분 덜어내야 한다”라고 해설하며 “노동법 체계의 진화를 서두르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 유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15일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국노동연구원(KLI)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으로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