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현재 산업계는 인공지능(AI)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AI가 자동화·비용절감·효율성 향상을 주도하고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기업의 AI 도입도 속도를 내는 추세다.
하지만 쉽지 않다. 미국의 대표 싱크탱크인 랜드(RAND) 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AI 프로젝트 실패의 근본 원인과 성공 방법(이하 보고서)’ 보고서는 기업의 AI 도입 성공률이 20%도 미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AI 도입은 왜 실패할까. 보고서의 내용과 10일 국회에서 열린 ‘새롭게 도래하는 AI 시대, 우리 제조업의 미래는?’ 토론회에 참석한 산업 지능화 전문가의 의견을 정리했다.
기업 AI 프로젝트 80% 실패
랜드연구소는 업계와 학계에서 65명의 데이터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인터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AI 프로젝트의 80% 이상이 실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인 기술 프로젝트 실패율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실패 원인으로는 ▲AI로 해결할 문제를 오해하거나 잘못 전달 ▲AI 훈련 데이터 부족 ▲기술 도입에만 집중 ▲데이터 관리 및 AI 활용 인프라 부족 ▲AI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도전의 5가지를 꼽았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안승용 마키나락스 이사는 “AI로 무엇을 할지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라고 진단했다. 기획 단계부터 AI로 해결할 문제를 정확히 설정하고 투자 대비 수익률(ROI)을 산출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실무자의 판단을 바탕으로 과감한 의사결정과 투자가 이루어질 때 성공적으로 AI를 도입할 수 있다”면서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올 지 모르는 점이 AI 도입을 가로막는다”라고 설명했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제조업에겐 ‘하늘의 별 따기’
제조업은 AI 도입이 더 어렵다. 김태환 한국산업지능화협회 부회장은 “제조 산업의 특수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조업은 설계부터 조달, 생산, 유통, 사후 서비스까지 그 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업종과 생산 품목도 다양하다 보니 얻을 수 있는 데이터도 종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김태환 부회장은 “일반 B2C 영역의 데이터와 달리 제조 데이터는 복잡성이 매우 높다”라고 말했다.
데이터가 복잡하니 AI 솔루션도 부분적으로만 적용되는 상황이다. 설비 예지보전, 품질 관리, 수요 예측, 안전관리 등이다. 김 부회장은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 자체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AI로 해결할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도 막상 훈련할 데이터가 없거나 품질이 부족할 수 있다.
이상목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은 ▲제조 노하우 유출 우려 ▲시스템 연동 ▲AI의 신뢰성 문제를 추가로 지적했다.
데이터를 공유해야 하는 특성상 제조 노하우가 유출될 수 있고, AI 모델을 구축해도 기존 시스템과 연동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챗GPT등 언어 모델에서 자주 보이는 AI의 오류 ‘할루시네이션’도 제조 AI에선 용납할 수 없다. 작은 오류도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상목 원장은 “AI의 신뢰성, 확장성 문제로 실제 좋은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아직 시장성을 내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제조 AI 성공하려면…기술 전략·데이터 플랫폼 필요
보고서는 기업 AI 도입 성공 전략으로 ▲프로젝트 목적의 바른 이해 ▲AI 인프라 투자 ▲AI의 한계 인식 ▲학계·정부·기업 파트너십으로 데이터 확보 등을 들었다.
최신 기술 도입 자체가 아니라 해결할 ‘문제’에 집중하고, AI 인프라 사전 투자로 고품질 데이터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AI의 한계를 인식하고 타당성을 평가할 AI 전문가도 프로젝트에 필요하다.
이상목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은 제조 AI 도입을 위해 4단계 기술개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센서 데이터 취득과 컨버전(다른 하드웨어에서도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소프트웨어를 수정하는 것) ▲데이터 마이닝과 데이터 증대 ▲적정 AI 알고리즘 찾아 정확도 향상 ▲학습된 모델을 설비에 넣는 트랜스퍼 러닝이다.
데이터 부족 문제는 표준화와 파트너십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태환 한국산업지능화협회 부회장은 “데이터를 주고받으려면 표준화는 필수”라면서 “제조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본·독일처럼 한국도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은 ‘한국형 데이터 스페이스’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전했다.